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찰, '총격 발생 우려'에 과잉 경계
가능성 낮지만 경찰 기소 사례는 드물어

게티이미지뱅크
2017년 1월 18일 새벽(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州) 댈러스의 한 아파트 인근. 남자친구와 자동차 여행 중이던 제네비브 도스(21)는 차량을 잠시 세운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 몇 시간 후, “손 들어, 움직이지 마”라는 외침에 눈을 떴더니, 경찰관 6명이 총을 들고 차를 둘러싸고 있었다. ‘수상한 차가 있다’는 주민 신고에 경찰이 출동한 것이다. 당황한 도스가 차를 후진하려다 경찰차에 가로막혀 다시 앞으로 이동하려던 순간, 총탄 13발이 날아왔다. 해명할 새도 없이 도스는 목숨을 잃었다.
억울함은 이뿐이 아니다. 총을 쏜 경찰은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도스의 마약 투약 사실이 드러난 탓이다. 당시 경찰 보디캠(몸에 부착하는 소형 카메라)에 한 경관이 남자친구를 끌어낸 뒤, 무전기로 “그들이 경찰차를 두 차례 들이받았다”고 허위 보고를 하는 장면이 담겼지만 소용없었다. 법원은 시민 목숨을 앗아간 경찰의 행위보다, 경찰이 느꼈을 ‘생명의 위협’이 더 크다고 봤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1일 “미국에서 교통 단속 중이던 경찰의 손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운전자나 차량 동승자가 지난 5년간 400여 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2016년 9월 30일부터 최근까지 경찰이 비무장 운전자나 동승자를 살해한 400여 사건 중 180건의 기록과 동영상, 음성 파일을 집중 분석한 결과다. 희생자들은 폭력 범죄에 연루되거나,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음에도 세상과 등졌다. 일주일에 평균 1.5명꼴로 불필요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나, 비극을 유발한 경찰의 과잉대응 및 면죄부 판결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습이다.
NYT에 따르면, 사망자 가운데 75명은 차량 절도 의심을, 60명은 난폭 운전을 이유로 각각 ‘차량 정지’를 요구받았다. 나머지는 단순 절도 등 비폭력 범죄가 의심된 경우였다. 총이나 칼 등을 소지한 ‘즉각적 위협’이 아닌데도, 과속 등 이유로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가 운전자를 사망케 하는 ‘비극’이 적지 않았던 셈이다.

2019년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웨스트먼로에 경찰들이 모여 있다. 웨스트먼로=AP 연합뉴스
해당 영상들을 보면, 대부분의 경찰은 차를 멈춰 세우자마자 “총을 쏘겠다”고 소리쳤다. 큰 위협을 느낄 법한 상황이 아닌데도, 과민반응하면서 마구 총을 쏜 사례도 있다. 2017년 테네시주에서 한 보안관이 도망가던 운전자를 가리키며 부하들에게 “차로 박지 말고 그냥 쏘라”고 지시하는 모습이 담긴 보디캠 영상이 대표적이다.
경찰의 과잉대응은 ‘운전자가 갑자기 총으로 공격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일선 배치 전부터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학습하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교통 단속 때 운전자의 총격에 경찰관이 숨진 사건의 통계, 사진 등도 교육 자료로 쓰인다. NYT는 “경찰학교에서는 종종 오해의 소지가 있는 통계, 최악의 시나리오에 의존해 지나친 경계심을 심어 준다”며 “상당수 경찰관이 운전자에게 트렁크에 손을 대도록 해, 지문을 증거로 남기도록 훈련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이 느끼는 위협은 ‘과장’됐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2016년 이후 ‘근무 중 숨진 경찰’ 280명 중 21%(60여 명)가량이 교통 단속 중 운전자의 총격으로 숨졌다. 경찰의 우려가 아예 근거 없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경찰과 민간인이 접촉하는 사례 대다수가 교통 단속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결코 많은 수는 아니다”라는 게 NYT의 지적이다. 조던 블레어 우즈 아칸소대 법학교수도 연구를 통해 “사고를 제외하면 경찰이 일반적 교통 단속 때 민간인한테 살해당할 확률은 최소 650만분의 1, 최대 360만분의 1 수준에 그쳤다”고 밝혔다. 슬림 길 솔트레이크카운티 검사장은 “(경찰에 대한) 위험은 통계적으로 무시해도 될 정도인데 부풀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비무장 운전자의 목숨을 앗아간 경찰의 ‘실수’가 지나칠 정도로 너그럽게 용인된다는 점이다. 400여 건의 ‘오인 사격’ 중 경찰이 기소된 사례는 10% 미만인 32건에 그쳤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 경찰의 주장이 검찰·법원에서 인정된 결과다. 심지어 유죄 선고는 5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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