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미제' 살인 피의자 "나는 리플리 증후군…살인은 들은 얘기"

22년 전 제주서 발생한 장기 미제 사건
첫 공판서 피의자 검찰 공소사실 반박

제주법원 전경

22년 전 제주에서 발생한 장기 미제 사건인 ‘제주 변호사 피살사건’ 피고인이 자신을 ‘리플리 증후군’ 환자라고 주장하며 범행을 부인했다. 리플리 증후군은 허구를 진실로 믿는 일종의 인격 장애를 말한다.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 장찬수)는 3일 오후 이모(당시 45세) 변호사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모(55)씨에 대한 첫 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검찰에 따르면 제주지역 조직폭력배 유탁파의 전 행동대원인 김씨는 1999년 8∼9월 “골치 아픈 문제가 있어 이 변호사를 손 좀 봐줘야겠다. 절대 봐주면 안 된다”라는 누군가의 지시와 함께 현금 3,000만 원을 받았다.

김씨는 같은 조직원이었던 동갑내기 손모씨와 이 변호사를 미행하며 동선 등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가해 방법을 상의하는 등 범행을 공모했다. 이들은 범행 공모 단계에서 이미 살해까지 염두에 뒀고, 손씨는 결국 같은 해 11월 5일 오전 3시 15분에서 6시 20분 사이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노상에 있던 이 변호사를 발견하고 흉기로 가슴과 복부를 3차례 찔러 살해했다.

김씨는 그러나 이날 재판에서 이 같은 검찰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그는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이 범행에 전혀 가담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손씨가 2014년 사망하기 직전 나에게 이 변호사를 살해했다고 이야기해 듣게 됐다. 당시 손씨는 괴로워하며 유족에게 사죄하고 싶어 했다”며 “손씨 대신 유족에게 사죄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유족과 접촉하려고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그러던 중 캄보디아로 갔고 후배를 통해 한 방송사 PD와 연락이 닿아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전하고 싶어 인터뷰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방송 인터뷰에 대해 “일부 인터뷰 내용 중 과장과 거짓도 있어 방송에 내보내도 괜찮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방송사 측에서 아무런 동의도 없이 내보내 이러한 상황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 측 변호인도 “피고인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리플리 증후군 환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에 허황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씨 측은 공소시효에 대한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도피 목적의 해외 체류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김씨는 지난달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는 의사를 재판부에 밝혔지만, 이날 이를 철회하면서 정식 공판으로 진행됐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