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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나를 알아?' 감독 된 배우 조은지가 휴대폰에 붙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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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나를 알아?' 감독 된 배우 조은지가 휴대폰에 붙인 대사

입력
2021.11.23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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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영화 '장르만 로맨스'로 주말 흥행 1위

조은지 감독은 "(홍콩배우 겸 감독인) 저우싱츠(주성치)를 좋아한다"며 "그의 영화 형식보다 뭔가에 계속 도전하고 성취해낸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조은지 감독은 "(홍콩배우 겸 감독인) 저우싱츠(주성치)를 좋아한다"며 "그의 영화 형식보다 뭔가에 계속 도전하고 성취해낸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어색하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2000년 영화 ‘눈물’로 데뷔한 중견배우답지 않았다. “모델로 일을 먼저 시작했는데도 촬영은 항상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카메라 앞에 서니 더 쑥스러운 듯했다. 16일 오후 서울 안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겸 감독 조은지(40)는 “제가 연출한 영화가 개봉한다니 아직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장르만 로맨스’(17일 개봉)로 장편영화 감독이 됐다.

‘장르만 로맨스’는 유명 소설가 현(류승룡)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감정들을 펼쳐낸다. 재혼한 현은 여전히 전 아내 미애(오나라)에게 미련이 남아있는데, 그의 절친 순모(김희원)가 미애와 몰래 연애 중이다. 고교생 아들 성경(성유빈)은 여자친구에게 이별통고를 듣고선 옆집 젊은 유부녀 정원(이유영)을 연모한다. 글이 예전 같지 않은 현에게 대학생 유진(무진성)이 접근해 농밀한 감정을 토로한다. 영화는 현실에선 흔치 않은 감정 교류를 통해 인간관계를 풀어내고, 성장을 이야기하려 한다. 발랄하면서도 도발적인 이야기를 제어하는 연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장르만 로맨스’는 19일부터 3일 연속 흥행 1위에 오르는 등 흥행전선에서 선전하며 33만1,653명(21일 기준)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등장인물들이 얽혀버린 감정들 속에서 정신적 성장을 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NEW 제공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등장인물들이 얽혀버린 감정들 속에서 정신적 성장을 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NEW 제공

조 감독은 원래는 “연출을 하고픈 생각이 크지는 않았다”고 했다. “스트레스와 고민 해소를 위해 글쓰기를 즐겨 했는데, 글 속 장면이 이랬으면 좋겠다, 이런 배우가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메가폰을 잡았다. 첫 작업은 단편영화 ‘2만 원 효과’였다. 친한 배우와 스태프를 총동원해 하루 동안 촬영했다. 제작비는 100만 원. 한 카페에서 2만 원이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첫 작품은 아직 공개한 적이 없다. 조 감독은 “인간군상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2만 원만 두드러져 자신있게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두 번째 작품은 단편영화 ‘2박 3일’이다. 제작비는 700만 원. 영화는 한 콩가루 가족을 돋보기로 들여다본다. 2017년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영화계에서 조금씩 배우 조은지의 연출 실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장르만 로맨스’의 김나들 작가가 연출을 의뢰한 것도 ‘2박 3일’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출연 제의인 줄 알았어요. ‘2박 3일’이 자신의 시나리오랑 많이 닮아있는 데다 선을 적절히 지켜가며 표현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 제가 연출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조 감독은 시나리오 각색에 참여했다. ‘인생이 따갑다’ ‘그지 같은 집구석’ 등은 조 감독이 만들어낸 대사다. 그가 ‘장르만 로맨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니들이 나를 알아?’다(조 감독의 휴대폰에는 이 대사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현이 낙담해 만취한 채 거리에서 차를 막아서며 외치는 소리다. ‘방황하는 칼날’(2014)과 ‘비스트’(2019)의 이정호 감독이 어느 술자리에서 한 넋두리를 기억했다가 활용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잘 안다면서 잘 모르잖아요. 제가 ‘매운 거는 잘 못 먹어도 좋아해’라고 말하면 ‘매운 거를 못 먹는다’거나 ‘매운 거를 아주 좋아한다’로만 생각하는 식으로요. 대중이 저에 대해 오해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냐고요?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저는 대중이 (오해해도) 관심을 가져주기만 해도 좋아요(웃음).”

소설가 현(오른쪽)은 전 아내와 아들 일로도 머리가 아픈데, 제자 유진이 사랑 고백을 하며 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NEW 제공

소설가 현(오른쪽)은 전 아내와 아들 일로도 머리가 아픈데, 제자 유진이 사랑 고백을 하며 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NEW 제공

글쓰기를 좋아하니 애독가냐고 물었다. 조 감독은 “책을 많이 사긴 하나 완독은 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책 냄새를 좋아하지만 사실 시나리오를 더 즐겨 읽는다”고도 했다. “시나리오 내용이 어떻게 영화로 나올까 하는 호기심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는 “5, 6년 전 집에서 TV를 없앴지만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꼭 챙겨서 본다”고도 말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생각”에서다.

데뷔 21년이 됐으나 “출연 영화를 보면 여전히 어색해 극장에 가서 잘 보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연출작인 ‘장르만 로맨스’는 “꼭 관객 사이에서 보고 싶다”고 말했다. “관계자가 아닌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 궁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연출과 연기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이라고 묻자 조 감독은 “둘 다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연기는 20년 동안 마음에 쌓아온 것이기에, 연출은 이제 막 흥미를 갖게 됐기에”라고 이유를 댔다. 하지만 그는 “제가 연출하는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만 원 효과’가 제가 출연까지 해서 망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하나에만 집중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감독과 배우로서 목표는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말했듯이 공로상 받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연출은 목표라고 할 게 딱히 없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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