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 맞은 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
"'아니, 국립극단이 이런 연극을 한다고?' 하는 연극계 안팎의 반응을 최근 많이 접하고 있어요. 실험적인 작품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죠. 작품이 주는 충격에 '극호(매우 좋다)'와 '불호'가 공존하는데, 의미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립극단이야말로 '현재의 연극'을 해야 할 주체니까요."
지난해 11월 10일 취임한 김광보(57)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취임 1주년을 하루 앞둔 9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집무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올해 국립극단이 추구했던 지향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국립극단은 전통적인 문법에서 벗어난 연극을 대거 선보였다. 창작극 '사랑Ⅱ' '코오피와 최면약' 등을 비롯해 현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로드킬 인 더 씨어터'가 대표적이다. "색다르다"는 반응도 있지만 "'미지의 연극'이 당혹스럽다"는 반응도 만만찮다.
국립극단의 모험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다. 예술의 다양성을 확대한다는 취지에 더해 신진 연출, 작가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김 감독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국립극단에 와 보니 '나는 이미 낡은 사람이 아닐까?' 하고 깜짝 놀랄 정도로 재능 있는 젊은 창작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기성세대가 후배를 평가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립극단은 내년에도 신진 창작자를 중심으로 백성희장민호극장과 소극장 판에서는 창작극을 다수 소개할 예정이다.
김 감독도 내년에는 연출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20년 넘게 일하는 동안 구상했던 '히든카드'인데,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김 감독은 "연극이란 '변화하고 싶은 욕망'과 '보고 싶은 충동'이 만나는 예술"이라며 "스스로 변화하면서 고전 텍스트를 어떻게 현대적인 모습으로 덧입힐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국립극단의 역점사업 중 하나는 '온라인 극장' 운영이다. 지난 1일 성공적으로 개관했다. 김 감독은 "영상화한 공연은 대면공연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또 다른 장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국립극장이 자랑하는 공연 영상 플랫폼인 '엔티 라이브(NT Live)'는 팬데믹 이전부터 활성화돼 있었는데, 작품의 정보 제공 기능 등 고유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국내에서도 공연 영상은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매체와 경쟁하기보다는 독자적 생존방식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봤다.
김 감독의 무거운 숙제 중 하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매듭짓는 일이다. 그 자신도 '블랙리스트' 속 피해자였지만 취임과 동시에 국립극단 대표로서 피해자들을 만나고 사과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사건이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치유의 과정이 필요한데, 그 물꼬는 지난 11년에 대한 진정성 어린 사과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재발방지를 위해 당사자들의 경험과 감정을 담은 사례집을 만들고 있다"며 "내년 중 발간하고 대중에도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국립극단이 주목한 키워드는 '장애'였다. 때문에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내년은 '기후와 환경'이다. 관련 주제를 다룬 작품이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극단 차원의 탄소 발자국 줄이기 노력에도 동참한다. 김 감독은 "연극에 쓰인 의상이나 소품들을 폐기하는 대신 극단 마당에 펼쳐놓고 관객들에게 나누는 등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며 "공연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작품별 무대를 공유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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