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니 콩쿠르 우승한 피아니스트 박재홍 인터뷰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이다. 지난 8~9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한 피아니스트 박재홍(22)은 이 문장을 생각하며 경연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함머클라비어')의 3악장을 연주했다. 카뮈 특유의 황량함과 "끝없이 캄캄한 고독"을 표현하고 싶었다.
연주가 끝나자 대회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박재홍에게 다가왔다. 심사 공정성 때문에 심사위원과 참가자가 접촉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이런 불문율을 깨고 그 심사위원은 박재홍에게 "인생 최고의 '함머클라비어'를 선물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박재홍은 "그 말을 듣고 '우승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보다는 내 음악이 제대로 전달됐다는 생각에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물론 결과도 좋았다. 박재홍은 지난 9월 3일 한국인으로선 두 번째로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박재홍은 음악적 감수성을 얻는 경로를 두고 "문학과 그림, 좋은 음식 등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홍은 "악보만 봐서는 새로운 인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꼭 이유가 있을 때만 피아노 앞에 앉는다"고 했다.
이런 철학은 콩쿠르 우승과도 관계가 있다. 박재홍은 당초 2년 전에도 부소니 대회에 출전했는데, 그때는 고배를 마셨다. 그는 "첫 참가 때는 하루에 10~12시간씩 연습하면서 잘 정돈된 청사진에 맞춰 음들을 만들었는데, 돌이켜 보니 연주가 아닌 공부를 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올해 대회는 "마음껏 즐기는 마음"으로 임했다. 연습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책이나 그림을 보는 시간을 늘렸다. 박재홍은 "올해가 각종 콩쿠르에 나가기 시작한지 10년째 된 해인데, 부소니를 끝으로 내년은 쉬려고 했다"면서 "연주곡도 철저히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로 골랐다"고 말했다.
박재홍이 최종 결승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그에게 특별한 레퍼토리다. 박재홍은 "초등학생 때 우연히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올가 케른이 이 곡을 연주하는 TV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그때부터 가장 깊이 빠져 있던 곡"이라고 설명했다. 박재홍은 "부소니 결승에서 연주하는 동안 결과가 어떻든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박재홍은 거구의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라흐마니노프와 신체적으로 닮은 면이 있다. 우선 187㎝의 장신인데다 손도 크다. 손가락을 뻗으면 피아노 건반의 도(C)에서 그다음 옥타브 솔(G)까지 한 번에 닿는다. 박재홍은 "체격이 있다보니 무대 위에서 줄 수 있는 카리스마가 나름대로 있었던 것 같다"고 멋쩍게 말했다.
대회 우승을 계기로 물밀듯 쇄도하는 연주 요청 탓에 박재홍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달까지 이탈리아 밀라노, 베네치아 등에서 주요 악단들과 협연했고, 이미 내년 계획도 빼곡하다. 오스트리아 빈 콘체르트 하우스 등 세계적인 공연장 무대를 밟을 예정이다. 국내 일정의 경우 19일 경기아트센터에서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와 베토벤 '함머클라비어' 등 부소니 대회 때 쳤던 곡들을 연주하며 리사이틀에 나선다. 박재홍은 "큰 대회를 우승했다고 안주하는 순간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며 "'멘털' 관리를 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에 도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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