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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해 보셨나요?

입력
2021.11.09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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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간병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가 만들어졌다. 한국의 간병 실태를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다. 이 단체는 첫 행동으로 지난 4월 14일 서울대병원 앞에서 집회를 갖고 병원의 지시와 방조 아래 간병인의 무면허 의료행위가 빚어지고 있다며 빅5 대학병원을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간병을 건강보험의 제도권 안에 둘 것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간병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가 만들어졌다. 한국의 간병 실태를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다. 이 단체는 첫 행동으로 지난 4월 14일 서울대병원 앞에서 집회를 갖고 병원의 지시와 방조 아래 간병인의 무면허 의료행위가 빚어지고 있다며 빅5 대학병원을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간병을 건강보험의 제도권 안에 둘 것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몇 해 전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아프신 아버지를 모시고 얼마나 많은 병원을 돌고 돌아야 할까요. 한 달 머물다 가는 환자를 보는 의사에게 얼마나 큰 사명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저희 아버지가 여섯 번째 병원을 찾아 치료를 구걸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나도 같은 심정이다. 지난 1년 새 거의 열 군데 대학병원을 전전하며 가족을 입원시켰다. '병원셔틀' 수준이다. 내가 좋은 병원을 찾아 헤맨 게 아니다. 상급종합병원 재활치료는 4주로 입원 기간을 제한한다. 어렵게 한 병원에 입원시키면 바로 다음에 옮겨갈 병원부터 찾아 나서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적절한 장기 입원을 억제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문제는 환자 상태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모든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퇴원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거동할 수 없는 환자를 이 병원 저 병원 사설구급차를 불러 데리고 다니며, 전 병원 진료기록을 떼어 제출해야 하고, 같은 검사를 반복하고, 의사마다 다른 치료 방법에 적응해야 한다. 환자나 가족 입장에선 외국처럼 한 명의 주치의에게 어느 정도 나을 때까지 치료받고 싶은 건 너무나 당연하다.

선진국에서 온 의사가 우리나라 대학병원에 갔다가 가장 놀라는 게 환자 침대 옆에 보조 간이침대가 놓여 있는 것이라고 한다. 6인용 병실은 사실상 12인용 병실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병실에서 비의료인인 간병인이 사라지지 않은 거의 유일한 나라다.

이건 '효도'가 아니다. 환자의 가족이든 고용한 간병인이든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다. 목관을 통해 가래를 빼내는 석션, 콧줄이나 뱃줄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피딩, 투약, 대소변 받기, 욕창방지 체위 변경 등등은 당연히 간병인의 몫이다. 지금까지 다닌 모든 대학병원이 예외 없이 다 그랬다. 간호사에게 부탁하려면 눈치 봐야 한다. 병원도 간병인도 명백하게 의료법 27조를 위반한 범법자가 된다. 나도 공범자다. 이 문제를 지적하면 웃기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보건당국에 물어보니 보건소에 신고하라고 대답한다.

가족이 간병할 상황이 못 되면 24시간 일대일 간병인을 구해야 한다. 간병비는 하루 12만 원 안팎, 한 달에 400만 원 정도 든다. 치료비보다 훨씬 많다. '간병'을 벗어나 '간호'를 하는데도 환자 가족이 그 비용을 부담한다. 의료비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가족이 장기간 병상에 누워 있으면 '메디컬 푸어'를 피하기 어렵다. '간병 파산', '간병 살인', '간병 보험'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간호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 선진 외국과 달리 간병이 건강보험 영역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치료비와 보험료가 오를 테니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일이긴 하다.

한 포털에 뇌졸중 등으로 재활치료를 받는 가족을 둔 환우 커뮤니티가 있다. 회원 수는 무려 17만 명이다. 얼마나 피눈물 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는지 보건당국은 한 번이라도 들어가 봤을까.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 제도와 의료 수준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다. 그런데 간병 문제만은 여전히 원시적이다. 우는소리가 아니다. 어느 집이나, 또는 나 자신도 죽기 전에 한두 번은 맞닥뜨릴 문제다. 간병은 결코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 대선주자들의 공약에 '간병'이란 글자는 찾기 어려웠다.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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