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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먹통' 되던 날, 배달라이더에겐 악몽이었다

입력
2021.11.01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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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석 KT 네트워크 혁신 TF장과 임원진들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west사옥에서 인터넷 장애 관련 '재발방지대책 및 보상안' 발표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창석 KT 네트워크 혁신 TF장과 임원진들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west사옥에서 인터넷 장애 관련 '재발방지대책 및 보상안' 발표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 25일 점심시간 배달 라이더들은 패닉에 빠졌다. KT통신망이 끊기면서 배달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인 플랫폼에서 추방됐다. 음식을 픽업한 라이더들은 손님 주소지가 사라져 식어가는 음식을 들고 길거리를 서성였다. 새로운 주문도 들어오지 않았다. 배달피크시간에 휴대폰만 보면서 디지털 세계가 다시 돌아오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플랫폼공장의 폐쇄로 사실상 대량 실업이 발생한 셈이다.

디지털세계에서 배달노동자의 업무계약은 초 단위로 벌어진다. 동네 배달 라이더들은 3,000원짜리 낮은 단가의 배달을 여러 개 묶어 좋은 코스로 배달해야 돈을 벌 수 있다. 콜이 없을 때는 1초도 되지 않아 일감이 사라지므로 찰나의 순간에 장소와 배달료를 확인하고 배달계약을 수행할지 말지 판단해야 한다. 반면 배민과 쿠팡은 AI가 라이더에게 자동으로 배차한다. AI가 배정해준 콜을 갈지 말지를 45초 내에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배달료가 시시각각 다르다. 콜이 없는 시간대에는 기본 배달료가 2,500원에서 3,000원에 머물러 있다가 콜이 많아지는 피크시간에는 5,000~6,000원대로 올라간다. AI가 순간적으로 라이더에게 '2㎞ 거리 5,000원 줄 건데 갈래? 45초 내에 결정해'라고 묻는 것과 같다. 라이더는 콜을 수락하는 게 좋을지 거절하는 게 좋을지 확신할 수 없다. AI가 다음 콜로 1,000원 높은 6,000원짜리 배달을 줄 수도 있고, 3,000원짜리 콜을 꽂을 수도 있다. 도박이 따로 없다. 하루하루 계약을 맺는 일용직을 넘어서 초 단위로 근무조건을 확인하고 계약을 맺는 초용직이 나타난 것이다. 최악은 AI가 콜을 안 주는 거다. 해고다. 초단위로 고용과 실업이 반복된다. 라이더들은 실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최대한 계약을 많이 할 수 있고 계약단가가 높은 점심 피크와 저녁 피크시간에 집중적으로 일한다. 점심시간 KT 전산망이 중단된 것이 치명적인 이유다.

문제는 이번 사태에 대한 뾰족한 보상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개별라이더가 KT에 업무상 손해에 대한 보상을 요청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시간당 기본급이 보장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면 1시간 정도의 업무중단 때문에 시급이 깎이지 않는다. 사업상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이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달라이더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장이 져야 할 위험까지 진다.

근로기준법 46조는 주문 감소, 예약취소, 공장의 소실 등 사용자의 책임으로 일을 못 하게 됐을 때 노동자에게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하라고 규정한다. 노동자는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일을 모두 포기하고 비장한 각오로 일터로 나온다. 이때 생활비를 못 벌면 삶이 무너지기 때문에 만든 조항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음식가게는 오프라인 위치보다 앱상의 검색노출 위치가 더 중요해졌고, 화폐와 은행은 휴대폰 속 숫자로 존재한다. 수많은 국민이 디지털에 의존해 노동한다. 인터넷이 멈췄을 때 발생한 경제적 피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보상해야 하는 이유다. 보상보다 중요한 건 재발 방지다. 디지털 전산망은 이제 우리경제에 필수적인 사회간접자본이자 공공재다. 필수사업인 KT전산 관리를 외주화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현재의 KT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책임과 비용의 전가에도 금도가 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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