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도시농업 정보 나누다 봉사단 결성
용광로 쇳물 부산물로 규산질 비료 개발
친환경 재배 수확량 크게 늘어...기부도
해양 쓰레기 수거 클린오션봉사단도 가세
17일 오후 1시 30분쯤 경북 포항시 남구 송도동 행정복지센터에서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철강 제품 대신 손수 키운 배추 400포기와 무 200개, 쪽파 100단을 독거노인 100명과 나누는 행사가 열렸다. 전달식 끝에 제철소 한 직원이 “철을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슬래그)로 키웠다”고 말하자, 물품을 나르던 행정복지센터 직원들과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 이날 센터 마당에 놓인 배추와 무, 쪽파는 모두 포항제철소 직원들로 구성된 에코농학봉사단(봉사단)이 슬래그로 만든 비료로 포항 북구 기계면 일대 7,000여㎡ 밭에서 재배한 작물이었다. 봉사단은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포항 남구 해도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슬래그 비료로 키운 고구마 1,000㎏을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 써달라”며 기부했다.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철강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슬래그를 활용해 양질의 비료를 만들고 농산물을 재배, 지역사회와 나눔 활동까지 벌이고 있다.
에코농학봉사단은 지난 2011년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집 근처 텃밭 등을 가꾸며 각자 터득한 농사 기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북구 죽장면에 만든 농업기술학교에서 출발했다. 휴일에 취미로 도시농업을 하던 제철소 직원들은 좋은 비료를 찾다가 슬래그에서 규소가 풍부한 비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친환경을 뜻하는 영어 ‘에코(ECO)’와 농사를 공부한다는 의미의 ‘농학’을 합쳐 봉사단을 결성하고 슬래그 비료로 본격적인 농사짓기에 들어갔다.
비료를 뿌린 작물마다 쑥쑥 자랐다. 용광로에서 쇳물을 뽑아내고 남은 슬래그를 건조 및 분쇄해 알갱이 형태로 만든 비료는 식물생장을 돕는 규소(Si)가 풍부해 수확량이 이전의 3배까지 늘었다. 알칼리성분도 많아 토양 산성화를 방지했고, 슬래그에 미량 함유된 철 이온 등은 메탄을 생성하는 균의 활동을 줄였다.
맛도 좋았다. 포항제철소는 봉사단에서 슬래그 비료를 얻어 포항지역 농가에 보급한 뒤 재배한 쌀로 주류회사와 연계해 손님용 막걸리(북극곰)와 증류주(쿨)를 내놔 큰 호응을 얻었다.
에코농학봉사단은 슬래그 비료 덕분에 수확량이 크게 늘자 재배한 농산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또 지역 농민들에게 개발한 비료를 기부하고 유기농법까지 전수하고 있다. 봉사단에는 현재 포항제철소 직원 280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항재 에코농학봉사단장(에너지부 소속)은 “철 부산물로 농산물을 키우고 우리 땅을 지켜내며 어려운 이웃까지 도울 수 있어 봉사단원들 모두 뿌듯해한다”며 “슬래그 비료로 작물을 재배하는 친환경 농법이 널리 보급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봉사단은 최근 해양생물의 적인 불가사리를 농축해 액체비료를 만들어 슬래그 비료 못지 않은 성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원료인 불가사리 확보에는 포항제철소 내 해양쓰레기 수거 봉사단인 ‘클린오션봉사단’이 나섰다. 포항제철소 직원 300여명으로 결성된 클린오션봉사단은 해마다 포항 영일만 바다는 물론 울릉도, 독도까지 나가 폐그물과 폐어구, 플라스틱 등 해양쓰레기를 건져내고 있다.
이상길 클린오션봉사단장(품질기술부 소속)은 “해양생물의 적인 불가사리로 친환경 농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비료까지 만든다고 해 신기했다”며 “에코농학봉사단과 손발을 맞춰 우리 바다와 땅을 살리는데 좋은 비료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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