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설정 반도체 공급망 자료 제출 시한 8일
반도체 공급망 병목현상 이유 요청 계속 가능성
러만도 상무장관 “추가 조치 필요할 수도 있어”
中 매체 "美는 국제강도, 깡패..." 대미 비판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설정한 반도체 공급망 자료 제출 시한인 8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제출 행렬에 동참했다. 대만 TSMC, 미국 마이크론도 자료를 내는 등 전 세계 189개 반도체기업이 미국의 요청이자 압박에 고개를 숙였다. 2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공급망 점검이 일단락된 셈이다. 하지만 반도체를 비롯해 주요 품목 글로벌 공급난이 여전해 미국의 압박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연방정부 사이트와 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날 반도체 관련 자료 제공을 마쳤다. 삼성전자는 고객 정보나 재고량 등 기업 내부 정보를 제외한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출 자료 모두 기밀로 분류해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SK하이닉스 역시 고객 정보 같은 기업 비밀은 제외하고, 재고량을 제품이 아닌 산업별로 분류해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력 생산품은 메모리반도체여서 미국이 중시하는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과는 별 연관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고 한다.
두 회사 모두 계약상 비밀 유지 조항, 국내법 등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자료를 제출한 것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TSMC도 5일 제출한 자료에서 특정 고객 관련 내용을 제외했다. 이스라엘 파운드리 업체 타워세미컨덕터, 미국 메모리반도체 업체 마이크론도 제출 기업 명단에 들어 있었다. 8일 밤 기준 189개 기업이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고, 상무부 검토를 거쳐 일부 자료 내용이 공개된 기업은 이 가운데 40곳이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월 행정명령을 통해 관계 부처에 반도체, 전기차용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핵심품목 공급망 검토를 지시했다. 이후 미 상무부는 지난 9월 글로벌 반도체기업을 대상으로 고객사, 기술 단계, 판매ㆍ재고 현황 등 26개 항목의 답변을 11월 8일까지 제출하도록 했다.
반도체기업의 핵심 정보 제출 압박과 관련된 고비는 넘겼지만 미국의 요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출 내용이 흡족하지 않다고 미국이 판단하면 추가 자료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제출한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국방물자생산법을 동원해 정보 제출을 강제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지나 러만도 상무장관은 이날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그들(반도체기업)은 모두 협조적이었다”면서도 “제출한 자료가 충분히 좋지 않다면 추가 조치가 필요할지 모른다”라고 밝혔다. 그는 9월에도 “(자료 제출) 목표는 투명성을 높여 (공급망) 병목현상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한 다음 문제를 예측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휴대폰용 반도체 공급망 병목현상은 향후 1~2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국이 앞으로도 관련 기업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미 카운터파트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 캐서린 타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한국 정부의 우려를 전달한 상태다. 워싱턴 소식통은 “미국 정부가 타국 기업의 영업비밀을 요구하는 데 대해 ‘너무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도 분명히 있다”라고 전했다.
주무 장관인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9일 미국을 방문해 러만도 상무장관을 만난다. 이 자리에선 반도체기업 정보 제공에 대한 한국 정부와 기업의 우려를 전달하고 한미 간 공급망 협조 방안도 논의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한국과 대만 업체들이 미국에 반도체 정보를 제공하는 데 대해 ‘강도’라고 발끈하며 대미 비판수위를 높였다. 다만 ‘민감한 정보’는 빠졌다면서 한국, 대만을 향한 공격은 일단 자제했다.
민족주의 성향 매체 환구시보는 이날 “국제 강도”, “깡패”라고 미국을 난타했다. "미국은 세계 반도체 위기를 명분으로 내세워 반도체 관련 기업으로부터 기밀 데이터를 강탈했다"는 것이다.
한국과 대만 네티즌의 반응을 일부 여과 없이 전해 미국과 동맹의 틈을 벌리는 데 주력했다. 중국청년보는 “계약 기밀 유지조항에 따라 고객 정보를 공개할 수 없어 제출자료에서 제외했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노력을 소개하기도 했다.
반면 미국을 상대로는 소송 제기 가능성을 거론하며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삼성전자, TSMC 등 업체들은 중국 화웨이와 제휴를 맺고 있어 이들이 제출한 자료는 상업기밀에 해당한다”며 “중국 기업을 궁지에 몰아넣으려 복종을 강요하는 미국의 패권주의는 법적인 문제에 부딪힐 것”이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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