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금속노조 조합원 심상정 "역사는 권리 투쟁"
신생 금속노조 조합원 김진희 "참으며 일하지 말자"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가 사망한 날이다. 그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지펴 구하고자 한 것은, 청계피복공장에서 일하던 수만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일하는 자’의 권리를 몰랐던 여공들은 몰려오는 졸음에 바늘로 제 손을 찌르고, 각성제를 삼켜가며 버티는 대가로 푼돈을 받았다.
한국 사회의 노동운동은 전태일 사망으로 본격화됐고, 보호와 배려의 대상이었던 여성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 운동의 한가운데에서 자리를 넓혀왔다.
한국일보는 여성 노동운동가로 출발해 대통령 후보가 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와 지난해 출범한 신생 노조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LG케어솔루션지회의 김진희 수석부지회장의 대담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여성 노동운동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심상정 후보를 만난 김진희씨는 "노조라면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르고 싸우는 남성들이 주로 떠올라 '내가 뭔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간절했기에 노조의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김씨는 가가호호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청소기 등을 주기적으로 점검·관리하는 LG케어솔루션의 매니저다. 남성이 많은 수리·점검서비스(AS) 기사는 수리 한 건당 3만 원을 받는데, 대부분 여성인 매니저들에겐 회사에서 수리를 맡길 때도 건당 3,000원을 제시했다. 노조 결성 움직임이 있고서야 겨우 1만 원으로 올려줬다. 심상정 후보는 "원래 역사는 권리 투쟁이다"고 독려했다.
이들은 과거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던 시절과는 너무나 달라진 균열된 노동구조에 대해 함께 걱정했다. 김씨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또 두 사람은 주4일제 공약을 두고도 공약 제시자와 현장 노동자로서 의견을 나눴다.
_여성 노동자, 그리고 노동조합원으로서의 자신을 서로에게 소개한다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이하 심)= 원조 금속노조 조합원이다. 노동자대투쟁(1987년)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어났다. 이를 주도한 이들이 금속노동자였으며 금속노조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결성됐고, 저 역시 자연스럽게 조합원이 됐다. 그런데 노조 간부교육을 위해 연단에 오르면 대의원들은 강사가 아직 오지 않은 줄 알고 계속 뒤를 쳐다보곤 했다. 젊은 여성이 파업을 지휘한다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해서다.
김진희 LG케어솔루션지회 수석부지회장(이하 김)= 파릇파릇한 신생조직의 조합원이다. 사실 노조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수기 제품에 결로현상으로 인한 곰팡이가 생겨 AS 요구가 폭증하면서 회사에서는 이를 매니저들에게도 수리를 맡겼다. 보통 AS 기사는 수리 한 건당 3만 원 안팎을 주는데 우리에겐 3,000원을 제시했다. 부당한 일이기에 누구든지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만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불만을 가진 매니저 1,700명이 모였고, 금속노조에 상담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심= (김씨에게) 처음 금속노조를 찾아갈 때 두렵지 않았나?
김= 사실 두려웠다. 언론에서 노조라면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르고 싸우는 남성들이 주로 떠오르지 않나. 나는 여성이고 같이 일하는 매니저들 역시 모두 여성 노동자라서 '내가, 우리가 뭔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노동환경을 참고 있어선 안 된다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문을 두드렸다.
_전노협 결성 30년이 지났지만 노조에서 여성 노동자는 여전히 적다.
김= LG케어솔루션지회는 금속노조 사업장 중에 여성의 숫자로는 단연 1위다. 그런데 대부분의 매니저들이 아이들을 낳고 육아, 가사로 경력단절을 겪다가 사회에 나온 케이스라 노조를 접할 기회도 없었고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는 일을 두려워한다.
심= 금속노조 초창기에 여성의 숫자는 2% 정도(현재는 6%)였다. 중앙집행위원 중 여성은 나 하나였다. 산전·산후 휴가나 성별 임금 격차 같은 여성 노동자의 의제들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화를 내고 실력 행사를 해야만 조금씩 반영이 되는 상황이었다.(웃음)
_여성노동의 현실은 어떤가. 구로공단 시절과 비교하자면.
심= 1980년대 구로공단 대우어패럴에서 미싱(재봉틀)을 돌렸다(그는 서울대 사범대학에 다니면서 위장 취업해 서울 구로공단에서 25년간 현장을 지켰다). 봉제 회사라 여성 노동자가 많았는데 관리자나 반장·재단사는 주로 남자였다. 상급자인 남성이 여성에게 욕설을 하고 엉덩이를 만지는 등 성희롱이 다반사인데도 남성들은 그게 범죄라는 사실을 모르고 여성은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깨닫지 못했다. 성별을 떠나 교육을 통해 권리의식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김= 제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방문점검 노동자는 여전히 성희롱에 시달린다. 고객의 집에 들어갔는데 남성 고객이 속옷만 입고 있다든가 성적 농담을 던지는 식이다. 강경하게 대처하고 싶지만 회사에서 뭐라고 할까 두려워서 하지 못한다. 또 문제제기를 하면 막상 회사에서도 '예민하다'라는 식으로 몰아갈 뿐 보호는 하지 않는다. 지속적인 성희롱에 결국 일을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
_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심= 전노협에서 일할 때 별명이 '슈퍼우먼'이었다. 유능하다는 칭찬이라 우쭐한 마음도 들었지만 1992년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니 아무리 분초를 쪼개서 살아도 일과 가정에 모두 충실할 순 없더라. 업무를 마치고 어린이집에 달려가면 우리 아이만 덩그러니 혼자 남아서 울고 있고. 그 모습에 같이 부둥켜안고 운 적도 많았다. 그때 슈퍼우먼이라는 말은 결국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일을 여성의 능력으로 치환하는 여성 독박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 공감한다. 아이들 셋을 키우는데 비슷한 상황이다. 아이들이 이제 중·고등학생인데, 좀 더 어렸다면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본다. 회사에서는 매니저 일이 업무와 육아·가사 병행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거짓 광고다. 퇴근이 늦은 고객의 집에 방문하고 돌아오면 밤 9시다. 아이들이 엄마가 올 때까지 밥을 굶고 있어 미안할 때가 많았다.
_남성, 정규직 중심의 노조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김= 금속노조는 제조업 등 남성 조직이 주류다. 여성은 현장에서 채용되는 폭이 적고 노조 활동에서도 마찬가지로 소수다. 노조 활동을 하려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가사나 육아 때문에 아무래도 여성들은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심= 금속노조나 노동 운동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 사회가 남성, 중년, 정규직 중심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이중, 삼중 차별을 받는다. 예를 들면 집회를 하다가 오후가 되면 여성 조합원들은 불안해한다. 아이를 찾으러 가야 하기 때문인데 이런 상황을 남성들은 이해를 못 한다.
_특수고용노동자, 비정규직 등의 주변화 문제도 지적된다.
김= 여성 노동자라는 성별뿐 아니라 고용 형태 역시 문제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우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회사로부터 업무 위탁을 받은 개인 사업자라서 아무런 사회적 보장을 못 받는다. 자영업자라는 거다. 방문 건당 수수료는 10년 전 수준(9,000원)에 머물러 있다. 최저시급도 안 된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근로자’로 인정했는데도 사측은 불복, 행정소송을 냈다. 들은 체도 하지 않는 회사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심= 원래 역사는 권리 투쟁이다. 시혜로 주는 권리는 유지되기 어렵다. 선거 때 정당, 정치인들이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주겠다’라고 말했던 것 중에서 실제로 우리의 권리로 남아있는 것이 무엇이 있나. 노동자들의 힘은 단결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윤 추구가 최고의 목표라 어떻게 해서든지 노조를 방해하거나 회유하고 싶어한다. 노조는 그 시험을 다 통과해야 비로소 기업으로부터 교섭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다.
_이번 대선에서 주4일제 공약을 냈다. 노동자로서 어떻게 느끼나.
김=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주5일제는 그림의 떡인데 주4일제는 여전히 딴 세상 이야기다. 특수고용노동자를 어떻게 품을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심= 주4일제는 신(新)노동법 공약과 맞물려 있다. 전태일의 외침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였지만 이젠 법을 지키더라도 플랫폼 노동자나 5인 미만 노동자, 특수고용직 등 소외된 이들이 생긴다. 모든 노동자를 포함하는 새로운 근로기준법이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신노동법은 불평등한 노동 격차를 줄이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김= 하루 일하는 날을 줄이되 해야 하는 일은 그대로라면 노동자는 더 힘들 수밖에 없다. 또 급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삼모사가 되지 않을까.
심= 주4일제 역시 코로나로 재택근무도 해봤듯이 통계와 경험을 통해 이미 충분히 가능하다는 검증이 끝났다. 주5일제 도입에 앞장선 경험을 살려 주4일제 제도화 과정에서 다양한 노동자들을 참여시키고,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로드맵을 만들겠다.
_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여성 노동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 비슷한 직군의 남성이 노조를 만들면 정규직 전환 논의가 오가지만 여성으로 이뤄진 노조는 아예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아 버린다. 이처럼 여성의 노동을 저평가하는 기업과 사회의 분위기가 힘들지만, 내 삶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남을 위해 참으며 일하지 말자, 함께 바꿔 나가자고 말하고 싶다.
심= 유력 정당의 대선후보들이 차별과 혐오에 편승하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외면하고 있다. 5년 전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는 페미니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는데, 지금의 양당 후보들은 퇴행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권리쟁취의 역사이고 투쟁의 역사다. 그리고 지금은 여성 노동자들의 성평등 사회를 향한 단결과 투쟁이 필요한 시기다. 페미니즘은 편 가르기가 아니라, 모두가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자는 가치를 지향한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 한 명의 ‘여성 정치노동자’로서 이 시대 여성 노동자들과 늘 함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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