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성매매 집결지나 유흥업소를 떠도는 여성들
바깥 적응 어려워...'오피' '대화방' 변종 업소로
심리 상담·직업 훈련·생계 유지 진행 쉽지 않아
지방자치단체들 지원책 마련 속도 내지 못해
"언니, 거기서는 아프지도 말고 힘들어 하지도 마요. 바람이 찬데 언니 가는 길 힘들지는 않았을까 걱정 되네요. 미안해요. 그곳은 겨울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2018년 12월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 집결지 화재 사건 이후, 현장에는 사망 여성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노란 포스트잇이 나붙었고, 천호동의 미운 오리처럼 여겨졌던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포스트잇에서 이들은 살아 생전처럼 '언니'라고 불렸다.
그러나 관심은 금세 사그라들었고 피해 여성들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동구 성매매피해여성 인권상담소 소냐의집에 따르면 업주 중 한 명은 형사 재판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 업주 일가 및 관계자들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각각 징역 1년 8개월, 기소 유예와 벌금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사망 여성 유족이나 생존 여성에 대해서는 국가나 업주 차원의 보상이 전무했다.
벗어날 수 없는 '언니'라는 그 이름···떠도는 여성들
이후 문을 닫게 된 다른 업소의 성매매 여성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화재 이후 아파트를 짓기 위한 천호 재개발 사업에 속도가 붙으면서 집결지가 빠르게 문을 닫았지만, 여성들이 전부 탈성매매를 한 것은 아니었다.
소냐의집에서 피해 여성 상담을 담당해 온 이수경 사회복지사에 따르면 여성들은 ①업주를 따라 다른 집결지로 가거나 ②업주가 아예 폐업한 경우 아는 사람을 따라 유흥 시설로 가거나 ③직업 훈련을 받으며 평범한 삶을 준비하는 경우로 나뉘었다.
다른 업소로 가는 경우 젊은 여성들은 아직 성행 중인 다른 지역 성매매 집결지인 영등포구 영등포동, 성북구 하월곡동을 비롯한 수원, 파주, 원주 등 전국으로 옮겨갔다. '오피(오피스텔에서 일어나는 성매매)', '대화방(3.3㎡ 남짓의 공간에서 스킨십하며 대화하는 형태의 성매매)' 등의 변종 성매매 업소로 흘러 들어가기도 했다.
반면 중노년층 여성들은 새로운 업소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성구매 남성이 젊은 여성을 선호하기 때문. 이 때문에 4050 여성들은 식당 보조, 일용직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성매매로 인해 몸이 약해져 고된 육체 노동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만약 모아놓은 자금이 있다면 '방석집(방석에 앉아 맥주 박스로 가격을 지불하여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형태의 업소)'을 직접 차려 업주가 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 빚이 많아 소수에 불과하다.
더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길어지면서 성매매 업소가 영업난을 겪는 데다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힘들어지면서 집결지 여성들의 생계 유지는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직업을 준비하는 수는 더 적은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당장 생계 유지가 어려워 직업 훈련 기간조차 부담스러워하기 때문.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직접 생계·거주 지원금을 받는 방법이 없다보니, 성매매 여성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직업 훈련을 받지만 바깥 세상에 적응이 어려운 이들에겐 심리 상담·직업 훈련·생계 유지를 병행하는 것이 큰 장벽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피해 여성들은 청소년 시기부터 성매매 업계에 들어온 경우가 많아 직업 선택에서 학력의 제한을 받는다. 검정고시 준비나 대학 진학 등 장기간 생활비를 필요로 하는 과정은 꿈꾸기 어렵고, 네일 아트나 미용처럼 비교적 취업 준비 기간이 짧은 직업 훈련을 받게 된다.
이수경 사회복지사는 "가정 형편이 어렵고 부모나 형제를 부양해야 하는 여성들이 성매매 업계에 발을 디딘다"며 "당장의 생활비가 없어 그만두기 쉽지 않고 새로운 삶을 준비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감시 때문에 벗어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경제적 이유로 이곳을 떠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이 때문에 성매매 여성들이 '탈업소'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탈업소'란 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그만두고 나온 상황을 뜻한다. 감금이 심했던 1990년대에는 경찰이 성구매 남성인 척 위장해 여성인권상담소와 연계해 구출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요즘에는 업주와 여성이 맺은 선불금 계약에 대한 무효소송을 통해 탈업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국가족사회복지학회가 2010년 조사한 성매매 피해여성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탈업소 성공률은 60.6%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인권 보호 실태를 들여다보는 경우가 늘면서 구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실제 탈업소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 셈이다.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은 보통 그곳에서 살면서 일하는 게 일반적이라 탈업소를 하고 나면 갈 곳이 없다. 결국 바깥 세상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평범한 직업이나 한 몸 웅크리고 잘 방 한 칸의 선택지가 없는 현실 때문에 이 여성들은 집결지를 맴도는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자활 조례 있어도 예산 통과 못 하는 이유는
이준형 서울시의회 의원은 지난해 '서울특별시 여성폭력방지와 피해자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에서 성매매 여성의 자활을 지원하는 조례를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이 개정 조례안은 지난해 12월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의결됐지만 예산 심의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이 조례는 서울시의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인 강동구 천호동, 성북구 하월곡동,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성매매 여성 513명에게 생계, 주거, 직업 지원 등을 위해 연간 2,200만 원씩 2년 동안 지원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2018년 12월 천호동 성매매 업소 화재 사건 이후 소냐의집을 비롯한 강동구, 성북구, 영등포구 여성인권상담소 관계자와 이준형 서울시의회 의원을 중심으로 토론회 및 공청회를 열어 논의한 끝에 발의됐다.
이준형 의원은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일부 시의회 의원들과 전문위원 등이 표현을 문제 삼아 예산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성매매 여성의 피해자성에 동의 못해 예산 지원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포괄적 지원으로 새 조례를 제정 발의하면 반발이 예상돼 폐쇄되는 집결지 여성만을 대상으로 개정안을 냈지만, 이조차 반대가 심하다는 것. 이 의원은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울시 권익보호담당관과 강동구 여성가족과에 따르면, 서울시 내의 관할구에서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①서울시에서 통과된 조례를 바탕으로 예산을 배정받아 구에서 집행하는 방식, ②다른 하나는 구의회에서 직접 조례를 만들어 예산을 배정해 지원금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서울의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인 강동구 천호동, 성북구 하월곡동,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관할구청 가운데 성북구의회, 영등포구의회는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에 대한 자체 조례를 가지고 있지만 강동구의회는 없다.
물론 조례 존재 여부와 관계 없이 세 구청 모두 실제 피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지원은 미미한 실정이다. 2017년에는 성북구의회가, 2019년에는 영등포구의회가 각각 '성매매여성 자활지원조례'를 제정해 지원 근거를 마련했으나 예산 배정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려 실질적 집행은 어렵다. 강동구는 2020년 통과된 서울시 성매매여성 자활지원조례를 바탕으로 예산을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강동구의회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조례를 제정하는 것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강동구 천호동의 성매매 여성들은 집결지가 문을 닫은 뒤 직업 훈련을 받을 때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 지원금에 기대고 있다. 물론 소냐의집은 정부와 시 보조금을 구청에서 배정하는 방식으로 지원받고 있지만, 예산은 직업 훈련 지원에만 쓸 수 있어서 실제 성매매 여성들의 생계, 주거를 도울 방법은 없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한국일보 기자와 만나 "시의회에서 조례를 만들고 난 후 구의회에서도 조례를 의논한 적이 있는데, 반대 목소리가 있었다"며 "편견 섞인 반대가 있지만 조례를 적극 검토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동구, 영등포구, 성북구 3개 구청장들이 모여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계획을 세워볼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성매매 아닌 성착취라는 인식 필요..."탈업은 알을 깨고 나오는 일"
성매매 여성 지원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성매매에서 판매자는 여성이 아닌 업주"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성노동, 성매매가 아니라 성착취'를 쓴 박혜정 작가는 "성매매는 업주가 판매하고 남성이 구매하며 여성은 상품인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흔히 성매매 여성 지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성매매는 자발적 시장 거래 행위'라는 것과는 다른 인식이다.
박 작가는 집결지 천호동을 연구하면서 성 착취의 구조 안에서 여성은 한 번도 판매자였던 적이 없었음을 발견한다. 1980~1990년대에는 여자 청소년들이 함께 가출 생활을 했던 '오빠'들에게 속아 업주에게 팔아 넘겨져 부당 계약에 착취당했다. 2000년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미성년자 보호에 대한 단속이 시작되자 업주들은 '젊고 어린 가치 높은 상품' 대신 노골적 서비스를 통해 경쟁을 본격화했다.
수익을 늘리기 위해 성 구매 남성이 제한된 시간 안에 가능한 한 여성의 신체를 많이 침해할 수 있도록 '구강 성교', '40분에 두 번' 등의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고 착취하도록 하는 서비스가 내걸리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박 작가는 성매매 집결지의 역사가 여성을 상품화해 판매하고 구매하는 구조였음을 알고 성착취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소냐의집 김효정 사회복지사 역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피해 여성의 자활을 바라보는 관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 그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흔히 공적 지원 체계에서는 '자활해야 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언니들은 한 번도 남에게 의존한 적이 없었다"며 "스스로 일하고 돈을 벌고 있었지만 착취당하는 상황에 있었던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장 상황과 동떨어져 있는 행정 체계도 바뀔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시·구의회 의원들은 탈업률, 취업률, 자활률 등을 요구하지만 탈업은 단번에 일어나기 어렵다"며 "성착취를 당하며 트라우마를 겪는 여성들이 골목 밖 세상에 적응하는 것은 몇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탈업 자체가 알을 깨고 나오는 일"이라며 "(관계 기관이 지원) 실적에 급급하면 실제 탈업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을 중심에 놓고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소냐의집 상담기록에 따르면 천호동 텍사스촌 성매매 여성들은 집결지 폐쇄 이후에도 업주와 성구매 남성 이외의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해 바깥 세상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성매매 집결지 바깥에 살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은 탓에 결국 또 다른 집결지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집결지가 사라진 후에도 골목 안과 밖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그 안에 고여있는 셈이다.
2018년 12월 천호동 성매매 업소 화재 사건으로 성매매 여성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집결지 여성들의 목소리가 바깥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소냐의집이 이들의 수필을 담아 발간한 '소담, 소망을 담다' 기록집에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이렇게 담겨있다.
"나도 꿈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다. 아침에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평범한 사람, 보통사람처럼 살고 싶었다.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도 있다. 도망가고 싶은데 바깥 세상도 무섭다. 나 같은 걸 누가 받아줄까."
천호동 텍사스촌이라는 공간은 자취를 감췄지만 그곳에 있던 여성들은 아직도 여기저기 떠돌고 있다. 이 때문에 아직, 집결지의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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