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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제때 브레이크 밟았다

입력
2021.11.19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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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재난지원금 철회, 현명한 결정
도식적 선악 잣대보다 실용성 추구해야
오해된 마키아벨리 대신 진면목 닮아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9일 대전시 유성구 엑스포 시민광장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9일 대전시 유성구 엑스포 시민광장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로마 공화정 원로원의 현명함에 찬사를 보냈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나 이전의 결정에 완전히 반대되는 결의가 필요할 때 머뭇대지 않고 과감하게 결행하는 자세를 가졌다는 이유였다.

상황이 바뀌어 자기 주장을 바꿀 필요가 있더라도 사람들은 대개 체면이나 과거 경험 등에 집착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해지기 쉽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논쟁적 사안의 경우 입장을 바꾸면 리더십이 실추되거나 기싸움에서 밀린다고 여겨 잘못된 판단을 고집하기 일쑤다. 그러나 로마 원로원은 그런 위신 대신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로 그때그때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평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8일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추진을 사실상 철회했다. 보기에 따라 청와대와 정부의 냉담한 반응, 부정적 여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퇴각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의 정책 대결에서도 밀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후보가 대선 정국의 핵심 의제 중 하나를 빠르게 철회하고 수습에 나선 것은 인상적이다. 체면 손상을 감수하고 현실을 수용해 제때 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이다.

서두에 굳이 마키아벨리를 인용한 것은 비단 이번 대응 때문만은 아니다. 종종 그를 마키아벨리에 빗대는 이들이 꽤 있어서다. 통속적 차원에서 마키아벨리즘은 배신과 음모가 판치는 정치판의 음험한 권모술수로 통용된다. 형수 욕설 등 사생활의 비윤리성까지 겨냥해 그를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악의 교사’라는 마키아벨리의 오명을 벗기기 위해 여러 학자들이 규명해왔듯이, 이론이나 사변보다 ‘사물의 실효적 진실’을 통해 목표를 이루려는 것이 마키아벨리즘의 핵심이다. 물론 결과를 내기 위해 잔혹한 수단까지 용인한 측면이 없지 않았으나, 현 시대에 맞추면 이념에서 벗어난 실사구시의 자세로 최대한 실용적 수단을 동원해 목표 달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후보가 이런 사상적 정수를 체득한 마키아벨리스트라면, 비난이 아니라 오히려 응원하고 싶은 심정이다. 마키아벨리의 시대적 고민이 지금의 우리와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와 스페인이라는 양대 강국의 침입과 패권 경쟁으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잘못 줄 섰다가는 정권이 뒤바뀌기 일쑤여서 각자도생의 생존 투쟁이 격렬했다. 도식적인 선악 잣대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도, 국가를 유지할 수도 없었다. 도덕적 미덕의 개념이었던 ‘비르투(Virtú)’를 도덕적 의미를 배제한 군주의 ‘역량’으로 뜻을 비틀어버린 마키아벨리즘은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나왔다.

이 후보는 마키아벨리스트일까. 이재명의 ‘합니다’ 슬로건은 그 핵심에 닿아 있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는 나쁘고, 좋은 규제로 잡아야 한다는 도식에 빠져 있다면 마키아벨리와 가장 거리가 멀다. 보편 지원은 착하고 선별 지원은 나쁘다는 식도 마찬가지다. 과거 역사에 고착돼 친일파나 토착왜구 타령을 한다면 그 역시 반(反)마키아벨리스트다.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그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보고 대응하려 했던 것이 마키아벨리다. 제도의 실효성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것도 마키아벨리적 안목이다.

최근 “이 후보가 스스로를 ‘디스’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경고해 화제가 된 글에서 최병천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이 후보의 강점인 ‘추진력’과 ‘행정경험’을 살리는 캠페인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다시 바꾸면 이 후보의 강점은 철저한 마키아벨리스트가 될 때 발휘될 수 있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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