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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여자 일' 규정하고 임금 후려치기 팽배

입력
2021.11.10 11: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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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집중 직무에 대한 사회적 저평가
호주·뉴질랜드 등은 문제 인식하고 개선

편집자주

아동·노인·장애인 등을 돌보는 돌봄 노동자는 110만명.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을 떠받치고 있지만, 이들은 다른 노동자들 평균 임금의 절반만 받고 있습니다. ‘반값’으로 매겨진 돌봄 노동 문제를 <한국일보>가 3회에 걸쳐 짚어봤습니다.


서울 성동구의 한 복지센터에 소속된 요양보호사가 노인의 집을 방문해 어르신을 돌보고 있다. 성동구청 제공

서울 성동구의 한 복지센터에 소속된 요양보호사가 노인의 집을 방문해 어르신을 돌보고 있다. 성동구청 제공

59.6세의 여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돌봄 노동자인 요양보호사의 '얼굴'이다. 2020년 기준, 요양보호사의 평균 연령은 60세에 가깝고 94.9%가 여성이다. 전체 돌봄 노동자로 대상을 넓혀도 마찬가지로 여성이 10명 중 9명이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의 사회화로 성평등을 달성하겠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면서 "성평등이 이뤄졌다면 돌봄 서비스는 여성 편중 일자리가 되지 않고 임금 격차도 없어야 했다"라고 꼬집었다. 윤정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역시 "요양보호사, 아이돌보미 제도를 도입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성 노동권 및 성평등 측면의 성과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찾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8~2019년 취업한 여성 178만2,000명 중 27.2%(48만5,000명)는 돌봄 노동자였다. 돌봄노동은 참여정부가 2008년 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하는 등 사회서비스 제도 및 인프라를 본격적으로 확대하면서 시장이 커졌다. 이후 여성 취업자 10명 중 3명꼴로 돌봄 관련 직종을 가지게 됐다.

반면 같은 기간 남성 돌봄 노동자는 3만3,000명 늘었다. 남성 취업자 중 돌봄 노동자의 비중은 단 2%에 불과하다. 이전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 딸, 며느리가 돌봄을 떠맡았다면 이제는 가족 밖의 여성이 이를 대신하게 된 셈이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행해왔던 무급의 노동은 가정 밖으로 확대되고도 그 설움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돌봄 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일로 남아 양질의 일자리나 성차별 완화보다는 저임금, 불안정한 고용형태, 인권침해라는 '여성을 갈아 넣는' 형태로 돌아가고 있다.

올해 3월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이 5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 요양보호사 10명 중 8명이 "일하는 중에 폭언, 폭행,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고용불안으로 인해 소속 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답변은 40%에 달했고, 알리더라도 '참으라고 했다'(58%)는 반응이 돌아왔다.

돌봄노동에 투영된 성차별은 전문가들도 일관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여성의 무급노동에 대한 저평가가 사회화 과정에서 그대로 이어지면서 저임금이 자리 잡았다"(강은희 서비스연맹 정책국장)는 것. 성별 편견을 토대로 돌봄노동이 전문 업무로 인식되지 못했고, 저임금 구조는 이런 인식을 더욱 부추겼다.

"성역할 구분에 기반한 가족 내 돌봄의 전통은 사회서비스에 대한 인식을 지연시키는 핵심적인 요인”(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 됐고, 저임금이어도 일자리가 절실한 경력단절 여성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 악순환은 계속됐다.

이런 분석은 해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정치 이론가 조안 C 트론토는 "남성은 공적영역에서 생산적인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여성은 돌봄을 맡는다는 전통적인 인식이 공적 영역에서도 그대로 유지, 돌봄노동의 성별화된 고정관념을 고착화했다"(저서 '돌봄 민주주의')라고 지적했다. 또 "이러한 요인으로 돌봄노동이 저임금 노동 중 하나이자 가장 열악한 혜택을 받는 집단 중의 하나가 됐다"라고 덧붙였다.

주요 국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호주의 사회서비스 노조는 돌봄노동 분야의 저임금이 '여성 집중 직무에 대한 사회적 저평가' 탓이라고 보고 정부에 진정을 냈다. 2012년 시정명령이 내려졌고 8년 이내 19~41%의 임금인상이 결정됐다. 이어 뉴질랜드에서도 '여성의 일에 대한 역사적 평가절하로 남성이 수행했다면 받았을 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이 책정됐다'라는 노조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뉴질랜드 정부는 관련 노조와의 교섭을 시작, 2017년 4월 '돌봄 및 지원노동자 형평임금 협약'을 체결했다.

일본에서는 1992년 '개호노동자의 고용관리개선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데 이어 2008년 '개호종사자 등의 인재확보를 위한 개호종사자 등의 처우개선에 관한 법률'을 만드는 등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뚜렷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돌봄 노동자 처우 관련 부서도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으로 쪼개져 있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돌봄 노동자의 처우를 위한 정책도 소홀하다.

현장에서 돌봄정책기본법이나 돌봄노동자기본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다. 박은주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는 "정부는 적극적인 주체로서의 국가의 돌봄 책임보다는 가족이나 민간 중심, 성차별적 효과를 내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말했다. "선한 가부장의 공치사를 멈추라. 박수로는 집세를 낼 수 없다."

['반값' 돌봄 노동자의 눈물]

①민간기관의 임금 착복

②'내 돈' 내며 영업까지

③대가 없이 좋은 돌봄은 없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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