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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한양부 객사에 들다

입력
2021.11.2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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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서울 수도시대 개막

서울 정도 600년이던 1994년 서울 남산 한옥마을에 묻은 '서울 1000년 타임캡슐' 상단부. 2394년 11월 29일 열릴 예정이다. 서울시 제공

서울 정도 600년이던 1994년 서울 남산 한옥마을에 묻은 '서울 1000년 타임캡슐' 상단부. 2394년 11월 29일 열릴 예정이다. 서울시 제공

한반도에서 명멸한 나라들의 수도로는 신라의 경주가 가장 오래 그 지위를 누렸다. 기원전 57년 건국해 10세기 말 후삼국 혼란기를 거쳐 935년 고려에 흡수되기까지 경주(옛 지명 금성, 서라벌)는 '천년 수도'로 번성하며 수많은 유물, 유적을 남겼다. 경주 다음으로 수도 지위를 오래 누린 게 조선의 수도 서울(옛 지명 한성, 한양)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당시 한성부의 관사에 든 건 태조 3년 음력 10월 25일(1394년 11월 29일)이었다.

항구 벽란도를 끼고 예성강 물길로 서해와 닿아 있던 고려 500년 수도 개경은 행정수도인 동시에 동북아 거점 국제무역항이었다. 기세가 죽은 원나라의 기운을 떨쳐내고자 원나라 연호를 폐지하고 조선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원의 원격 통치기구 '정동행성'을 폐지한 공민왕 때부터 수도 이전 논의는 이어졌다. 1360년 홍건적 침입과 서해 왜구들의 잦은 강화도 습격도 개경 이남 내륙 천도의 강력한 명분이 됐다. 하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공민왕 우왕 등 국왕의 의지를 꺾은 건 도참, 풍수지리의 점괘였지만, 실제 원인은 개경을 거점으로 한 상인과 세도가, 족벌 관료들의 이권 권력이었다.

한성 천도는 그러니까, 숱한 반대와 저항, 께름칙한 우려를 물리치고 나선(정치적) 승리의 행군이자 새로운 도전의 행군이었다. 백전노장과 그의 군대, 신하들을 이끌고 사흘 전 고려 수도 개경을 떠나 한성으로 향한 태조의 행렬은 옛 수도 개경의 심리적 구심력을 떨쳐낼 수 있을 만큼 장대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그날 역사를 "(태조가) 옛 한양부의 객사를 이궁으로 삼다"라고 적었다. 이궁(離宮)은 정궁, 법궁 대신 임시로 왕이 거처하는 궁이니까 틀린 건 아니지만 '그럼 법궁이 어디냐'라고 따진다면 대답이 궁해질 수 있는 표현이다. 어쩌면 사관의 마음도 개경에 있었을지 모른다. 태조는 이듬해 말 경복궁이 창건될 때까지 법궁 없는 왕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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