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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차가 막내, 외국인 직원도 못 구해" 뿌리산업, 뿌리째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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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차가 막내, 외국인 직원도 못 구해" 뿌리산업, 뿌리째 흔들린다

입력
2021.11.05 04:30
수정
2021.11.05 09:1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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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금형·용접 등 제조업 근간 산업
코로나 탓 외국인 인력 공급 급감하자
공장 돌릴 최소한의 인력도 없어 동동

10월 21일 경기 파주 적성산업단지 내 한 주물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조조형에 쇳물을 붓고 있다. 이한호 기자

10월 21일 경기 파주 적성산업단지 내 한 주물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조조형에 쇳물을 붓고 있다. 이한호 기자

"원래 6명 채용이 목표였는데, 외국인 근로자 1명 뽑는데 1년 넘게 기다렸습니다. 1차금속 업계 30년 동안 요즘 같은 인력난은 처음입니다."(중소 제조업체 대표 A씨)

"35년 차인 내가 전국 주물업계 막내예요. 한국 청년들은 간혹 입사해도 힘들다고 금방 그만둡니다. 외국인 인력까지 줄어들면 결국 뿌리산업은 수년 안에 사라질 날이 올 겁니다."(경기 주물업체 50대 과장)

2년째 지속되는 코로나19의 여파와, 갈수록 힘든 일을 꺼리는 직업관 변화 속에 대한민국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으로 불리는 '뿌리산업'이 그야말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뿌리산업의 만성적인 인력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내 구직자의 취업 외면 속에, 코로나19로 동남아 등에서의 외국인 인력 공급까지 급감하자 공장을 돌릴 최소한의 인력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뿌리산업 현장에선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조만간 산업 자체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가 10월 21일 경기 파주 적성단지 내 한 주물공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가 10월 21일 경기 파주 적성단지 내 한 주물공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외국인근로자 입국 10분의 1 토막… "갑을관계도 바뀔 판"

4일 정부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뿌리기업들을 특히 더 벼랑으로 내모는 요인은 코로나19다. 그나마 공장을 지탱해 주던 외국인 인력 공급이 코로나19 여파로 뚝 끊겼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1~8월 사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 수는 각각 6,688명과 5,145명에 그쳤다. 코로나19 이전의 연간 5만 명대(2018년 5만3,855명, 2019년 5만1,265명)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제조업에선 외국인 입국자가 2019년 4만208명에서 올해 1~8월 3,496명으로 급감해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는 코로나19의 여파다. 방역을 위해 지난해 4~11월 사이 신규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전면 중단됐고, 이후에도 예전보다 입국이 지연되면서 체류기간이 만료된 외국인 근로자의 대체 인력 수급이 여전히 원활하지 않다.

이처럼 외국인 직원이 '귀한 몸'이 되자, 현장에선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 갑을관계 역전 조짐까지 감지된다.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와 경기 파주 적성산업단지 제조업체 대표와의 간담회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눈치를 보느라 일을 못 하겠다"는 호소가 나왔다. 어렵게 뽑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단체로 회사를 옮기겠다고 엄포를 놓는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외국인 근로자는 △근로조건 위반 △부당한 처우 △상해 등 사유가 있으면, 최초 3년간 3회까지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일 "방역 조건을 충족하면 모든 국가로부터 외국인 근로자를 입국시키고, 일별·주별 도입 상한도 폐지해 늦어도 11월 말부터는 외국인 근로자 공급이 확대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는 16개 외국인 근로자 송출국 중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등 6개국에서만 입국이 허용되고 있다.

10월 21일 경기 파주 적성산업단지 내 한 주물공장에서 60대 관리직인 한국인 근로자가 인력 부족으로 현장에 투입돼 일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10월 21일 경기 파주 적성산업단지 내 한 주물공장에서 60대 관리직인 한국인 근로자가 인력 부족으로 현장에 투입돼 일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한국인 직원 충원 불확실… 외국인 더 허용해야"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도, 뿌리산업 인력난이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한국인의 취업 기피와 비현실적인 제도가 구조적으로 인력난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찾은 파주 적성산업단지의 한 주물업체에서는 환갑이 넘은 '이사' 직함의 관리자가 소형 전기로 앞에서 직접 작업하고 있었다. 새로 뽑은 용해공은 두 달 전 회사를 떠났다. 신모(63) 대표는 "용해기술자는 중요한 자리인데, 새로 뽑아도 몇 달을 못 버틴다"며 "지금 일하는 이사가 은퇴하면 어디서 사람을 구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 업체의 강모(53) 과장은 "35년 차인 내가 전국 주물업계 막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한국 직원 2명을 채용했지만 금세 그만뒀다. 강 과장은 "청년층의 직업관이 바뀌어, 이젠 돈을 많이 줘도 한국인 생산인력을 양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외국인 근로자가 10월 21일 경기 파주 적성산업단지 내 한 주물공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보통 한 가지 작업을 익히면, 체류 기간 내내 같은 작업만 수행하게 된다. 이한호 기자

한 외국인 근로자가 10월 21일 경기 파주 적성산업단지 내 한 주물공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보통 한 가지 작업을 익히면, 체류 기간 내내 같은 작업만 수행하게 된다. 이한호 기자

한국인 직원 수에 비례해 외국인 근로자 채용 상한선을 두는 제도(쿼터제) 역시 큰 걸림돌이다. 현재의 고용허가제에서는 한국인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가 1~5명이면 외국인 근로자를 5명까지만 채용할 수 있다. 6~10인이면 7명, 11~30인이면 10명까지다. 한국인 직원이 없는 한, 외국인 직원을 맘껏 늘리기 불가능한 셈이다.

이에 중소 제조업계는 쿼터제를 없애지 못한다면 고용허가 인원이라도 대폭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에선 중소 업체들이 외국인 근로자를 1명이라도 더 채용하기 위해 작업 공정별로 사업체를 쪼개는 '소(小)사장제'까지 도입하고 있다.

강 과장은 "지금의 쿼터제가 유지된다면 저 같은 고참 막내가 은퇴할 경우, 외국인 채용 규모도 줄어 결국은 뿌리기업이 사라지는 날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국내 뿌리기업 수는 2018년 3만2,606개에서 2019년 3만602개로 감소했고, 종사자 수도 55만5,072명에서 51만6,697명으로 줄었다. 신 대표는 "최근 대구, 인천의 주물업체가 잇따라 문을 닫았다"며 "주 52시간제로 생산 효율은 떨어지고, 최저임금·원자재값 상승으로 생산비용은 증가하는데 납품가는 그대로니 버틸 재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손성원 중기중앙회 외국인력지원부장은 "현재의 고용허가제는 한국인 일자리 보호 차원에서 2003년 도입됐지만, 18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시대 흐름에 맞게 외국인 근로자 도입을 확대하는 것이 뿌리산업 인력난 해소에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뿌리산업이란

나무의 뿌리처럼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기술 분야. △주조 △금형 △용접 △소성가공 △표면처리 △열처리 등 6개 업종이 2011년 '뿌리산업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로 지정돼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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