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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는 특별한 서비스가 아닌 시민의식이 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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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는 특별한 서비스가 아닌 시민의식이 돼야죠"

입력
2021.11.10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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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로드킬 인 더 씨어터' 수어통역사 김홍남·최황순씨

1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수어통역사 김홍남(왼쪽), 최황순씨가 국립극단의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 포스터 앞에서 공연 제목을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1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수어통역사 김홍남(왼쪽), 최황순씨가 국립극단의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 포스터 앞에서 공연 제목을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내가 눈이 마주친 건 운전대를 잡고 있던, 브레이크를 급히 밟아야 했던 차 안의 그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무대 위에서 연극배우가 야생동물인 고라니의 입장에서 도로를 건너려다 차에 치이는 상황을 묘사했다. 국립극단의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는 인간의 문명 때문에 희생된 고라니와 비둘기, 개 등 동물들의 관점에서 동물권을 논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배우 옆에는 대사가 나올 때마다 손짓이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수어통역사 김홍남(48)씨와 최황순(48)씨였다. 이들은 배우들과 흡사한 검은색 의상을 입고 연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대사를 수어로 통역했다. 대사 내용에 맞춰 표정도 시시각각 달라졌고, 기타로 연주되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면 기타를 치는 동작을 하면서 소리를 표현했다.

국립극단은 '로드킬 인 더 씨어터'의 모든 회차를 '배리어프리(장애인에 대한 장벽 허물기)' 공연으로 정했다. 따라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과 자막 서비스가 제공된다. 김씨와 최씨는 출연 배우들만큼이나 무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들은 공인수어통번역회사 '잘함'의 공동 대표로, 20년 경력이 넘는 베테랑들이다. 이들은 국립극단이 온라인극장에 올린 작품 '스카팽'의 수어통역에도 참여했다.

수어통역사 김홍남(왼쪽), 최황순씨는 "같은 대사를 두고서도 통역사들 사이에서는 표현법에 관한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늘 함께 토론하며 최선의 의미전달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지은 인턴기자

수어통역사 김홍남(왼쪽), 최황순씨는 "같은 대사를 두고서도 통역사들 사이에서는 표현법에 관한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늘 함께 토론하며 최선의 의미전달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지은 인턴기자

1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김씨는 "일반 수어통역은 행사 2~3일 전부터 준비하면 충분한데 공연 통역의 경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전부터 연출가, 작가, 배우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습에 함께 참여한다"고 했다. 때문에 업계에서 공연 통역은 들이는 시간과 노력 대비 통역비가 많지 않은, 기피 업무 중 하나다. 하지만 김씨는 "농인에게도 공연예술에 대한 욕구는 있을 수밖에 없고,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했다.

수어통역은 얼핏 대본의 대사를 그대로 옮기면 끝나는 일처럼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다. 대사를 직역했다가는 농인(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 관객이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농인과 청인(청각장애가 없는 사람)은 언어를 인식하는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대사를 수어로 통역할 때는 상황적 맥락과 행간의 의미에 맞게 풀어서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공연 수어통역사들은 연출가나 작가만큼이나 해당 작품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씨는 "그렇다고 통역사가 대사를 너무 구체적으로 해석해 버리면 관객이 의미를 유추하며 극을 음미할 기회를 뺏는 부작용도 있기 때문에 적정선을 항상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수어는 아주 미세한 동작 차이로도 뜻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세심함이 요구되는 언어다. 최씨는 "수어는 공간의 문법을 따르기 때문에 '새가 창문에 부딪쳐서 떨어진다'는 단순한 장면을 묘사할 때만 해도 손으로 창문을 그리는 위치 등에 따라 의미가 다양해질 수 있고, 화자와 청자가 누구인지도 표현법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김씨는 "공연 일수가 지날수록 배우들의 목소리 톤이 달라질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도 뉘앙스 변화에 맞춰 수어를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배리어프리'가 더 이상 특별한 단어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청각장애인들은 단지 의사소통의 문제만 있을 뿐 일단 대화가 되고 나면 여느 관객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김씨도 "'배리어프리'가 대단한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기본값, 시민의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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