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당당하게... '홍은상가' 골목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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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당당하게... '홍은상가' 골목을 바꾸다

입력
2021.11.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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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건축주이자 건축가인 이세웅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홍은상가를 '작지만 당당한 집'이라고 소개한다. 층마다 2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집이지만 두 개의 굵은 기둥, 전면부의 큰 창이 웅장한 인상을 준다. 사진=임준영 작가


작지만 당당한 집은 형용모순이다. 적어도 한국의 건축 문법에서는. 작은 집에는 위풍당당보다는 소박한, 아담한 등의 수식어가 더 어울린다. 하지만 서울 서대문구의 '홍은상가(대지면적 136.2㎡, 연면적 192.6㎡)'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960~1970년대 표준주택이 밀집한 홍은동 골목 안쪽에 자리한 홍은상가는 형용모순, 그 예측 불가한 매력을 시현하는 집이다.

집은 작다. 3층짜리 건물은 층당 20평이 채 안 된다. 1층은 이세웅 최연웅 소장이 운영하는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이고, 3층은 이 소장 부부가 생활하는 살림집이다. 2층은 임대 세대로 신혼부부가 살고 있다. 건축주이자 건축가인 이 소장은 상업적 가치로만 재단되는 상가주택의 건축적 힘에 주목한다.

돌출된 기둥, 바닥까지 내려온 창... 얼굴 있는 건물을 만들다

스타코로 마감한 건물 외벽과 달리, 전면부의 기둥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존재감을 부각했다. 사진=임준영 작가

이 소장은 "바닥 면적이 작고 층수가 낮더라도 우뚝, 당당하게 서 있는 집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건축 문화의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풀어 말하면 시장에서 잘 통하는 스타일은 굉장히 제한적이고 보수적이에요. 자기가 돈이 많든 적든 간에 깔끔하면서도 재료가 비싸 보이는, 흔히 '고급스럽다'고 하는 건물들을 따라 하려고 하죠. 그러지 말고 중산층 고유의 건축 스타일, 새로운 건축 미학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는 "서민, 중산층이라 해서 왜 항상 소박하고 아담해야 하느냐, 그런 의문이 있었다"며 "비싼 자재나 마감재를 쓰지 않고도 충분히 위풍당당한 집을 짓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홍은상가는 안팎으로 스타코, 나왕 합판, 합지 벽지 등 대중적인 마감재를 썼다. 그런데도 건물이 웅장한 인상을 풍기는 건 전면부에 위치한 기둥 덕이다. 구조적으로 건물의 뼈대 역할을 하는 두 개의 굵은 기둥은 외벽에 돌출돼 1~3층을 가로지른다. 스타코로 마감한 건물 외벽과 달리, 기둥 부분만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존재감을 부각했다. 창도 건물 크기보다 유달리 크다. 바닥까지 내려와 있는 길고 넓은 창은 별도의 테라스가 없는 공간에 개방감을 준다.

홍은상가 3층 이세웅 소장 부부가 사는 집. 집 안의 기둥은 나왕 합판으로 마감해 따뜻한 느낌을 살렸다. 사진=임준영 작가


이세웅 소장 부부가 사는 집은 방 1개가 전부다. 방 개수를 늘리는 대신 사용 빈도가 높은 주방을 넓게 만들어 답답함을 최소화했다. 사진=임준영 작가


창을 천장부터 바닥까지 시원하게 낸 덕에 테라스 없는 좁은 공간에서도 개방감이 느껴진다. 프랑스식 발코니의 역할을 기대하며 만든 창이다. 사진=임준영 작가

건물 안은 밖과 다르게 평범함을 따랐다. 3층에 위치한 집은 주방 겸 거실, 방 1개, 화장실 1개가 전부다. 집에서 요리를 즐기는 부부의 성향을 고려해 주방을 넉넉하게 확보하고 대신 방은 1개만 만들었다. 작은 집일수록 한 군데는 탁 트여 있어야 답답함을 상쇄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외벽 기둥과 맞닿아 있는 내부 기둥은 나왕 합판으로 마감해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반대로 1층 사무실은 3층과 다르게 투박한 인상이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데다, 3.05m의 높은 층고 덕에 2, 3층의 생활 공간들과는 공기부터 다르다.

홍은상가 1층에 위치한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하고 3m가 넘는 층고를 확보해 2, 3층의 살림집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임준영 작가


1층 건물 입구로 들어섰을 때 오른쪽에 위치한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 사진=임준영 작가

이 소장의 또 다른 모순적 시도는 동네와 조화로우면서도 차별화된 집을 만들고자한 데 있다. 홍은상가는 용적률을 꽉 채우지 않았다. 4층까지 올릴 수 있었지만 3층에서 멈춘 '일부러 낮춘 집'이다. 이층집이 대부분인 이웃집에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서울 하늘 아래 한 층, 한 층이 가지는 부동산적 가치만 따졌다면 절대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건물 전면부 마감재도 주변 벽돌 집들과 잘 어울리는 적갈색으로 택했다. 건물명도 오래전부터 동네에 있던 것처럼 홍은상가로 지었다.

그러면서도 개성은 드러내길 원했다. 좁은 골목 탓에 건물을 정면에서 마주보기는 힘들어, 측면에서 봤을 때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설계했다. "진입로에서 건물을 비스듬히 보면, 부조 작품처럼 집 표면이 (매끈하지 않고) 몇 ㎝씩 미세하게 튀어나오고 들어가고 난간은 반짝거리면서 건물의 인상을 만들어요. 이건 얼굴이 있는 건물인 거죠." 옆, 뒤와 달리 건물 전면부만 붉은색을 띄는 것은 동네와의 조화를 고려하면서 사람으로 치면 건물의 얼굴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

1층 상가 최대로 확보해 쇼윈도처럼... 거리가 바뀌었다

골목 진입로에서 보이는 건물의 측면. 굴곡 있게 만들어 건물에 표정을 입히고자 했다. 사진=임준영 작가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2021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응모한 49개 팀 중 3팀이 수상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1등 상 격인 '올해의 주목할 팀'으로 선정됐다. 젊은 건축가상은 건축물에 수여하는 여타의 건축상과 달리 건축가, 즉 사람에게 주는 상이라는 의미가 깊다. 홍은상가도 아파랏체의 젊은 건축가상 출품작 중 하나였다. 심사위원들은 "불협화음, 낯섦, 기이함, 뻔뻔함"을 이들의 건축적 특징으로 정의하며 "한국 건축 풍경의 새로운 서사를 열고 있다"고 평했다.

아파랏체의 직전 사무실은 연남동에 있었다. 골목의 정취가 남아 있던 연남동이 점차 번화하게 되자, 한적한 터를 찾다 2019년 홍은동에 자리를 잡게 됐다. 집과 사무실을 한 건물에 계획한 건, 임대료 등 각 공간에 지불하는 비용을 따지면 상가주택이 더 경제적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일과 생활이 잘 분리되지 않는 건축가의 직업적 특성상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는 '직주일체(職住一體)'는 큰 장점이다. 이 소장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집에 있다가도 언제든지 밑에 내려가서 집중해 일하는 게 가능하다"며 "아침이 여유롭고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상가주택은 걷고 싶은 거리,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크다. 홍은상가는 행인들이 주차장보다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풍경을 곁에 둘 수 있도록 1층의 상가 면적을 최대한으로 확보했다. 사진=임준영 작가


홍은상가 1층에 자리한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의 저녁. 사무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어두운 골목을 밝힌다. 백화점 쇼윈도를 연상하게 한다. 사진=임준영 작가

한국의 무수한 상가주택은 그 건축적 가치와 역할을 외면한 채 지어진다. "상가주택은 도시에서 중요한 존재예요. 사람들이 '이 동네가 너무 매력 있고 좋다', '여기 한번 살아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상가주택이 만드는 거리와 보행 환경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우리 상가 주택은 주차장을 확보해야 하고, 그럼 1층이 남아나지 않죠. 다 주차장으로 변해요. 매력적인 가로가 생기기 쉽지 않은 여건입니다."

홍은상가는 그래서 1층 상가 면적을 최대한 확보했다. 주차는 건물 뒤편과 측면에 할 수 있도록 했다. 거리에 대한 존중이자 행인에 대한 배려다. 동네 주민들이 건물 앞을 오고 갈 때 주차된 차나 텅 빈 주차장 옆을 지나지 않기를 바랐다. 다소 어두침침했던 오래된 주택가 표정은 건물이 들어선 뒤로 조금은 밝고 활기차졌다. 이 소장은 "백화점 쇼윈도 형식을 취해, 안에서 따뜻한 불빛도 새어나오고 우리가 일하고 있는 모습도 잘 보이는 1층을 만들었다"며 "이웃들도 길을 지나다닐 때 좋아해줘 만족한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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