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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제로는 허상... 소득 격차 축소와 차별 해소에 집중해야"

입력
2021.11.10 04:30
수정
2021.11.10 14:4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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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지속 가능 솔루션: 노동분과>
②비정규직 해법은

편집자주

'대한민국 지속 가능 솔루션'은 내년 대선을 맞아 한국일보가 전문가들과 함께 우리나라 당면 현안에 대한 미래 지향적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정치 외교 경제 노동 기후위기 5개 분과별로 토론이 진행되며, 회의 결과는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비정규직 개선 위한 주요제안>

1. 기본인식
-비정규직 제로는 불가능: 비정규직 남용방지와 처우개선에 초점

2. 기업의 비정규직 남용방지
-비정규직 근로계약 갱신이 많은 기업엔 고용보험료 불이익
-경력과 숙련도 있는 특정직무 단기계약직은 추가임금지급
-정규직 과잉보호 축소(저성과자 해고 등 사회적 합의)

3. 비정규직 처우개선
-하청근로자 처우개선 위해 원청을 공동사용자로 간주해 노사협상 유도
-기업임금체계, 연공급에서 직무급으로 전환
-국가임금위원회 설치해 공공임금체계, 최저임금 등 결정

4. 비정규직 보호 및 차별시정
-차별 입증책임 및 비교대상자 재정비
-비정규직 획일적 보호 자제

8월 기준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는 806만6,000명(통계청 조사). 2003년 통계 작성 시작 이래 처음으로 8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임금근로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이다.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임기 첫해(2017년ㆍ650만 명)보다 비정규직은 오히려 150만 명이나 늘었다.

비정규직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수용한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꾸준히 늘어났다. 진보정부는 비정규직(기간제ㆍ파견근로자)에 대한 사용기간 제한과 차별시정 제도 도입을, 보수정부는 정규직 고용보호 완화를 추진했으나 다 역부족이었다. 플랫폼 노동 확산과 서비스업 성장 등 최근 노동시장의 변화는 오히려 비정규직 확산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마련한 '대한민국 지속 가능 솔루션' 프로젝트 노동분과 2차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제로'는 불가능하며, 대신 기업들의 과도한 비정규직 사용 억제와 실질적 처우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 방안으로는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기업에 사회보험료 무겁게 부과 △단기계약 숙련근로자에겐 특별임금 지급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 해소 등을 제안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노동분과 분과위원장)는 “비정규직 문제를 풀려면 현행 연공형 임금체계 개선도 꼭 필요하다"며 "차제에 임금체계, 최저임금 등을 논의할 국가임금위원회 설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분과 2차 회의에는 권순원 교수 외에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욱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 이왕구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참석했다.

지난달 25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대한민국 지속 가능 솔루션' 노동분과 2회 토론회가 진행됐다.왼쪽부터 이욱래 변호사, 박귀천 교수, 권순원 교수, 정흥준 교수. 배우한 기자

지난달 25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대한민국 지속 가능 솔루션' 노동분과 2회 토론회가 진행됐다.왼쪽부터 이욱래 변호사, 박귀천 교수, 권순원 교수, 정흥준 교수. 배우한 기자


비정규직 줄어들 여지 있나

권순원 교수= 고용방식이 다양화되면서 기간제 근로자도 줄지 않고, 파견 근로자 역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우리나라 주요 제조업체는 소비재 생산(B2C)을 줄이는 대신 기업 간 거래(B2B) 유형으로 전환하고 있다. B2B 사업들은 대부분 수주 물량의 공급 시한이 정해진 ‘한시 사업’들로, 신제품 공급을 위해서는 계약을 다시 체결해야 한다. 애플의 아이폰13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는 LG이노텍의 예를 들어 보자. 제품 납품 기간 동안에는 제조 인력이 필요하지만 애플의 후속모델에도 계속 납품이 가능할지는 불확실하다. 이러한 상황이 일반화되면 핵심 인력을 제외한 제조인력의 상시고용이 어려워지며 기간제 근로자 사용이 불가피하다.

이욱래 변호사= 우리나라는 수출 세계 6위인데, 수출경제라는 게 결국은 다른 나라에서 사주지 않으면 사업을 유지할 수 없는 구조다. 유연성 확보가 필요한데 현재로선 비정규직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하지만, 보호해야 할 비정규직이 누구인가는 잘 살펴야 한다. 흔히 비정규직은 차별에 시달리며 불리한 처우 때문에 보호받을 대상이라고 여기지만 법정에서는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고용도 안정된 분들이 비정규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다.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면 그 대상을 정밀하게 파악해서 접근해야 한다.

정흥준 교수=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기는 어렵겠지만 남용을 줄이기 위해선 적어도 고용 안정과 소득 격차 하나는 해결을 해야 한다. 현재 비정규직은 고용만 불안정한 것이 아니라 소득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고용의 불안정성은 감수하더라도 소득 격차를 줄이든지, 소득 격차를 유지할 거면 고용을 안정시켜주든지 두 가지 중 하나라도 해결돼야 한다. 그렇게 돼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줄일 수 있다.

박귀천 교수=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대빈곤율이 4위로 6명 중 1명이 중위소득 50% 이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실업률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닌데 이렇게 상대빈곤율이 높은 건 전반적으로 고용도 불안정하고 질이 낮은 일자리가 확산됐다는 의미다. 일자리를 유연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해도 근로조건이나 근무환경의 질이 너무 낮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격차 해소라는 관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야 한다.

권순원(54)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미국 코넬대 경영학 박사. 현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분과위원장). 배우한 기자

권순원(54)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미국 코넬대 경영학 박사. 현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분과위원장). 배우한 기자


기업의 비정규직 남용 어떻게 막을 것인가

권순원 교수= 비정규직 남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비정규직을 많이 활용하고 근로계약 갱신을 반복해 결국 고용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는 기업에는 보험료 부담을 가중시키는 방법이 있다. 산재보험처럼 위험도에 따라 보험료율을 달리 정하는 방법이다. 또 6월 또는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기간제 근로자들에겐 특별임금 형태로 보수를 좀 더 주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과거 일본 자동차 업체에선 인력 수요가 높아지는 시기 3~4개월간은 계절공(기간제 근로자)들에게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정사원’ 근로자들보다 임금을 더 줬다. 일본의 계절공처럼 자신의 숙련과 경력에 기반해 근로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별도의 노동시장, 즉 ‘직무형 노동시장’을 새롭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특정 직무들은 직무형 노동시장에서 유연성과 임금을 교환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정흥준 교수=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출산, 휴직 등 특정 사유가 없으면 무조건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는 유럽식 ‘사용 사유 제한’은 사용자 저항도 크고 일자리를 감소시킬 수도 있다. 대안으로 기간제 사용을 개선하는 걸 생각해볼 수 있다. 일단 기간제법이 정한 2년 동안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한 후 사람을 바꿔 또다시 그 직무에 기간제를 쓸 수 없도록 해야 한다. 2년 넘게 지속되는 업무는 상시 지속되는 업무로 보고 직접고용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또한 기간제 근로자를 쓸 때 2년 미만 계약을 하고 한두 달 쉬었다가 다시 반복계약을 하는 것도 기간제법을 피하기 위한 편법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3개월, 6개월 초단기 계약은 기간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프로젝트나 출산, 휴직 등의 대체근로로만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박귀천 교수=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번 정부에서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업무에는 기간제 및 파견근로자 사용을 금지하자는 얘기가 나왔었지만 막상 논의에 들어갔더니 어떤 업무가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하느라 시간이 다 갔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발표한 국정과제에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이 포함됐고 지난해 총선에서 여당의 공약이기도 했는데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욱래 변호사=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건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에서 기인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한 번 고용하면 해고가 불가능하다는 리스크를 전적으로 부담하기 어려워 기업이 비정규직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상황이다. 사회적으로 지나친 저성과자나 경기 변동에 대한 해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합리적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굳이 기업이 비정규직을 뽑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이욱래(55)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서울대 법학과. 서울지방법원 판사, 대법원 조사심의관 역임. 배우한 기자

이욱래(55)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서울대 법학과. 서울지방법원 판사, 대법원 조사심의관 역임. 배우한 기자


비정규직 처우 어떻게 개선할까

정흥준 교수=비정규직 근로자에는 100만 명이 넘는 용역노동자가 포함되는데 원청의 책임 범위를 놓고 논란이 많다. 이 문제는 규제가 아닌 노사관계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근 사용자 범위를 확장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내하청의 경우 원청사용자들이 교섭에 나와 공동교섭을 하는 등 ‘공동사용자’로서의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을 말한다. 사내하청을 쓸 수밖에 없다면 원청이 책임을 같이 지게 하는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미국에서도 같은 작업장(site)에 사내하청이 있을 경우 원청기업의 실질적인 지배ㆍ지휘 관계에 있다고 보고 공동사용자 개념을 법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공공부문 자회사들의 경우 모자(母子) 기업 간 차별이 문제가 되고 있다. 자회사를 만드는 케이스가 많은데 모회사의 복리후생 등 단체협약의 효력을 자회사까지 확장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박귀천 교수= 노사관계로 풀어보자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독일에서는 원청회사와 하청회사가 공동종업원평의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임금격차를 줄이려는 시도를 한다.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이 낮은 상황에선 노사의 단체교섭이라는 형태뿐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방식의 기구를 통한 다양한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이욱래 변호사= 정규직을 양산하는 원인은 연공급제인 임금테이블이다. 만약 직무급에 대한 선도적 모델이 생긴다면 각 회사들도 그에 준용해 적용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권순원 교수= 경력직 채용이 활발해지고 외부 노동시장이 발달하면 자연스럽게 직무형 노동시장으로 이행될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연공형 임금체계의 대안들을 모색하고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 비정규직법을 만들 때 노동조합이 차별 개선을 위한 방법으로 직무급을 주장했었으나 지금은 반대하고 있다. 아쉽다.

정흥준 교수= 기획재정부가 공공부문 임금의 가이드라인을 정하는데 임금체계를 변화시키려면 큰 틀의 사회적 협약이 필요하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단계적으로 적용하다 보면 직무급 체계가 완성될 것이고 민간부문으로의 확장도 이뤄질 수 있다.

권순원 교수= 국가 차원의 임금제도 개선, 시장 변화에 조응하는 임금체계 설계 및 적용 등을 위해 ‘국가임금위원회’ 같은 것을 상설화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도 결정하고, 공무원 및 공공기관 종사자 임금체계 및 임금수준도 결정하는 것이다. 기구가 활성화되면 민간부문 가운데 혁신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에 대해 컨설팅 등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귀천 교수= 임금 격차를 줄이는 근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선 직무가치를 평가해야 하는데 이건 국가나 사용자가 주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노사정 대화가 이뤄져야 새로운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박귀천(49)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화여대 법학과·독일 프랑크푸르트대 법학박사. 현 중앙노동위 공익위원. 배우한 기자

박귀천(49)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화여대 법학과·독일 프랑크푸르트대 법학박사. 현 중앙노동위 공익위원. 배우한 기자


비정규직 차별 어떻게 시정할까

권순원 교수= 비정규직(기간제ㆍ파견근로자) 차별시정제도가 차별받는 비정규직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조건을 증명하기가 까다로워 차별 시정의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박귀천 교수= 근로자가 회사에 다니지 않는 상태에서 제기하는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달리 차별 시정 요구는 근로자가 직장에 다니면서 회사 측과 다투어야 하기 때문에 활용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비정규직은 노조 조직률도 낮기 때문에 당사자가 아닌 노조가 차별신청을 대신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해도 본질적 해결책이 안 된다. 이 제도를 활용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차별받는 비교 대상자를 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비교 대상을 없애기 위해 아예 비정규직만 사용하는 ‘모듈화 방식’을 활용한다. 예컨대 대형마트의 수납원들은 100% 비정규직이라 비교 대상자를 찾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근로조건이 산업별 단체협약으로 결정되는 독일에서는 사업장 내에 비교대상자가 없으면 동종업종 종사자 중 비교대상자를 찾기도 한다. 비교대상자의 임금을 알아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따질 수 있으므로 기업의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

권순원 교수= 임금정보 공개는 민감한 이슈라 기업들이 거부한다. 하지만 차별문제 시정을 위해서는 차별의 입증 책임을 기업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욱래 변호사= 입증 책임보다는 비교 대상 근로자가 존재하느냐가 더 큰 쟁점이다. 파이가 고정돼 있다면 나누는 방식에 대해 노조 내 양보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존 노조의 단협이나 규약을 찾아보면 기간제와 파견제 같은 비정규직은 배제하는 사업장들이 많다. 서로 다른 직무 간 균형점, 허용될 수 있는 차등이 어느 정도인가 고민하는데 이를 차별시정제도로 풀기에는 어렵다. 직무가치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정흥준(49)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 성균관대 전기공학과·고려대 경영학 박사. 현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이사. 배우한 기자

정흥준(49)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 성균관대 전기공학과·고려대 경영학 박사. 현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이사. 배우한 기자


일괄적 비정규직 보호 손볼 필요

권순원 교수= 보호 대상 비정규직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 기간제법을 참고해 법을 만들었는데 법의 운용과 정책설계 과정에서 비정규직 유형을 분류해 ‘비자발적 비정규직’만을 핵심 대상으로 고려한다. 우리나라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자발·비자발 여부를 묻기는 하지만 응답의 신뢰성이 떨어져 정책적 활용이 어렵다. 노동시장 내 근로계약 및 근로유형 다양화에 따라 자기 필요에 의해 기간제 근로 등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경우 보호의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가운데에서도 고용보험에 가입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도 많다. 골프장 캐디 같은 경우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면 수입이 급감할 수 있다. 택배기사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하다. 법으로 강제 보호가 필요한 대상과 자율적 보호와 자주적 근로조건 형성이 가능한 대상들을 구분해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욱래 변호사= 학원강사 상당수가 특수고용직이다. 그런데 수십억 원을 버는 ‘일타강사’ 같은 학원강사를 근로자라고 간주해 퇴직금을 줘야 할지 아니면 위임직으로 근무를 하게 할지 학원은 고민하게 된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면 근로소득세를 납부해야 하고 근태관리를 해야 하고, 위임직이 되면 종합소득세를 내고 수업시간에만 오면 된다는 식으로 설명한 뒤 두 가지 중 선택하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다만 두 가지 선택지를 설명해 준다면 적어도 나중에 이의 제기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실제로 특수고용직인 AS 기사의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체력이나 상황에 따라 ‘나인(9) 투 식스(6) 근무’를 선호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상황에 따라 조금 더 일을 해서 소득을 더 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일괄적으로 지위가 결정되면 산업의 활력이 떨어지는 건 분명하다.

박귀천 교수= 사업장 내에서 근로자들이 필요에 따라 단시간 근로와 통상 근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선택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현행법에는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이 8세 이하 자녀 양육, 질병ㆍ사고 등으로 건강을 돌봐야 하는 경우, 학업을 위한 경우 등으로 제한돼 있다. 독일의 비정규직법은 정규직 근로자가 근로시간 단축을 청구하는데 특정한 사유를 요구하지 않는다. 제도화한다고 바로 정착되지는 않겠지만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택하느냐 시간선택제를 활용하느냐 여러 가지를 따져보면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실태 반영 못하는 비정규직 통계>

통계는 정책과 제도의 출발이다. 미국은 노동통계 조사 및 데이터 관리를 위해 노동통계국(BLS)을 설치해 운용한다. 우리나라는 사업체, 가구, 개인 등을 단위로 관련 통계를 조사하지만 정책과 제도를 지원하기에 부족하며, 분류체계도 낙후되어 있다.
개선이 시급한 분야가 비정규직 근로자 통계다. 대표적 비정규직 통계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의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다. 2001년 7월 발족한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근로자대책특별위원회’가 비정규직 관련 통계개선에 합의하면서 고용형태별 조사가 시작되었다. 한시근로(기간제, 비기간제), 시간제근로, 비전형근로(파견, 용역, 특수형태근로, 일일근로, 가정내근로) 등으로 비정규직을 구분한 조사는 2003년부터 매년 8월 조사해 10월 중 발표한다. 여러 사유로 설문방식과 내용에 변화가 있었으나 조사 범주는 최초 구분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특수형태근로(특고) 범주다. 현행 조사에서 특고는 ‘임금근로자’의 ‘비전형’ 유형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특고는 임금근로자가 아닌 독립 범주로서 구분 조사가 필요하다. 범주상 오분류로 2021년 8월 조사에서 특고는 약 56만 명으로 나왔는데, 비공식 통계지만 고용노동부가 2018년 노동연구원에 의뢰한 조사에서 특고는 165만 명 규모다. 통계와 현실의 차이다.
‘용역’유형도 문제다. ‘용역’으로 분류되는 범주는 도급계약 하의 위탁업체에서 일하는 수급업체 노동자다. 그러나 ‘용역’은 근로형태가 아니다. 생산과 서비스 제공의 일반적 표현이며, 도급에 한정할 경우 사업 완성을 위한 계약의 일종이다. 따라서 용역노동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실제 통계도 경계가 불분명하며 대상 또한 불특정이다.
차제에 특고를 임금노동자에서 분리해 별도 범주로 설정하고 조사설문지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용역노동 범주는 조사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ㆍ정혜린 인턴기자

지난 4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고용노동부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노동기본권 쟁취, 노조법 2조 개정,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세종=뉴스1

지난 4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고용노동부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노동기본권 쟁취, 노조법 2조 개정,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세종=뉴스1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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