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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보복' 않겠다는 선언부터 하라

입력
2021.11.0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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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이충재주필

문재인 정권 복수심에 불타는 강성 보수
강성 진보도 '배신자' 윤석열 손보겠다 별러
여야 후보,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 끊기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1일 경기도 수원 장안구 국민의힘 경기도당에서 열린 국민캠프 경기도 선대위 및 당협위원장 간담회에 참석하며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1일 경기도 수원 장안구 국민의힘 경기도당에서 열린 국민캠프 경기도 선대위 및 당협위원장 간담회에 참석하며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적폐청산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주된 동력이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보수 정권의 탄압이 부당한 죽음을 초래했다는 분노는 불쏘시개로 삼기에 충분했다.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대통령의 단죄는 그 결과였으나 보수 진영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보수층의 강한 지지는 이런 배경을 빼놓고는 이해하기 힘들다. 적에게 버림받은 유능한 장수만큼 차도살인(借刀殺人)에 적합한 도구는 없다. 자신들의 주군(主君)을 멸한 사람을 너그럽게 품은 이유가 뭐겠는가. 그간 쌓인 치욕과 열패감을 깨끗이 씻어 달라는 주문이다.

윤 전 총장도 강성 보수층의 이런 바람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재임 중 당한 압박과 수모를 되갚으려는 생각도 강렬할 것이다. 그는 경선 토론회에서 ‘집권하면 현 정부를 수사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법에 따라 하겠다”고 부인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수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뭐든 법에 따라 해야죠”라고 했다. 울산 선거 개입 의혹과 원전 수사 공소장에 ‘문재인’ 이름 석 자를 수십 곳 새겨 놓은 그로서는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일 것이다.

강성 보수의 공격이 뻔히 예상되는데 강성 진보 세력이 목을 내놓고 기다릴 리 없다. 최대의 공격이 최고의 수비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에게 윤석열은 반드시 손봐야 할 대상이다. 조국 전 장관 일가족을 도륙하고 문재인 정부를 배신해 나락으로 빠뜨린 ‘배신자’ 아닌가. 비주류지만 ‘싸움닭’ 이미지를 가진 이재명을 후보로 선택한 것도 푸닥거리의 적임자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친문 진영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강성 보수에 맺힌 게 많은 이 후보가 시퍼런 칼을 칼집에만 놔두지는 않을 것 같다. 상대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면 이재명을 구속시키고 감옥에 보내겠다”고 공언한 데에 응어리가 굳지 않았을까. 자신을 ‘조폭 수괴’ ‘소시오패스의 전형’이라 했으니 한번 당해보라는 심리가 발동할까 싶기도 하다.

이대로라면 누가 대통령이 돼도 ‘증오의 굿판’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승자는 ‘정의’를 내세워 철퇴를 휘두르고, 패자는 치욕을 곱씹으며 오랏줄에 묶이는 광기의 장면을 우리는 또 한번 목도하게 될 것이다. 보복을 당한 진영에선 사사건건 국정에 반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올지도 모른다. 머잖아 대통령 탄핵을 선동하는 구호가 터져 나오고 강고한 권력도 어느 순간 곤두박질치는 시나리오도 그려진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근 20년간 우리 정치사에서 반복되던 그 모습이다.

우리 사회에서 탄핵이란 말이 거침없이 오르내리게 된 계기는 노무현 탄핵이었다. 광화문 촛불시위가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 당시 탄핵과 촛불은 박근혜 때 고스란히 재현됐다. 그리고 두 명의 대통령이 감옥에 있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지도자가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고, 이런 한국 정치를 부러워하는 시각도 있지만 결코 바람직한 장면은 아니다.

극심한 대립과 분열로 갈라진 미국의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진단이 쏟아지나 그래도 우리보다 나은 건 정치 보복을 자제해온 오랜 전통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명백한 범법행위에도 사법처리나 탄핵에 이르지 않은 것은 보복이 또 다른 보복을 낳지 않게 하려는 지혜다.

증오는 증오를 부른다. “우리가 당했으니 너희도 똑같이 당해보라”는 것은 상호 파멸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누군가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야 한다. 곧 야당 후보가 결정되면 여야 대선 후보들이 함께 정치 보복 중단 선언을 하기 바란다. 더 이상의 피비린내는 맡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필자뿐이겠는가.

이충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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