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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도로, 황금물결 수놓은 아산 곡교천 은행나뭇길

입력
2021.11.19 06: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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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52)아산 '은행나무 길'
1.3㎞ 아름드리 은행나무 터널 ‘전국 10대 가로수길’
현충사, 충무공 백의종군길, 공세리성당 볼거리 '풍성'

아산 곡교천변 '은행나무 길'의 50년 수령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황금물결 향연을 펼치고 있다. 길 따라 걷다보면 하늘과 땅, 사람 모두 노랗게 물이 든다. 아산시 제공

아산 곡교천변 '은행나무 길'의 50년 수령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황금물결 향연을 펼치고 있다. 길 따라 걷다보면 하늘과 땅, 사람 모두 노랗게 물이 든다. 아산시 제공

가을 끝자락만큼 시간이 빠를 때가 없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가워지고 낙엽이 바닥을 뒹굴면 마음이 급해진다. '더 추워지기 전에, 나무가 옷을 다 벗기 전에 추억 한 장 남기자.' 저무는 계절에 조바심이 인다면 충남 아산시 곡교천변 은행나뭇길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길 위에 떨어진 샛노란 은행잎은 바닥에 떨어져서도 고운 색을 잃지 않는다. ‘2020 가을 비대면 관광 100선’ 등에 선정된 아산의 명소다.

주말이던 14일 오후 충남 아산시 곡교천변 은행나뭇길. 막바지 단풍 구경에 나선 이들이 적지 않다. 유모차를 미는 아빠와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엄마, 커플티를 입고 다정하게 걷는 연인, 사진을 찍는 가족이 추억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길을 따라 곳곳에 놓인 벤치에는 곡교천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가을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이 눈에 띈다. 곳곳의 포토존도 '인생샷'을 건지려는 관광객들로 정체를 이룬다. 노란 낙엽은 바닥을 뒤덮었고, 가지에 남은 잎들이 가세해 황금 터널을 이룬다. 걷는 이들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은행나뭇길 경치를 촬영 중인 관광객. 이준호 기자

은행나뭇길 경치를 촬영 중인 관광객. 이준호 기자


은행나뭇길 푸드트럭. 이준호 기자

은행나뭇길 푸드트럭. 이준호 기자


'수령 50년' 아름드리 은행 터널

이 길은 1966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길에 1973년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심으면서 만들어졌다. 곡교천을 따라 심은 나무들은 세월이 흘러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났다. 굵은 것은 성인 2명이 팔을 벌려야 닿을 정도다. 어느 계절에 찾아도 아름다운 이곳 풍광은 전국에 소문이 나있다.

가족과 함께 평택에서 왔다는 이모(62)씨는 “친구 추천으로 왔는데, 과연 보람이 있다”면서 ”도심 속의 아름다운 가로수길 풍광이 하천과 어우러져 일품”이라고 말했다. 커플 관광객 최모(34·대전시)씨는 “길게 이어진 황금빛 터널에 반했다”며 “여자친구와 함께 탄 은행나뭇길 자전거는 이번 여행의 잊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말했다.

은행나무 형상의 돌 벤치와 자신의 발을 촬영 중인 관광객. 이준호 기자

은행나무 형상의 돌 벤치와 자신의 발을 촬영 중인 관광객. 이준호 기자

제방 위로 형성된 도로는 원래 인도가 없어 여유 있게 즐기지 못했다. 마치 자동차전용도로처럼 차 안에서 바라만 보고 스쳐 지나갔다. 2013년 아산시가 옛 아산군청 자리였던 충남경제진흥원과 아산문화재단 사이 1.3㎞ 구간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들면서 지금은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아산의 대표 관광지가 됐다.

은행나뭇길은 매년 10월 말부터 절정을 이루지만, 사계절 언제 찾아도 아름답다. 산책이 무료하다 싶을 땐 벤치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힐링이 된다. 은행나뭇길에서 출발해 곡교천을 따라 산책을 즐기거나 운동하고 있는 이들, 반려동물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인근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어 신분증만 있으면 자전거로 곡교천을 따라 달릴 수 있다.

은행나뭇길 제방 아래 카페. 이준호 기자

은행나뭇길 제방 아래 카페. 이준호 기자


서울 한강 부럽지 않은 곡교천

덱을 따라 곡교천 풍광을 즐기다 보면 커피향기가 제방 아래로 난 길로 이끈다. 제방 아래 문을 연 아기자기한 카페와 음식점에서 목을 축이고 요기할 수 있다. 충남경제진흥원 앞쪽으로 푸드트럭까지 생겨 간단한 음료와 간식을 챙겨 들고 산책하는 맛도 일품이다.

이른 아침 찾아오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곡교천에서 피어 오르는 물안개가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 영화 속 장면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서울시민의 축복이라는 한강이 부럽지 않다.

곡교천 야영장의 일출. 아산시 제공

곡교천 야영장의 일출. 아산시 제공

곡교천은 아산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심장과 같은 곳이다. 강물을 사이에 두고 은행나뭇길과 평행선을 이룬 반대편 둔치는 찾는 이에게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고즈넉한 풍광을 선물한다. 시원하게 열린 자전거 도로, 덱과 문양이 예쁜 디딤석으로 만든 산책 코스, 캠핑장까지 갖춘 공간은 지루해질 수 있는 여행에 즐거움을 준다.

수변덱 앞에서 만난 모래톱 위의 버드나무, 아름다운 철새의 날갯짓과 먹이활동 모습, 길가와 풀섶에 드문드문 얼굴을 내민 이름 모를 꽃들을 구경하는 것도 묘미다.

곡교천 야영장 전경. 아산시 제공

곡교천 야영장 전경. 아산시 제공

은행나뭇길 산책을 마치고 제방을 내려와 강물 건너 둔치에 이르면 도심 속 캠핑장이 손짓한다. 아산시가 시민들이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최고의 명소다.

캠핑 장비와 바비큐 장비 등을 대여해주고 편의식품과 일회용품 매점을 운영해 별도의 캠핑 장비 없이도 편리하게 야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곡교천 야영장은 나무 그늘과 정자, 덱이 설치돼 있어 휴식을 취하기 좋다. 샤워장 화장실 개수대 전기시설 등 편의시설을 완비해 편리하다. 이용요금은 주중, 주말이 다르지만 1만5,000~2만 원으로 저렴하다.

현충사 전경. 아산시 제공

현충사 전경. 아산시 제공


현충사, 공세리성당... 볼거리 풍성

은행나뭇길과 캠핑장으로 이어진 길은 방화산 기슭의 현충사까지 이어진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여유가 있다면 걷는 것을 추천하지만 차로 5분이면 닿아 짧은 드라이브코스로도 제격이다. 이 도로변 은행나무 풍광도 일품이다.

이곳엔 충무공이 성장해 무과 급제 때까지 살던 옛집이 있다. 장군이 숨지고 108년이 지난 1706년 숙종이 사당을 세우고 현충사 휘호를 내렸다.

경내에 들어서면 장군이 혼인 후 거주하던 집과 장군의 정신과 위업을 선양하기 위한 사당, 관련된 각종 유물이 전시된 전시관이 있다. 소나무가 우거진 경치도 무척 아름답다. 옛집 옆에는 수령 수백 년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있다.

현충사 연못. 아산시 제공

현충사 연못. 아산시 제공

현충사를 나와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아산시가 만든 둘레길 '효(孝)의 길'과 닿는다. 2020년 준공된 둘레길은 현충사에서 은행나뭇길을 거쳐 인주면 해암리 게바위까지 15㎞에 이른다. 백의종군한 인간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어머니 시신을 맞이하기 위해 걷던 여정과 전장으로 향하던 14박 15일간의 고통과 절절한 슬픈 사연이 새겨진 길이다.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길 노선도. 아산시 제공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길 노선도. 아산시 제공

시는 백의종군 효의 길을 따라 난중일기를 기록한 이야기 표지석을 날짜별로 설치하고 중방포구자리, 고분다리 등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지명, 유래 등 안내판을 설치했다.

눈 내린 공세리성당. 이준호 기자

눈 내린 공세리성당. 이준호 기자

현충사를 나와 차를 몰고 인주면 공세리로 발걸음을 옮기면 한국 천주교에서 아홉 번째로 지은 공세리성당에 이른다.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성당답게 충남도 지정기념물 제144호로 보호받고 있다. 공세리성당은 이 지역에서 천주교를 믿다 병인박해 때 순교한 32명을 기리고 있다.

이곳 성당에는 병인박해 당시의 유물과 유품 1,500여 점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성당 주위에는 ‘십자가의 길’과 별채로 꾸며진 성체조배실이 있다. 뾰족한 탑과 높은 천장 등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본당 건물은 높은 언덕에 자리해 고풍스럽고 웅장하다. 350년이 넘는 국가 보호수가 네 그루나 있고 그에 버금가는 거목들이 성당을 호위하듯 늘어서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공세리성당의 봄 전경. 아산시 제공

공세리성당의 봄 전경. 아산시 제공

아름다운 경관으로 ´태극기 휘날리며´,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미남이시네요´, ´아내가 돌아왔다´, ´청담동 앨리스´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명소로 사랑을 받았다. 2005년 한국관광공사 주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성당이 자리한 공세리는 조선시대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가 있던 공세곶창지(貢稅串倉址)였다. 300년 동안 국가의 쌀창고가 운영되었던 역사유적지이다.

성당을 둘러보고 내친 걸음을 되돌리지 않고 곡교천 하류를 향하면 낙동강 하구 을숙도를 연상케 하는 곡교천 하류의 하중도에서 은빛물결이 장관인 억새군락지를 감상할 수 있다.

아산시가 하중도 4만8,700㎡에 야심차게 조성한 억새군락지는 은행나뭇길에 버금가는 힐링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성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산책로, 둔치와 하중도 간 연결다리, 여울형보와 덱로드, 조류 관찰대 및 쉼터 등이 있다.

농경지로 불법 경작되던 둔치를 정비하고 깨끗한 샛강수를 흘려 보내 원형이 복원되자 각종 철새 떼가 돌아오는 등 생태계 복원이 진행 중이다. 아산시 원도심부터 삽교천 합류점까지 연결된 하천 양안 제방도로도 자전거 하이킹, 자동차 드라이빙 코스로 만들었다.

오세현 아산시장은 “은행나뭇길, 현충사, 곡교천 억새군락지, 공세리성당을 잇는 길은 아산시민이 애지중지 가꾼 자산”이라며 “더 사랑받는 명품 관광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아산= 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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