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상승에 채권시장선 자금 이탈 가속화
하루 새 0.2%p 오른 대출금리에 발길 돌려
정기예금에 20兆 뭉칫돈 "금리 더 오른다"
금리 인상 우려가 갈수록 높아지자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에 몰려있던 유동 자금이 이율은 낮지만 안정적인 은행 수신상품으로 이동하는 등 대규모 '머니무브(자금 이동)'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은행권 대출금리 상승에 '빚투(빚내서 투자)' 길이 막히면서 증시 유동성은 말라가고, 저금리 시대 효자 노릇을 해오던 채권시장에서도 뭉칫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반면 외면받던 은행 예금은 한 달 새 20조 원 넘게 늘어나는 등 투자로 향하던 돈의 흐름이 어느새 '저축'이란 안전처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달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단행되면 이런 머니무브 현상은 더 뚜렷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채권시장서 석달 새 7000억 빠져나가
2일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금리 인상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설정액 10억 원 이상 펀드의 자금 동향을 집계한 결과, 이날 기준 최근 석 달 간 국내 채권형 펀드(287개) 및 해외 채권형 펀드(204개)에서 7,375억 원이 순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기준금리 상승 우려에 채권 값이 떨어지자 손실이 커질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대거 펀드를 매도한 결과로 풀이된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값은 떨어져 채권형펀드 등에 투자하기 불리한 여건이 된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시장금리의 대표 격인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1일 연 2.108%로 2018년 8월 2일(연 2.113%) 이후 3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식 이미 고점" 예금에 20조 몰려
금리 상승 여파에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쏠림도 한풀 꺾인 분위기다.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대출 죄기까지 더해지며 지난달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신용대출은 전달보다 1,700억 원가량 줄어 지난 5월 이후 5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특히 시중은행들은 금리 인상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1일 기준 한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1년)는 3.68~4.68% 수준으로 지난달 31일(3.47~4.47%)과 비교해 불과 하루 새 상· 하단이 0.21%포인트 올랐을 정도다.
증권사 관계자는 "상반기만 해도 외국인 매도세를 개인들이 받아내며 상승장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개인 매수세가 뜸하다"며 "은행권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총알(현금)이 떨어진 개인투자자들이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은행 정기예금으로는 돈이 몰리고 있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약 652조9,000억 원으로 전월보다 20조5,000억 원 가까이 불었다. 저축성 금리가 여전히 1% 안팎으로 낮은 수준이지만,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자금이 안전한 은행 저축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해석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미 고점론이 불거진 자산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리스크가 워낙 커진 탓"이라면서도 "재투자를 위해 총알(현금)을 보유하거나, 이자 상승을 기대하는 차원의 성격이 혼재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긴축 이제 시작" 돈의 향방은?
여전히 낮은 수신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고려할 때 자산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이 계속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달 예고된 미국의 테이퍼링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등 주요국의 돈 줄 죄기가 사실상 '이제 시작'이라는 점에서, 돈의 향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내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기점으로 글로벌 자산시장에서도 긴축이 본격화되는 만큼, 현재와 같은 자산시장으로의 쏠림 현상은 종료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할 때 미국은 금리 인상 등 긴축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 역시 신흥국 중에서도 여전히 기준금리가 낮은 만큼, 이른 시일 안에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금리가 오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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