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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지대의 불안감

입력
2021.11.02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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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
박희준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편집자주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플랫폼을 기반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살펴보고, 플랫폼 기반 경제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며칠 전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공중그네 곡예를 접했다. 그 순간 어릴 적 부모님과 관람했던 서커스 공연의 짜릿함이 온몸으로 느껴지면서, 불현듯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4차 산업혁명이 소개되면서 회자되었던 변화들이 코로나와 함께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이 겪는 두려움은, 정신의학자 폴 트루니에가 그의 저서 '인간의 자리'에서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가 반대편의 그네를 잡기 위해 잡고 있던 그네를 놓고 잠시 공중에 머물러 있는 순간에 느끼는 불안감을 빌려서 정의했던 '중간 지대의 불안'으로 설명될 수 있다.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디지털 기반의 플랫폼 경제가 견인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식하고 있지만,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경험해야 하는 '중간 지대의 불안'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국가별 문화 차이를 정의하기 위해 사회심리학자 홉스테드가 제시한 네 가지 차원 중 하나인 '불확실성 회피 성향'에서 한국은 높은 수준을 보인다.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문화를 가진 사회는 상대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고 새로운 시도에 소극적이며 제도를 통해서 변화의 위험성을 줄이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사회의 정부가 가지고 있는 높은 수준의 규제와 감독은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모든 영역에서 플랫폼을 기반으로 생겨나는 산업과 기존 산업과의 갈등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시장이 진화하는 방향성을 읽어내고 시장 구성원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의 제도 속에서 사안별로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급급하다. 이러한 정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미국에서 회자되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려 본다.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걷던 한 행인이 동전을 떨어뜨리고는 한참을 찾다가 포기한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걷다가 불빛이 밝은 길에 접어들자 잠시 전에 잃어버렸던 동전을 불빛 아래서 찾기 시작한다. 새로운 상황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그저 익숙한 접근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농담이다.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 구성원들이 느끼는 중간 지대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에서 플랫폼 경제를 담아 낼 수 있는 틀을 마련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낮추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불확실성을 회피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사회는 변화가 티핑 포인트를 지나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면 새롭게 전개되는 상황을 제도를 기반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새로운 산업과 시장의 성장을 위한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는 데 강한 추진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설계하는 제도는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견해를 담아낸다. 사회 구성원들이 익숙한 것과 옳은 것을 구별해야 한다. 플랫폼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시장의 모습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이해하고 열린 사고로 경험하면서 냉철하게 손익을 살펴봐야 한다.

디지털 기반의 플랫폼 경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면서 다양한 기회를 시장에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동기화를 기반으로 효율성을 높이면서 발전해온 산업 사회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건강한 성장을 위한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과거의 틀로 현재의 변화를 관리하고자 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거대한 외국계 글로벌 기업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시장을 내주고 사용자와 공급자 모두가 극한의 경쟁 상황으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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