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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페미'로 청년남성에 호소하는 정치인들

입력
2021.11.10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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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남성 보수정치 세력화 뚜렷
정치권, 청년남성 불안을 '젠더'로 몰고 가
'안티페미' 벗어나 제대로 된 해법 찾아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올해, 주목할 만한 사건을 한 가지 꼽는다면 '청년 남성의 정치세력화'가 아닐까 싶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2030 남성의 투표 성향에 나타난 분노의 파괴력'이라고 할 것이다.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에게 높은 지지율을 보여준 20대 남성이나, 6월 국민의힘 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후보를 당선시킨 청년층의 몰표, 8월 들어 국민의힘 당원 중 청년층이 대폭 증가했다는 소식 등이 그 예다. 지난 주말부터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홍준표 후보의 지지자 2030 남성들이 탈당 러시를 이루고 있다는 기사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청년 남성들의 이합집산은 그들이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서 정치적 효능감을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는 앞으로 이들이 한국의 양당 정치에서 목소리를 내는 세력으로서 자신들이 구축해 나갈 전략을 암시한다. 2016년 이후 미국에서 공화당의 지지세력으로서 농촌지역 백인 중장년 남성들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것처럼, 한국의 청년 남성들은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의 강력한 지지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국민의힘은 물론 여당 정치인들까지 청년 남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같은 노심초사의 결말은 '안티페미니즘의 유혹'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 같지 않다. 2030 남성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페미니즘의 확산으로 인한 역차별에 있고, 그 결과 남성들은 이제 '피해자'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친페미' 정책을 시행했으므로 그 집행기관인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한다… 대체로 이런 내용이 분노의 원인으로 진단되고, 이런 분노를 달래기 위한 임시방편들이 처방으로 제시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주장들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물론, 일본과 아시아 남미 유럽의 많은 사회에서 여성운동이 성과를 거두는 시기에 어김없이 등장했다. '백래시'다. 흔히 성평등 문제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되는 노르딕 국가들에서도 이런 현상은 존재한다. 다만 정치권과 언론이 이를 다루는 태도가 달랐고, 그것이 인접 국가들 사이에서도 사회적 성평등의 수준을 갈랐다. 스웨덴과 덴마크의 백래시를 다룬 연구들은 스웨덴에서 정치권과 언론이 성평등 운동을 지지했고, 남성들이 성평등 정책의 지지자로서 앞장선 데 비해, 덴마크의 경우 언론과 정치권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음을 지적한다. 그 결과 오늘날 스웨덴은 젠더관계에서 가장 균형 잡힌 선진 사회로 알려져 있지만, 덴마크의 상황은 다르다.

이런 현상에 대해 1991년 '백래시'를 쓴 수전 팔루디는 최근의 한 대담에서 청년들이 겪는 취업과 삶의 불안정성을 젠더갈등으로 치환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한국에서도 청년층 1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갤럽 공동)에서 청년들은 여성이나 남성 모두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은 성공에 대한 압박을 더 크게 받고, 생계부양자로서 부담을 훨씬 무겁게 느끼고 있다. 군대 문제까지 포함하면 한국의 청년 남성들이 가진 분노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들이 지닌 경제적·사회적·정신적 부담을 줄이고 남녀 모두 경제적 부양과 돌봄의 책임을 이행하는 사회가 성평등 운동이 지향하는 사회다. 그리고 성평등은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가치다. 청년과 한국사회의 미래를 책임진 정치인들의 정직한 자세를 촉구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ㆍ전 한국여성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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