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1.5도 상승 제한 목표만 재확인
탄소중립 시점 2050년 못 박기 실패
국가간 입장차… COP26 벌써 비관론
“주요20개국(G20)이 약속한 기후변화 대책은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는 바다에 떨어진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
올해 제26차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 의장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폐막한 G20 정상회의에 대해 이례적으로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번 회의에서 얻은 성과가 거의 없다”는 냉정한 평가였다. G20 정상들은 기후위기에 공동 대응하기로 뜻을 모았으나, ‘탄소 중립’ 시점을 2050년으로 설정하는 데에는 끝내 실패했다. G20 합의를 토대로 기후변화 논의를 발전시키려 했던 COP26에도 개막 당일인 이날부터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날 G20 정상들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약속한 목표 온도 ‘1.5도 이내’를 한층 선명하게 부각하고 실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6년 전보다 진일보한 문제의식을 보여줬다는 일부 평가도 있다.
그러나 탄소 중립 시점은 ‘2050년’으로 명시되지 못하고 “이번 세기 중반까지”라는 두루뭉술한 문구에 그쳤다. 서방 국가들은 구체적 목표 시점을 넣자고 주장했지만, 중국과 러시아,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러시아는 탄소 중립 시점을 10년이나 늦은 2060년으로 제시했고, 인도는 아예 설정조차 하지 않았다.
G20 정상들이 ‘탈석탄’을 위해 올해 말까지 해외 석탄발전 프로젝트에 금융 지원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것은 주요 성과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석탄발전 폐지에 대해선 “가능한 한 빨리 이행한다”는 문구만 들어갔을 뿐, ‘2030년대 말’이라는 구체적 목표 시점을 제시하지 못했다. 또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문제도 “중기적 목표를 갖고 추진한다”는 모호한 문구로 빠져나갔다. 이번 회의를 두고 목표만 있고 실천 방안은 없는 ‘말잔치’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우리는 기온상승 폭이 2.7도에 달하는 지구온난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이는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며 “로마에서 보여 준 우유부단함과 분열이 지구를 불태울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내 희망이 실현되지 않은 채 로마를 떠나게 됐다”며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G20 회의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미온적인 중국과 러시아를 직접 거론하며 “실망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가들은 부국들의 압박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값싼 화석에너지에 의존해 경제 성장을 이루며 대기 오염을 유발한 서방 국가들이 이제 막 경제 개발을 시작한 가난한 나라들에 지구 온난화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인도는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탄소 배출국이지만, 산업화 이전인 1850년대까지 포함하면 누적 배출량은 4% 남짓에 불과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이날 별도 연설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은 공통적이면서 ‘차별화’된 책임과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파리협약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빈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25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약 118조 원) 기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9년 집행된 액수는 800억 달러에 그쳤다. 지난해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1,000억 달러에는 못 미칠 것으로 OECD는 추정했다.
나아가 빈국들은 재정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7월 런던에서 존 케리 미 기후특사를 만난 바바라 크리시 남아프리카공화국 환경장관은 지원금을 연간 7,500억 달러(약 884조 원)로 증액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9월 아프리카연합(AU) 국가들은 COP26에서 2030년까지 연간 1조3,000억 달러(약 1,532조 원) 지원을 공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제 각국 정상들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COP26로 자리를 옮겨 기후위기 관련 논의를 이어간다. COP26은 국가별로 파리협약 실천 상황을 점검하고 세부 계획을 세우는 자리다. 하지만 예고편 격인 G20 정상회의가 확실한 성과를 올리지 못한 데 비춰, 이달 12일까지 계속되는 COP26도 유의미한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존슨 총리는 “글래스고 회의가 실패한다면 모든 게 실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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