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무국적자 10년 헌신' 변유진 UNHCR 대변인]
프랑스 봉사서 만난 난민 이야기에 마음 움직여
"나는 상관없지만 아이만은 총소리 없는 곳에서"
시리아 난민사태 발발에 동행… 4년간 참상 알려
"공론화·논쟁 중요… 한국, 위상 걸맞은 역할해야"
"시리아, 남수단, 아프가니스탄 난민들과 대화하면서 제 할머니가 식민지배, 한국전쟁을 겪고 해주셨던 이야기들이 떠올랐어요.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유엔난민기구(UNHCR) 케냐대표부의 변유진(38) 대변인은 유엔 국제직 정직원 가운데 드문 한국인이다. UNHCR의 경우 전체 직원 1만7,000여 명 가운데 한국인은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2011년 입직해 어느덧 10년차가 된 그는 현재 케냐 현장을 누비며 난민과 무국적자 등을 만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세계 언론과 사람들에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뷰는 9월 27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대면으로, 이달 4일 통화로 두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프랑스 난민 수용소의 경험
변 대변인은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담는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꿨다고 한다. 2006년 8월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다음 달 영국으로 유학, 로열할러웨이 런던대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는 프랑스 뤼미에르리옹2대학에서 미디어아트학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았다.
어릴 적부터 소수자와 약자에게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2009년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 '위안부(comfort women)'를 제작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네덜란드 출신 위안부 피해자들과 당시 일본 군인들까지 폭넓게 인터뷰한 이 작품은 그리스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유학 기간 BBC(2007년)와 프랑스24(2009~2010년)에서 3년간 기자로 일했지만, 짧은 뉴스에 깊은 사람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는 아쉬움을 느껴 언론인의 길은 접었다.
변 대변인이 난민에게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8년 프랑스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임시 수용소에서 이들을 직접 대면한 일이었다. 제각기 목숨을 걸고 고국을 떠나야 했던 난민들의 사연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2011년 제네바 본부 영상팀에서 UNHCR 근무를 시작한 그는 이 무렵 벌어진 시리아 난민 사태에 동행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 레바논을 거점으로 이집트·터키·이라크·요르단을 오가며 5개국 난민의 참상을 촬영해 세계에 알렸다. 2016년부터는 대변인을 맡아 남수단에서 4년간 활동한 뒤 지난해부터 케냐에서 일하고 있다.
"국제사회, 난민·무국적 해결 함께 힘써야"
변 대변인은 유엔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작은 보트에 빽빽하게 올라탄 채 지중해를 건너온 난민들을 만났을 때를 꼽았다. 그는 "한 어머니가 '내가 어떻게 되는 것은 상관 없지만 내 아이만은 총소리가 나지 않는 곳에서 태어났으면, 학교에 가서 공부할 수 있었으면, 나보다 더 나은 미래를 가졌으면 해서 목숨을 걸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절실함에 먹먹해졌다"며 "난민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임을 절실히 깨닫았다"고 설명했다.
케냐에서 70년 가까이 무국적자로 살아온 쇼나족이 지난해 시민권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평생을 무국적자로 살아온 80대 쇼나족 할머니가 시민권을 받고 펑펑 우시길래 그 이유를 물었어요. 그분의 답변은 자신이 아닌 후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내가 무국적자라 내 자식과 손주들이 무국적 신분을 물려받게 돼 평생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다' '죽기 전엔 그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는데 자손들이 이제 국적을 갖고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누릴 수 있게 돼서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변 대변인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할머니가 들려줬던 경험담을 떠올렸다. 그는 "저희 할머니 세대가 나라를 잃고 피란하면서 먹을 게 없어 땅을 파서 나무와 풀을 먹은 이야기, 홀로 자식을 키우느라 희생하고 자녀 교육에 고군분투한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도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았고 아직 종전도 되지 않은 나라이니, 이들의 사연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 대변인은 한국의 위상이 달라진 만큼, 그에 걸맞게 국제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난민, 무국적자 문제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하고 논쟁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세계적 차원의 문제인 만큼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모든 국가가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0년 전 UNHCR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비교하면 국제사회가 한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며 "한국이 국제사회 문제를 함께 토론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