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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대선이 난장 돼가는 이유

입력
2021.11.04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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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이준희한국일보 고문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근원
강성보다 조율·관리형 지도자 필요한 시대
4년 중임 개헌,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

결국 거칠고 센 자들만 남았다. 상대적으로 온건 합리 성향의 후보들은 다 경쟁구도 밖으로 밀려났다. 경륜이나 실력 등은 별 의미 없었다. ‘대통령 깜’으로는 왠지 약하고 유순해 보인다는 게 진짜 문제였다.

이쯤이면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종 후보들이 지금 원하는 대통령 상(像)에 부합하는지. 선진국 반열에 오른 국가 위상이나 평균적인 국민수준에 어울리는지. 차악의 차악을 골라야 하는 고민이 거의 고문 수준이라는 게 일상으로 듣는 얘기다. 물론 양쪽 25% 안팎의 대깨층은 말고, 중도층 유권자들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다.

현상은 구조의 발현이다. 하나같이 기준미달이라면 그런 후보를 배태한 구조가 문제라고 보는 게 맞다. 그 핵심이 대통령 5년 단임제다. 당선만 되면 재임기간 마음껏 제왕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끔 한 제도다. 뒤가 어떻든 당장의 당선을 위해선 애써 고심한 정책 따위보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언행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 폐해가 쌓여 최악 양상으로 나타난 게 이번 대선이다.

장기독재를 막기 위한 단임이었고, YS, DJ, JP 등 대권 대기자가 즐비해 길지 않게 정한 5년이었다. 이 87년 체제에서 단임 5년은 온전히 당선자 저만을 위한 시간이 되면서 앞선 정부는 다 지우고 뭉개야 할 대상이 됐다. 일상화한 정치보복도 그 연장이다.

차별화 강박으로 정책들이 매양 맥락 없이 오가면서 예측 불가능한 불안정사회가 됐다(단적으로 부동산 지옥상을 보라). 일관성 결여로 주변국과는 늘 신뢰의 위기다. 강효백 교수의 지적대로 “일회성 정부의 일회성 정책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라가 됐다. 무엇보다 선출된 공직자가 책임과 평가에서 놓여난 건 가장 큰 문제였다. 선거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말난 김에 하자면 선진국 중 우리처럼 대통령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나라도 없다. 공과를 떠나 이승만 박정희 DJ 같은 이들은 당시의 국가위상을 넘어 글로벌한 평가를 받은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더는 “나를 따르라”식의 선도형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누가 굳이 끌어주지 않아도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마다 자체 추동력을 갖고 굴러가는 나라가 돼있다.

이 수준의 나라에선 상식과 균형감을 갖춘 관리·조율형 지도자면 된다. 5년마다 개혁을 공언하면서 저만이 나아갈 길을 아는 양 덤벼드는 지도자는 도리어 국가의 안정적 기반을 허물고 치유 못할 상흔만 남긴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은 여전히 거대 지도자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이 시대에 더 합당한 온건 합리적 정치인들일수록 내쳐지는 이유다.

오랜 독재 트라우마로 인해 직선 강박이 있는 우리 정서에서 내각제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면 대통령 4년 중임제밖에 없다. 중간평가를 의식해 다양한 여론을 살펴야 하고, 지속가능한 중장기 정책도 가능하며, 지독한 갈등의 정치문화도 완화할 수 있는 방책이다. 일찍이 이회창서부터 노무현, 문재인까지 한 번씩은 이를 언급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론 국가와 국민에게 책임지는 민주주의 정신의 회복이다. (단임 국가는 우리 빼곤 저개발국 몇밖에 없다.)

권력분산, 기본권 확충 등 손댈 게 많지만 쉽지 않다면 원포인트 개헌만이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87년 시대정신이 직선 단임이었듯 4년 중임 또한 지금의 시대정신이다. 후보들 다 마땅치 않지만 누구든 ‘진정성 있게’ 4년 중임의 개헌의지를 보인다면 선택하겠다. 차기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지만 적어도 그 이후는 희망을 걸어볼 수 있겠어서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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