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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년 11월15일 실미도 부대원 유해 발굴

입력
2021.11.1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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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5일
비운의 대북 침투부대…영화 '실미도'로 재조명
20명 발굴, 4명은 아직 찾지 못해

편집자주

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2005년 11월 16일자 한국일보 지면. 유해 발굴 현장을 찾은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사진기사가 실렸다.

2005년 11월 16일자 한국일보 지면. 유해 발굴 현장을 찾은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사진기사가 실렸다.


1971년 8월 24일자 한국일보 1면. 탈취한 버스에서 자폭한 실미도 부대원들의 모습이 실렸다.

1971년 8월 24일자 한국일보 1면. 탈취한 버스에서 자폭한 실미도 부대원들의 모습이 실렸다.

2005년 11월 15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 벽제리묘지에서 실미도 부대원의 유해 발굴이 시작됐다.

(※ 1971년 8월 24일 지면 보러 가기 ☞ www.hankookilbo.com/paoin?SearchDate=19710824 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실미도 부대(일명 684부대)는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기습(1·21사태)에 대한 보복공격을 목적으로 같은 해 4월 1일 창설된 공군예하부대다.

소속 공작원 31명 중 7명은 훈련 중 사망한다. 이후 남은 24명은 가혹한 훈련과 부당한 처우에 반발해 1971년 8월 23일 오전 6시경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부대를 탈출한다. 이들은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했고 이를 저지하던 군경과의 교전 과정에서 공작원 20명이 사망한다. 경찰 2명, 민간인 6명의 희생도 있었다. 당시 생존한 공작원 4명은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72년 3월 10일 사형이 집행된다.

2004년 초 영화 '실미도' 개봉을 계기로 실미도 부대가 재조명되자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사건의 진상을 밝혀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조사를 했다. 이후 2005년 11월 벽제리묘지에서 가매장된 실미도 공작원 20명의 유해를 발굴한다. 군사법원에서 사형 집행된 4명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실미도 부대원들이 자폭한 탈취 버스. 서울 영등포 유한양행 앞. 1971. 8. 23. 한국일보 자료사진

실미도 부대원들이 자폭한 탈취 버스. 서울 영등포 유한양행 앞. 1971. 8. 23.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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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기자
자료조사= 김지오 DB콘텐츠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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