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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부사관 '성추행 피해 사망' 또 있었다… "군, 자백 받고도 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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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부사관 '성추행 피해 사망' 또 있었다… "군, 자백 받고도 은폐"

입력
2021.11.15 16:00
수정
2021.11.15 17:08
1면
0 0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과 비슷한 시기 발생
군검찰, 추행 인지하고도 '스트레스로 사망'
수사종결 후 5개월 만에 뒤늦게 강제추행 기소
공군 "업무상 스트레스 인정돼 순직 처리"

충남 계룡대 공군본부 정문 전경. 연합뉴스

충남 계룡대 공군본부 정문 전경. 연합뉴스

공군 20전투비행단에서 선임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한 고(故) 이예람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무렵, 공군 8전투비행단에서도 강제추행 피해 부사관의 사망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군은 사인 조사 과정에서 성범죄 정황을 인지하고도 유족에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단순 변사로 처리,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군인권센터는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올해 5월 11일 8비행단 소속 여군 A하사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히면서 "군 수사당국은 처음엔 사건을 단순 변사사건으로 종결했다가 뒤늦게 가해자를 강제추행으로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사망 이틀 전 만나고도 증거 삭제

충남 계룡대 공군본부 전경. 뉴스1

충남 계룡대 공군본부 전경. 뉴스1

센터에 따르면 A하사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사람은 같은 부서 상관 B준위다. 그는 A하사 사망 당일 오전 수상한 행적을 보였다. 일과 시작 전인데도 A하사가 출근하지 않았다며 영외 숙소를 찾아가 문을 열려고 시도했고, 결국 나중에 도착한 주임원사와 함께 방범창을 뜯고 숙소 내부로 들어갔다. 또 집 안에서 A하사 시신을 발견한 후에는 A하사 소지품을 만지며 집 안을 수색했다. 경찰이나 119에 신고하는 통상적 조치 대신 피해자 숙소에 침입해 현장을 훼손한 셈이다.

8비행단 군사경찰은 B준위를 의심스럽게 여겨 별도 조사를 진행했다. 센터가 공개한 수사기록에 따르면 군사경찰은 사건 발생 10일 후인 5월 21일 B준위를 소환해 A하사에 대한 감정과 평소 관계, 사적 만남 및 연락 여부 등에 대해 캐물었다. B준위는 A하사보다 계급도 한참 높을뿐더러 나이도 28세나 많다. B준위 조사일은 공교롭게 이예람 중사가 숨진 채 발견된 날이다.

B준위는 올해 3~4월쯤 두 차례에 걸쳐 부대 상황실에서 A하사의 볼을 잡아당기는 등 추행을 했고, 이 과정에서 A하사가 "얼굴 만지는 것 싫습니다" 등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자백했다. '현장에서 노트북이나 유서 등 기록물을 챙겨 나온 일이 있느냐' '함께 근무하는 동안 피해자와 성적 스킨십을 하거나 성관계를 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는데, 이들 답변은 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 거짓으로 판명됐다. 참고인 조사에선 B준위가 평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행이나 신체 접촉을 자주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수사 과정에서 B준위는 여러 차례 A하사의 숙소에 혼자 방문하거나 A하사에게 업무와 관련 없는 연락을 자주 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A하사가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부대원도 B준위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망 이틀 전인 5월 9일 B준위가 A하사에게 만나자고 한 뒤 본인 차에 태우고 20분가량 함께 있었던 것이다. B준위는 군 경찰 조사를 받을 당시 그날 A하사와 통화한 기록과 차량 블랙박스 녹화 영상을 삭제한 상태였다.

"공군, 성추행 인지 사실 넉 달간 숨겨"

"임태훈 군인권센터장이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공군 성추행 피해 여군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 센터장은 기자회견에서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발생한 성추행 피해 여군 부사관 사망 사건을 공군이 스트레스 자살로 둔갑시키며 엉망진창으로 사건을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뉴스1

"임태훈 군인권센터장이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공군 성추행 피해 여군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 센터장은 기자회견에서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발생한 성추행 피해 여군 부사관 사망 사건을 공군이 스트레스 자살로 둔갑시키며 엉망진창으로 사건을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뉴스1

그러나 군사경찰은 B준위의 강제추행 혐의 등을 반영하지 않은 채 6월 10일 A하사 사망 사건을 단순 변사로 종결했다. A하사 주변인 진술을 토대로 고인이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통제에서 오는 우울감 등을 겪다가 목숨을 끊은 걸로 추정된다고 결론 낸 것이다. B준위에 대해선 A하사 집에 강제 진입한 혐의(공동재물손괴, 공동주거침입, 주거수색)만 적용해 주임원사와 함께 7월 기소했다.

유족은 군사경찰이 A하사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파악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유족 또한 B준위 행동에 의구심을 느끼고, 그가 A하사 사망을 부대에 보고하기 전에 증거인멸을 했다면서 6월 부대장, 군 검찰에 구속수사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달 유족이 B준위의 성범죄를 의심해 수사를 요청했을 때도, 군은 진정사건으로 접수했을 뿐 관련 혐의를 이미 조사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공군은 8월 초에야 공군본부 검찰부 차원에서 B준위를 강제추행 혐의로 입건하면서 사건을 표면화했다. 유족이 경위를 묻자 진정사건을 수사하다가 혐의가 드러났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유족은 9월 15일 정보공개청구 석 달 만에 A하사 사망사건 수사기록을 받아보고, 군 검찰이 이미 B준위의 추행 혐의를 파악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센터 관계자는 "유족들은 B준위가 기소된 10월 중순 공소장을 확인하고서야 공군본부 법무실, 8비행단 군검찰·군사경찰이 어떻게 사실을 숨겨 왔는지 정확한 전말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센터는 "이 중사 사건 수사가 국민적 분노와 대통령의 엄중 수사 지시에도 제 식구 감싸기로 종결된 와중에 공군은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 사망사건을 엉망진창으로 처리하고 있었다"고 비난했다. 센터는 "이 중사 사건 발생 후 6월 2일 국방부는 전군 성폭력 사건을 선제 조사하겠다고 했으나 공군은 가해자 자백까지 받고도 A하사 사망 사건과 성폭력 연관성을 의도적으로 은폐했다"고 주장하면서 수사 담당자 및 지휘라인 처벌을 요구했다.

공군은 이에 대해 "(A하사) 사망사건 발생 후 강제추행 등 그 원인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했으며, 그 과정에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순직이 충분히 인정돼 관련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강제추행에 대해서도 사망 사건 발생 때부터 지속적으로 수사를 진행해 (피의자를) 기소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재판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종결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유지 기자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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