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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극우 피난처’ 된 텔레그램… “대선 때 선전 도구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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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극우 피난처’ 된 텔레그램… “대선 때 선전 도구 될 수도”

입력
2021.11.09 18:35
수정
2021.11.09 18:38
17면
0 0

이용자 2019년 15%→올해 53%로
보우소나루 비롯 극우 정치인 활동
본사 연락 어려워 별다른 대책 없어

휴대폰 화면에 텔레그램 로고가 표시돼 있다. AFP 연합뉴스

휴대폰 화면에 텔레그램 로고가 표시돼 있다. AFP 연합뉴스

브라질에서 암호화 메신저인 텔레그램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기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들이 가짜뉴스 유포를 이유로 현지 극우 인사들의 계정을 차단하면서 사이버 망명이 이어진 영향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브라질 내 ‘새 보수 피난처’가 극우의 선전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브라질 전체 휴대폰의 절반 이상(53%)에는 텔레그램 애플리케이션(앱)이 설치됐다. 2019년에는 이 비율이 15%에 그쳤는데, 2년 사이 사용자가 3배 넘게 늘었다. 현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신저는 페이스북이 운영하는 ‘왓츠앱’이지만, 텔레그램이 빠르게 장악하며 올해만 ‘수천만 명’의 신규 사용자를 확보했다는 게 신문의 설명이다.

브라질 내 텔레그램 인기를 이끄는 건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의 지지세력인 극우파다. 이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기존 플랫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효능을 불신하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거나,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갈등 관계에 있는 정치인 또는 고위 인사, 언론사를 공격해 왔다. 그러나 이들 SNS가 규정을 강화하고 계정 삭제에 나서자 둥지를 옮겼다.

현 정부와 대립하는 대법관을 협박한 혐의로 체포된 다니엘 실베이라 연방 하원의원, 극우성향의 유명 언론인 앨런 도스 산토스도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계정이 막히자 텔레그램으로 피신했다. 이들은 새 거처에서 반대파를 ‘사이코패스’라고 부르거나 변호사 선임 비용 등을 모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우소나루 대통령 역시 ‘망명’을 부추긴다. 그는 올 초 660만 명에 달하는 자신의 트위터 팔로어에게 “텔레그램으로 초대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 5월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코로나19 규제 철폐 시위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오른쪽 두번째)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브라질리아=AFP 연합뉴스

지난 5월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코로나19 규제 철폐 시위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오른쪽 두번째)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브라질리아=AFP 연합뉴스

현재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텔레그램 채널은 100만 명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해당 앱을 이용하는 정치인 중 가장 많은 팔로어를 확보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통상 반(反)체제 인사들이 정부의 감시망을 피해 자유와 비밀이 보장되는 텔레그램으로 옮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NYT는 “브라질에서 텔레그램은 다른 플랫폼에서 거부당한 정치인과 선동적 인물을 위한 안전한 공간이 됐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회사 측이 별다른 제재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우가 부추기는 갈등 양상이 극에 달하고 있지만 해당 플랫폼은 손을 놓은 상태다. 브라질 선거법원까지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텔레그램 본사와 연락을 취할 도리가 없는 탓이다. 이 회사의 명목상 본사는 독일 베를린에, 개발팀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각각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조차 확실하지 않다. 연락 수단은 이메일밖에 없는데, 답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알리네 오소리오 선거법원 사무총장은 “그간 법원은 가짜뉴스의 매개가 될 수 있는 다른 SNS 플랫폼 관계자들과 건설적인 협력 관계를 맺어 왔으나, 텔레그램과는 이전 방식으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사람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이 앱이 내년 브라질 대선 전후로 극우의 증오를 확산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특히 지지율 하락으로 재선 실패 가능성이 높아진 보우소나루가 선거 후 지지자들을 규합해 ‘선거 조작’ 논란을 키울 경우, 텔레그램이 핵심 무기가 될 공산이 크다. NYT는 “텔레그램은 브라질에서 긴장된 정치적 순간인 선거 국면 때 비방을 퍼뜨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게다가 매체 전파력을 감안하면 현실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재 해당 앱 그룹 채팅에는 최대 20만 명이 참여할 수 있다. 왓츠앱이 한 그룹에 초대할 수 있는 인원을 256명으로 제한한 것과 대조적이다. 극우 세력의 주장이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선동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얘기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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