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유형이 다양해졌다. 잘생긴 외모에 뛰어난 능력, 명석한 두뇌와 부까지 겸비한 남자들 대신 어딘가 부족한 이들이 여자 주인공의 옆자리를 채워나가고 있다.
배우 옥택연은 지난 8일 첫 방송된 tvN 드라마 '어사와 조이'의 남자 주인공이다. 엉겁결에 등 떠밀려 어사가 돼 버린 허우대만 멀쩡한 미식가 도령 라이언 역을 맡아 활약 중이다. 라이언은 첫 화에서부터 허술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침 시간, 느긋하게 있던 그는 종복이 출근을 재촉하자 그제서야 허둥지둥 집 밖으로 나왔다. 라이언은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홍문관을 향해 달려갔고, 육칠(민진웅)과 구팔(박강섭)은 그의 뒤를 따라가며 옷을 입혀줬다.
KBS2 드라마 '달리와 감자탕'은 지난 11일 종영했다. 배우 김민재는 진무학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공식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소개에 따르면 그는 '무지, 무식, 무학 3무의 소유자지만 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전혀 없는' 인물이다. 진무학은 진지한 표정으로 "똥 싸고 있네"라는 말을 거침없이 하며 기존의 로맨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첫 시즌이 막을 내린 티빙 오리지널 '유미의 세포들'에서는 배우 안보현이 설렘을 안겨줬다. 그가 연기한 구웅은 거무튀튀한 수염과 긴 머리로 시선을 모았다. 구웅의 차림새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유미(김고은)의 세포들은 구웅을 처음 만났을 때 "머리 왜 저래. 베토벤이야?" "수염 났어. 너무 싫다" 등의 말을 했다. 구웅의 대학 동기 루이(주종혁)는 그의 수염에 대해 "여자들 눈에는 더러워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세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들은 '완벽'과 거리가 멀었지만 시청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어사와 조이' 1회 시청률은 수도권 가구 기준 평균 5.1% 최고 6.3%, 전국 가구 기준 평균 5.0% 최고 6.3%를 기록하며 케이블과 종편을 포함한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달리와 감자탕'의 시청률은 첫 회 4.4%였지만, 마지막 회에선 5.7%라는 결과를 얻고 유종의 미를 거뒀다. '유미의 세포들'은 네티즌들의 호평 속에 시즌2를 예고했다.
흔히들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드라마 속 단점 없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로맨스에 설렘을 느껴도 공감은 하지 못했던 이유다. 그동안의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나 라이언 진무학 구웅은 달랐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 매력적이었다. 네티즌들은 현실적인 유형의 캐릭터들에 조금씩 스며들었고, 자신이 연애를 하는 듯 공감했다.
'유미의 세포들'을 선보였던 이상엽 감독과 송재정 김윤주 작가 역시 시청자들의 공감도에 주목했다. 최근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김 작가는 '유미의 세포들'과 관련해 "'내가 연애하는 듯하다'는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며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그렇게까지 몰입을 할 수 있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고 밝혔다. 송 작가는 "서사가 극적이지 않아 편안하게 보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공감하시더라"고 이야기했다.
시간이 흐르며 시청자들의 니즈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신데렐라'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했던 것도 어느덧 71년 전의 일이다. 드라마, 영화 속에 꾸준히 존재했던 '완벽한 남자 주인공'이란 해묵은 설정은 이제 바뀔 때가 됐다. 오늘날엔 완벽하지 않은 주인공들의 어설픈 사랑 이야기가 대중의 마음에 더 큰 울림을 선사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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