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센터, 정 일병 휴대폰 포렌식 메시지 공개
피해 호소에도 가해자 분리 안 해 2차 피해 유발
"기본권 침해" 함장·부함장 상대 인권위 진정
"아무도 믿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배에서 폭언을 당하기 전 정상이었다는 것 정도는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4월 1일, 정 일병이 병영생활상담관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해군 3함대 강감찬함 소속 정모 일병이 함정 내 선임병들의 구타와 폭언, 집단따돌림에 시달리다가 올해 6월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군인권센터가 정 일병이 생전에 함장(대령)과 부함장(중령) 등 지휘부와 나눈 메시지를 공개하고, 이들이 보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군인권센터는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 일병 휴대폰 포렌식 결과와 함께 그가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 2월 강감찬함에 배속돼 갑판에서 근무하던 정 일병은 3월 16일 '업무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선임병인 상병에게 폭행·폭언을 당했다. 같은 날 오후 정 일병은 함장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서툴게나마 도우려던 절 밀치며 '씨X, 너 뭐하는데? 그럴 거면 꺼져라' 등의 말을 했다"며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그러면서 "해당 수병의 전출 조치를 원한다. 자해 충동과 자살 생각이 이따금 든다"고 호소했다. 함장은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자.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답장했지만 정작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등 즉각 필요한 조치는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정 일병은 선임병 3명에게 '네가 홋줄(배 정박용 줄)에 맞아 죽었으면 좋겠다' '죽어서 우리 배를 빨리 떠나면 좋겠다' 등의 폭언을 들었다. 정 일병은 배에서 계속 이들과 마주쳐야 했다. 당시 정 일병은 동기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이 사람들은 내가 죽어도 괜찮은 사람들인가 보다. 양묘기(닻을 감거나 푸는 장치)실에 가서 머리를 철판에 내리치면서 울었다"며 "갑판이 정말 좋은데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열흘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에 혼자 우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해군 정 일병 사망사건 관련 강감찬함 지휘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제기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의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3월 27일 정 일병은 가해자들이 새 부서 선임들에게 자신을 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같은 날 저녁 함장에게 전화해 상황을 보고하고 "죽고 싶다"고 말했지만, 함장과 부함장은 그에게 화해를 권하면서 가해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가해자들은 이 자리에서 "(정 일병이) 일을 못 하고 하려는 의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며 오히려 정 일병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튿날 정 일병은 함장에게 메시지를 보내 "선임들을 마주칠 때마다 더욱 정신질환 증상이 심해진다"며 "취사 업무를 수행하던 중 구토, 공황발작, 과호흡 증상이 이유 없이 찾아왔는데, 정신과 치료 후 육상 전출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구체적으로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함장은 정 일병에게 "견뎌보라"고 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휘관들은 다음 날 정 일병을 '도움병사(C등급)'로 지정했다.
3월 30일 정 일병은 병영생활상담관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배가, 사람이 저를 망친다고 솔직히 보고드렸는데 (함장이) '의지가 없으면 안 된다' '하기 싫으면 말해라' '그럼 이제 널 도와줄 수 없다'고 하고는 내무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정 일병이 아프니까 잘 보듬어줘라'라고 말했다"며 "내무실에 가는 게 힘들고 인간관계는 더 틀어졌다"고 토로했다.
부함장 역시 4월 초 정 일병이 공황 증상을 보이자 면담 과정에서 "잘 해보기로 해놓고 왜 또 그러냐"라며 질책했다고 한다. 그달 6일에야 정 일병은 하선해 민간병원 진료를 받고 정신과에 입원했다. 퇴원 후 7월 2일까지 휴가를 받았지만 정 일병은 6월 18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센터는 "지휘관들이 방치에 가까운 부적절한 대응으로 정 일병의 생명권과 기본권을 침해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하며 회견 직후 인권위에 함장과 부함장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센터는 "인권위는 이들을 면밀히 조사해 엄중 징계를 권고하는 한편, 해군이 폐쇄적 공간인 함정에서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보호할 실효적 대책을 마련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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