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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동등한 당사자 간 충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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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동등한 당사자 간 충돌 아냐"

입력
2021.11.12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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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드 할리디 美 컬럼비아대 교수 저작 첫 번역 출간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정착민 식민주의' 규정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격화한 지난 5월 12일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화염이 치솟고 있다. 가자시티=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격화한 지난 5월 12일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화염이 치솟고 있다. 가자시티=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에 레바논이 말려들면서 1975년 시작된 '레바논 내전' 당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 라시드 할리디(73)는 수도 베이루트에 살고 있었다. 마론파 기독교계인 바시르 제마옐이 이끄는 ‘레바논부대’에 포위당한 팔레스타인 난민촌은 괴멸됐다. 2,000명이 살해됐고 당시 할리디가 운영하던 유치원의 교사 두 명도 여기에 포함됐다. 그의 친구 카심의 11세 조카도 납치돼 희생됐다.

요르단강 서안 아우자, C 지역. 저자의 남동생 라자 할리디가 살던 주택의 기반. 이스라엘군이 불도저로 밀어 버렸다. 열린책들 제공

요르단강 서안 아우자, C 지역. 저자의 남동생 라자 할리디가 살던 주택의 기반. 이스라엘군이 불도저로 밀어 버렸다. 열린책들 제공

이 사건은 할리디가 오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밝힌 개인사의 일부다. 중동 문제 전문가이자 미 컬럼비아대 교수인 할리디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동등한 두 당사자의 충돌로 보지 않는다. 그는 신간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분쟁의 기원과 성격을 '정착민 식민주의'로 규정한다. 수천 년 전 선조의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유대인의 서사와 달리 저자는 100년의 현대사에 한정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다. 그는 팔레스타인 현대사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힘의 불균형에 따른 식민 지배와 전쟁, 분할의 역사로 풀이한다. 영국과 미국 등 열강을 등에 업은 시온주의(유대 민족주의 운동)가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몰아내고 정착민으로서 밀고 들어왔다는 주장을 위해 슬픈 개인사까지 동원했다.

저자의 증고조부인 유수프 디야 알딘 파샤 알할리디. 열린책들 제공

저자의 증고조부인 유수프 디야 알딘 파샤 알할리디. 열린책들 제공

책은 그의 종고조부, 즉 고조부의 형제인 유수프 디야 알딘 파샤 알할리디가 시온주의 창시자이자 유대계 오스트리아 언론인인 테오도르 헤르츨에게 보낸 편지와 답장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저자는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에서 시온주의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지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시기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헤르츨이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권리는 물론 지능까지 깔보고 있음을 주의 깊게 고찰하지 못했다고 봤다.

저자는 이 같은 시온주의의 태도가 오늘날의 영국과 유럽, 미국 지도자들에게까지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이는 1917년 밸푸어 선언부터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오늘날의 가자지구 공격까지 여섯 번의 결정적 시기를 날카롭게 들여다봄으로써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자에 따르면 이 여섯 가지 사건에서 외부 강대국은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했다. 영국은 밸푸어 선언으로 유대인 국가를 갈망하던 시온주의 운동의 손을 들어줬다. 이를 계기로 팔레스타인에 사는 94%의 아랍 주민 대신 인구의 6%인 유대인에게 민족적 권리를 부여해 이들이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시온주의 운동과 이스라엘 국가 편에는 언제나 거대한 군대가 있었다. 1939년 이전에는 영국군, 1947~1948년에는 미국과 옛 소련의 지원, 1950~1960년대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있었다. 1970년대 이후로는 미국의 지원이 컸다.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 과정에 관여한 역대 미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그렇다면 평화는 가능할까. 저자는 이스라엘이 점령을 종식하고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번복하는 것이 이상적 목표가 될 수 있겠지만 그 전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무모한 저항에만 몰두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변 아랍인과 세계 여론에 호소하는 한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인을 억압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존재함을 설득하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출간된 원저가 저자의 적극적 구애로 국내에 바로 번역·출간된 것도 팔레스타인인의 서사를 더 널리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 때문일 것이다.

식민 지배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인을 아메리칸 인디언과 비교하는 등 누구나 동의할 만한 주장이 담긴 책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팔레스타인인의 시각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얽힌 현대사를 촘촘하게 보여주는 점에서 일독을 권할 만하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라시드 할리디 지음·유강은 옮김·열린책들 발행·448쪽·2만5,000원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라시드 할리디 지음·유강은 옮김·열린책들 발행·448쪽·2만5,000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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