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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선제 사용이 포기되면

입력
2021.11.0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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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 캘리포니아 연안의 미 항공모함 니미츠호 함상에 F-35C 전투기가 착륙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 캘리포니아 연안의 미 항공모함 니미츠호 함상에 F-35C 전투기가 착륙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국의 참전 직후인 1950년 11월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한국전쟁에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다행히 핵 사용은 자제됐으나 미국은 휴전협상에도 핵 카드를 들고나왔다. 1956년 1월 라이프지는,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중국에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란 오해의 여지없는 경고를 중국에 전달했다는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의 말을 전했다. 덜레스는 당시 핵 위협 카드가 효과를 발휘했다면서 아주 타당한 추론이었다고 평가했다.

□ 덜레스의 일화는 핵 무기가 국가운영의 유용한 수단임을 옹호하는 사례로 종종 거론된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핵무기 사용 원칙으로 채택해왔다. 핵과 비핵 무기의 공격에 핵무기로 반격하고, 또한 선제적 핵 사용 여지도 남겨 전쟁억지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다. 바이든 정부가 이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는 ‘핵 선제사용 포기(NFU)’를 추진해 동맹국들에 비상이 걸렸다. NFU는 핵 공격에 대한 반격을 포함해 제한적인 조건에서만 핵 버튼을 누른다는 원칙이다.

□ 새로운 핵 사용 원칙이 불확실성을 줄여 핵 충돌을 최소화할 실용적 접근인 건 사실이다. 진보진영도 평화 증진이라며 적극 옹호하고 있으나 이런 상황은 미국을 벗어나면 달라진다. 동맹국 입장에서 선제 핵 사용의 명시적 포기는 핵우산의 약화를 초래하는 탓이다. 미국 핵으로 보호받는 핵우산 약속이 흔들리면 동맹들은 극단적으로 자체 핵개발로 대응하거나 러시아 중국의 핵 인질이 되는 수밖에 없다. 영국 독일 프랑스는 물론 일본 호주가 반대 로비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 바이든 정부도 물러서지 않고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까지 동원해 동맹국을 설득 중이다. 오바마 정부 시절 NFU 채택 실패를 거울삼아 ‘단일 목적 사용’으로 표현까지 바꿔 부를 만큼 의지도 강하다. 결국 내년 1월 ‘핵 태세 검토 보고서’에서 이 원칙이 채택된다면 동맹들의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북핵을 이고 있는 한국 일본만 해도 핵 무장론이 거세지고 북핵협상 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혼란스런 세계는 다가오는데 때는 밖을 보지 않는 대선정국이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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