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준비과정 동행 취재기

지난 2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지휘한 얍 판 츠베덴이 공연을 마친 뒤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커튼콜'을 하고 나서 무대 전실(백스테이지)로 들어오고 있다. 장재진 기자
지난달 29일 오후 9시 40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거장 지휘자 얍 판 츠베덴이 KBS교향악단과 함께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의 연주를 막 마친 뒤였다. 츠베덴은 이날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의 객원지휘자였다. 츠베덴이 박수를 받으며 무대 전실(백스테이지)로 들어오자 이른바 '하수'라고 불리는, 무대 출입구 뒤편에 있던 교향악단 공연기획팀 소속 스태프들도 "브라보, 마에스트로"를 외치며 지휘자를 맞았다. 공연의 열기로 츠베덴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지휘자는 객석의 찬사를 받으며 세 차례 무대를 오가면서 '커튼콜(Curtain call)'을 마쳤다. 하나의 공연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2시간이 조금 안 되는 공연을 위해 지휘자를 비롯해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사무국 직원들은 지난 22일부터 공연 준비에 돌입했다. 기자는 정기연주회 당일까지 닷새 동안 공연이 올라가는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본보 장재진 기자가 29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 위에서 하프 덮개를 벗기며 무대 준비를 지원하고 있다. KBS교향악단 제공
공연 준비의 첫발 지휘자 마중
본격적인 준비는 해외 지휘자가 한국으로 입국하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지난 22일 츠베덴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공연 담당자는 2시간 전부터 공항으로 나가 지휘자를 기다렸다. 유정의 KBS교향악단 공연기획팀 과장은 "일단 지휘자가 한국행 비행기를 무사히 탔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연의 반은 성공한 셈"이라며 "예정된 비행기를 못 타면 최악의 경우 공연이 취소될 수도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탓에 워낙 돌발상황이 많아서다.
츠베덴이 입국 심사를 통과해 입국장 게이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서야 담당자는 안도했다. 유 과장은 "공연 실무자 사이에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라'는 말이 있다"면서 "츠베덴이 만약 입국을 못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온갖 시뮬레이션을 하며 마음을 졸였다"고 말했다.

최병호(왼쪽) KBS교향악단 부악장 등 단원들이 서울 여의도동 KBS홀 연습실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KBS교향악단 제공
지휘자-단원 간 교감의 시간 리허설
교향악단 정기연주회의 경우 통상 공연 당일을 포함해 나흘에 걸쳐 리허설이 이뤄진다. 오케스트라가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단원들은 26일 교향악단 연습실에서 실시된 첫 리허설 때부터 29일 오후 예술의전당 무대 리허설이 끝나는 순간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츠베덴이 음악적 디테일을 중시하는 '호랑이 지휘자'였기 때문이다.
공연 프로그램인 프로코피예프와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지휘한 츠베덴은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이 표현될 때까지 몇 번이고 단원들에게 특정 마디를 반복시켰다. 직설적이고 단호한 지휘자의 지적은 진땀을 빼게 만들었다. 연습이 끝난 뒤 모 단원은 "마른 오징어를 쥐어짜서 진액을 뽑아내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혹독한 연습을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츠베덴은 "언제나 디테일이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가 예술이 된다"며 "새로운 음악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KBS교향악단에서 악보를 담당하고 있는 장동인 대리는 "공연 프로그램을 정하는 일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의 고유 권한이지만, 악보 소장 유무가 곡목 선정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악기·악보 담당도 필수 인력
공연은 지휘자와 연주자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악기, 악보 담당자도 없어서는 안 될 핵심인력이다. 악기 담당의 경우 더블베이스와 하프, 피아노 등 오케스트라의 공용악기를 관리하는 한편 연주곡 편성에 맞춰 의자와 보면대를 배열하는 등 무대 구성을 책임진다. 유재식 단원은 "의자만 해도 적당히 두면 될 것 같지만, 연주자끼리 간섭이 없어야 하고 오케스트라만의 익숙한 자리 배치가 있기 때문에 어긋나면 연주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악보 담당자는 악단의 악보를 총괄한다. 연주자가 악보를 편히 넘길 수 있도록 별지를 제작하는 등 편의를 돕는 일도 한다. 장동인 대리는 "지휘자가 요구하는 악보를 정확하게 마련하고, 저작권을 침해할 소지는 없는지 법적 문제를 검토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라고 했다.

29일 오후 KBS교향악단 공연 담당자가 예술의전당 백스테이지에 설치된 모니터를 응시하며 무대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장재진 기자
"공연 못 봐도 관객이 행복하면 충분해"
공연 당일 스태프들은 공연 시작 7~8시간 전부터 공연장에 나가 무대를 준비하고 연주자들이 대기하는 분장실을 꾸몄다. 기획팀 소속 직원들이 무대 뒤편을 맡는다면 홍보·마케팅 담당 직원들은 로비를 책임지며 티켓박스에서 표를 배분하는 등 손님을 맞는 구조였다.
오후 8시 공연이 시작되자 담당자들은 백스테이지에서 모니터 화면을 주시하며 무대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했다. 공연기획팀 소속 전현정씨는 "본공연 때는 항상 무대 뒤편에 있기 때문에 정작 객석에 앉아 공연을 감상한 적이 없다"며 "무대 리허설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는 편"이라고 했다.
연주자뿐만 아니라 사무국 직원들도 관객으로부터 보람을 찾는다. 손유리 공연기획팀장은 "야근이 많고 주말도 없는 고된 일이지만 공연장을 나가는 관객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며 모든 고생을 보상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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