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접종 20대, 팔다리에 심각한 발진 겪어
의사, 2차 만류하며 부작용 진단서 써줬지만
보건소 "규정에 없는 병명" 접종예외 인정 거절
의료계 "병명 위주 판단 한계… 기준 개선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심각한 이상반응을 겪은 접종자가 의사로부터 '2차 접종 불가' 진단을 받고도 백신 패스 예외를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확인됐다. 해당 증상이 정부 규정에 열거된 '중대한 이상반응'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보건당국의 논리인데, 관련 통계에 비춰볼 때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백신 패스가 국민 편익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정부가 보다 유연하고 실효성 있게 예외자 인정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작용 진단에도 "정부 목록에 없어" 퇴짜
1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학생 권모(22)씨는 올해 8월 13일 거주지인 경남 창원시 소재 내과의원에서 모더나 백신으로 1차 접종을 했다. 9일 뒤 권씨는 접종 부위인 어깨를 시작으로 빨간 두드러기가 번지는 이상반응을 겪었다. 두드러기가 손과 발목 등으로 퍼지면서, 권씨는 손바닥이 부어올라 주먹을 제대로 못 쥐거나 가려움에 잠을 못 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증상은 권씨가 접종처인 내과를 거쳐 대형병원을 찾아가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고서야 사라졌다.
권씨는 9월 2차 백신을 맞고자 같은 내과를 찾았다가 의사의 만류로 접종을 보류했다. 의사는 권씨에게 "중대 이상반응에 속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수준"이라며 "또 이상반응이 나타나면 큰일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는 대신 권씨가 백신 패스 예외 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병명을 '코로나19 백신으로 인한 수포성 다형 홍반'으로 기재해 진단서를 써줬다.
권씨는 관할 보건소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예외 확인서 발급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담당자는 진단서에 기재된 '홍반'이 질병관리청이 지정한 '중대한 이상반응'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거부 이유로 들었다. 권씨에 따르면, 권씨가 "앞으로 실내체육시설 등을 이용하려면 부작용을 감수하고 백신을 맞으라는 것이냐"라고 질문하자 보건소 측은 "그건 선생님 선택"이라는 대답만 반복했다고 한다.
'병명' 치중하느라 '증세' 고려 안 해
해당 보건소는 권씨 사례에 대한 한국일보 문의에 "(백신 패스 예외 인정 여부는)의사 소견서와 무관하게 질병관리청 규정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질병관리청 규정에 따르면 1차 접종 이후 △아나필락시스 반응 △혈소판감소성 혈전증 △모세혈관누출증후군 △심근염‧심낭염 △길랑바레증후군 등 '중대한 이상반응'을 보인 것으로 신고된 이들에 한해 접종 면제나 연기가 가능하다.
권씨는 "접종도 안 되고 예외 인정도 안 되는 곤란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권씨가 아니더라도,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 이후 이상반응 사례가 2차 접종 면제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신고한 이상반응 가운데 당국이 ‘중대한 이상반응’에 속한다고 판단한 경우는 3.7%(1만2,453건, 지난달 24일 기준)에 불과했다. 나머지 신고 사례(96.3%)는 증상 정도와 무관하게 모두 '일반 이상반응'으로 분류됐다.
의료 현장에선 이 같은 방역당국의 지침으로는 백신 부작용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씨에게 진단서를 써준 내과의원 원장은 "중대한 이상반응으로 알려진 심근염이라도 증상이 경미하면 백신 접종이 가능하고, 어지러움이라도 증세가 심하고 지속적이면 접종이 어려운 것"이라며 "병명에 따라서만 접종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병명 중심의 현행 지침으로는 백신 이상반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권씨처럼 의학적 이유로 백신을 맞기 어려운 이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의사 소견을 바탕으로 백신 패스 예외 확인이 되도록 지침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현행 정부 지침으로는 중대한 이상반응이 나타나거나 사망하기 전까지는 접종밖에 선택지가 없는 셈"이라며 "백신 패스 예외 인정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야 의사도 환자 상황이 안 좋을 경우 2차 접종을 권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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