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지휘자와 단원의 끝없는 교감… 리허설
28일 오후 4시 30분.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연주가 끝나고 KBS교향악단 연습실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지휘자(얍 판 츠베덴)와 단원들 얼굴에는 화기애애한 웃음꽃도 보였다. 그렇게 정기연주회를 하루 앞두고 연습실 리허설이 마무리됐다. 지난 26일부터 사흘에 걸쳐 이뤄진 연습을 통해 교향악단 단원들과 지휘자 사이의 교감이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연습실 문이 열리고 지휘자를 비롯해 단원들이 해산했다. 하지만 일부 단원은 연습실에 그대로 남아 개인 연습을 이어갔다. 또 누군가는 지친 심신을 달래며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마른 오징어를 쥐어짜서 액기스를 뽑아내는 기분이었어요." 모 단원이 악기를 챙기며 이렇게 말했다. 막판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간 리허설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뜻이었다.
뉴욕 필하모닉과 홍콩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츠베덴은 거장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그는 불과 19세 나이에 명문 오케스트라 로열콘서트헤보우(RCO)의 최연소 악장으로 임명됐다. 지휘자로 변신한 뒤에는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등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를 숱하게 지휘해왔다. 그는 2019년에 이어 29일에도 KBS교향악단의 객원지휘자로서 정기연주회를 공연한다. 프로그램은 베토벤 교향곡 5번과 프로코프예프 교향곡 5번이다.
츠베덴은 '호랑이 지휘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음악적 디테일에 천착하는 편인데, 자신이 구상하는 음악이 구현될 때까지 리허설 현장에서 몇 번이고 반복연습을 시키는 방식을 고수한다. 직설적인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문에 단원들에게는 까다로운 상대다. 실제 28일 리허설에서도 기자가 듣기에는 훌륭한 음악이 연주됐는데도 지휘자는 수 차례 연주를 중단시켰다. 그때마다 지휘자는 직접 허밍을 하면서 특정 마디나 프레이즈에 대한 템포, 액센트를 설명했다. 츠베덴은 "우리는 연주할 곡을 쓴 작곡가의 대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츠베덴도 자신이 깐깐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츠베덴은 "무대 위에서 나는 단원들에게 내가 가진 것의 100%를 주려고 하는데, 나 역시 그들에게서 100%를 원한다"며 "이런 방식을 누군가는 좋아하고, 누군가는 싫어한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가 세세한 것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츠베덴은 "언제나 디테일이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가 예술이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음악을 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수십 년간 음악을 해 온 프로 연주자들도 리허설이라고 해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현재 KBS교향악단에서 악장 역할을 하고 있는 최병호 부악장은 "본인이 생각하는 음악을 위해 현악기 활의 위치부터 소리 내는 방식까지 상당히 구체적인 지시를 있는 그대로 내리는 지휘자"라며 "듣기 불편한 지시는 악장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지휘자도 있는데, 츠베덴은 뒷자리 단원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설명했다"고 했다. 최 부악장은 또 "그렇다 보니 분위기가 편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음악을 만들자는 동일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교향악단 단원들을 교육하고, 연주력을 개발하는 주체는 음악감독(상임지휘자)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모든 연주회를 음악감독이 지휘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감독과 오케스트라의 계약에 따라 상임지휘자가 지휘를 맡는 연주회 횟수는 정해져 있고, 나머지 연주회는 객원지휘자가 공연을 책임진다. 통상 정기연주회에 필요한 리허설 기간은 사나흘 정도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이 기간 동안 단원들은 지휘자와 부딪치고 답을 찾으면서 그들만의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 단원들이 다양한 지휘자를 만나며 새로운 자극을 받는 동안 오케스트라는 성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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