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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노릇 못한 후회"...먼저 떠난 아들을 가슴에 묻은 송해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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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노릇 못한 후회"...먼저 떠난 아들을 가슴에 묻은 송해의 슬픔

입력
2021.11.18 04:30
수정
2021.11.18 13:3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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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

영화 '송해 1927'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영화 '송해 1927'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부부라는 게 옆에만 있어도 든든하지 않아요?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건 사실 고독한 거야. 그래서 (2018년 세상을 떠난 아내) 사진 보고 이야기할 때가 많아요. '또 갔다 오겠네'라고."

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에서 국민MC 송해(94)는 좀처럼 웃지 않는다. 사람 좋은 미소 뒤에 묻어둔 그늘을 조금씩 털어내듯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속내를 드러낸다.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보여준 익살스러운 표정과는 딴판이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나눈 인터뷰를 토대로 엮은 동명의 책에서 그는 "내 운명이고 내 팔자이니 내가 나를 위로해야 한다"면서도 "그래도 역시 고독하다"고 말한다. TV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송해의 사적인 표정들이다.

'송해 1927'은 현역 최고령 연예인인 송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큐멘터리다. 연예인으로 살아온 인생과 개인적인 삶을 함께 다룬다. 송해와 나눈 이야기를 중심으로 과거 자료화면, 가족 및 주변 지인들과 인터뷰를 더했다. 한 세기에 이르는 인생을 82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담다 보니 초점이 흐릿하고 다소 피상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그간 보기 어려웠던 송해의 개인사를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 만하다.

영화를 찍으며 했던 인터뷰를 글로 옮긴 책도 최근 출간됐다. 시간 관계상 영화에선 들을 수 없는, 보다 속 깊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송복희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송해는 한국전쟁 때 사선을 넘어 부산으로 내려왔다. 가족도 친척도 없는 타지에서 그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쳤고 유랑극단 단원 생활을 거쳐 방송국에 진출해 전 국민이 아는 유명인이 됐다.

영화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책에는 부모 형제를 두고 내려온 ‘불효자’의 한이 절절히 담겨 있다. 인생에서 가장 안 좋은 기억을 묻는 질문에도 어머니를 다시 찾아 뵙지 못한 것을 꼽으며 "그때 왜 못 돌아갔을까" 한탄한다. 1998년 금강산 관광 때 바위산에 올라 어머니를 외쳤던 기억, 평양 모란봉 공원에서 '평양노래자랑'을 진행하며 북한 동포를 얼싸안고 춤췄던 행복한 추억도 되짚는다.

오래전 촬영된 송해(맨 왼쪽)와 그의 가족. 가운데가 아들 창진씨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오래전 촬영된 송해(맨 왼쪽)와 그의 가족. 가운데가 아들 창진씨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영화 후반부는 1986년 22세에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 창진씨 이야기로 채웠다. '내 자식 아니다'라며 예인의 삶을 극구 막았던 아버지처럼 송해도 가수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꿈을 반대했다. 연예인 생활을 하며 너무나 아픈 경험을 많이 해서였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들이 좋아하던 오토바이를 분해해버린 적도 있었다.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뺑소니 트럭 운전자는 찾다가 포기했다. 생활이 넉넉지 않은 사람일 텐데 그를 찾으면 그 사람 가족은 무슨 수로 생계를 꾸리겠냐면서 말이다. 부모를 떠난 것부터 인생에 후회는 넘치지만 송해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삶을 택했다. "지나고 나면 후회스러운 게 많이 있지만 그때 당시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작진은 송해의 막내딸 숙연씨를 통해 찾아낸 창진씨의 자작곡을 송해에게 들려준다. 홀로 녹음한 음악이 4집까지 있다는 말과 함께. 영화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다. 아들을 떠나 보내고 35년 만에 처음 듣는 노랫소리에 송해는 눈물을 떨군다. 지난 8일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송해는 "자식들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그걸 파악하지 못했던 제가 과연 그 아이의 아버지 노릇을 했는지, 자격을 잃은 아버지로서 후회가 크다"고 말했다.

영화 '송해 1927'에서 송해가 아들 창진씨가 남긴 자작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영화 '송해 1927'에서 송해가 아들 창진씨가 남긴 자작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그렇다고 그가 일상을 슬픔과 고독 속에서 보내는 건 아니다. 다시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올라 대중과 호흡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건강을 챙긴다. 책에서 그는 자신의 꿈을 이렇게 설명한다.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건강밖에 없습니다. 하나도 건강, 둘도 건강, 셋도 건강! 아무것도 없던 제가 여러분과 살다 보니까 잘 못 하는 노래라도 한 곡 하면 박수 치고 무슨 말을 하면 웃어 주고 이러니 제가 어디 가서 이런 보람을 느끼겠어요. 그래서 이 보람을 내가 가지고 있는 한 보답을 해야 한다, 한없이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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