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은 1954년 26세로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이래,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트리플 최연소 기록'을 수립한 전무후무한 정치인이다. 1965년 37세로 의정 사상 최연소 제1야당 원내총무, 1974년 46세로 당 총재가 됐다. 중학생 때부터 벽에 '미래의 대통령'이라고 써서 붙여 뒀던 그는 1993년 2월 25일, 정치인이라는 천직의 최고위에 오른다. 그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문민 시대 개막"을 선언하며 "다시는 정치적 밤이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저자 오인환은 김 전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한 문민정부 최장수 장관이다. 공보처 장관으로 임명돼 문민정부의 시작과 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문민정부가 막을 내린 지 23년, YS가 서거한 지 6년 만에 책을 펴내는 이유에 대해 "YS가 해낸 일이 별로 없다는 묻지 마 식의 평가 절하를 바로잡고 재조명하고 싶었다"고 적었다.
책은 YS의 정책적 성과 중 하나로 금융실명제를 꼽는다. 저자는 금융실명제가 헌정 사상 이승만의 토지 개혁에 이어 가장 성공한 개혁이라고 평가한다. 금융실명제는 모든 개혁의 시발점으로, 정치뿐 아니라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점진적으로 연쇄적 파급 효과를 냈다. 전산화 시스템 발전과 맞물려 국민의 모든 금융 거래와 부동산 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 됐다. 1996년에는 선진국 모임이라 여겨지던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에 성공한다.
반면 1997년 외환위기는 문민정부의 모든 성과를 무위로 만들었다. 저자는 내부자로서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서술한다. 외환위기는 달러의 유동성 위기, 관료들 간의 불통, 외교 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참사였다. 야당인 국민회의가 반대해, 금융관계법 국회 통과로 금융위기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도 놓쳤다고 주장한다. YS가 DJ에 "IMF 사태가 온 데 대해 당신도 응분의 책임을 인정하라"고 했기 때문에 두 대통령이 화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임기 내내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취임한 해 10월,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여객선 서해페리호가 침몰해 273명이 숨졌다. 이듬해 성수대교가 붕괴했고, 그 이듬해인 1995년에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
YS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믿는 실용주의자였다. 비현실적인 공리공론을 배척했고 순발력이 뛰어나 판단이나 결정, 행동이 빨랐다고 한다. 168.5㎝인 작은 키에 콤플렉스가 있어 굽 높은 구두를 즐겨 신는, 장발을 시도하고 옷차림에 신경 쓰는 멋쟁이었다. 조깅과 등산을 즐겼던 YS의 개인적인 면모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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