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오징어게임 못 만드냐" 중년 남성들 사로잡은 4차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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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오징어게임 못 만드냐" 중년 남성들 사로잡은 4차 한류

입력
2021.10.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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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본, 다른 일본] <49>일본 사회 ‘제4차 한류’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인터넷 기반의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일본에 유입된 한국 창작물이 '제4차 한류'를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한류에 시큰둥했던 일본 성인 남성들도 <오징어 게임>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이런 드라마를 왜 못 만드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은 한 수 가르쳐 주어야 하는 존재’라는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시각이 변하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인이 본 <오징어 게임>, 친숙함과 신선함 사이

하도 인기라고 하길래 <오징어 게임>을 보기는 보았다. 잔혹한 소재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드라마 속 정서도 진부하게 느껴져서, 개인적으로는 ‘호’보다는 ‘불호’ 쪽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 작품이 전 세계 곳곳에서 큰 공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일본에서도 이 드라마가 꽤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해서, 일본인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드라마를 보았다는 친구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특히 중·장년 남성들의 평가가 좋았다. 서바이벌 게임을 소재로 삼은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는 복잡한 게임의 룰을 풀이하고 해결하는 두뇌 싸움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은데, 그와는 달리 <오징어 게임>에서는 가혹한 게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삶과 감정선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이 꽤 참신했단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추억의 놀이들이 일본인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반응도 흥미로웠다. 실제로 첫 에피소드에서 충격적인 반전을 안겨주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동일한 ‘오뚜기가 넘어졌습니다(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라는 놀이가 일본에도 있다. 일본인들에게 <오징어 게임>은 한편으로는 친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선한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일본 콘텐츠를 베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지만, 일본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다. <오징어 게임>의 플롯이, 인생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도박판으로 목숨을 걸고 뛰어든다는 내용의 일본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상당히 유사한 것은 사실이다. 90년대에 연재가 시작된 이 만화는 극단적인 설정과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그 뒤로 일본에서는 유사한 소재의 영화나 게임, 드라마 등이 상당수 만들어졌고, 생명을 건 게이머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가 확고하게 정착되었다. 일본 영화 <배틀 로열>(2000)이나 할리우드 영화 <헝거 게임>(2012) 등도 이 장르에 속한다. 짐작건대 내가 <오징어 게임>에 시큰둥했던 것은 이 장르에 대한 이해가 얕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장르물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장르 특유의 ‘문법’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문법을 철저하게 재현하거나 혹은 예상외로 반전시키는 디테일 속에서 독창성과 매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에 비교적 친숙한 일본의 대중들이야말로 <오징어 게임>을 즐길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멜로 드라마→케이팝→한식 등 변해 온 일본 속 ‘한류’

일본에서 한국의 대중 문화 콘텐츠가 인기를 끈 것이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다. 지금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 대중 음악 등이 전 세계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일본의 대중들은 그 어느 나라보다 먼저 한국의 대중 문화 콘텐츠에 관심을 표명하고 아낌없는 사랑을 실천해 왔다. 지난해 연말 일본에서 ‘제4차 한류’라는 말이 유행어 후보로 오르며 반짝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는 이 말이 맞느냐, 틀리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바야흐로 네 번째 한류가 시작되었다는 분석에 납득한다.

일본에서 ‘제1차 한류’는 말할 필요도 없이 2000년대 초반 공영 방송의 전파를 탄 드라마 <겨울 연가>의 인기다. 남녀의 순애보를 그린 이 정통파 멜로 드라마가 불러일으킨 열풍은 ‘사회 현상’ 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다만 당시의 한류는 이 드라마와 출연 배우의 인기에 한정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아줌마’라는 단어가 때때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회자되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중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이 드라마의 인기를 놓고 뻔하디 뻔한 스토리가 중년 여성들의 그저 그런 문화적 안목에 어필했을 뿐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이때만 해도 한국의 대중 문화 콘텐츠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높지 않았다.

‘제2차 한류’는 2010년대 초반, 대중성이 강한 음악과 퍼포먼스로 무장한 소위 ‘케이팝 (K-pop)’이 이끌었다. 일본에서 <겨울 연가>가 대히트를 하면서 새로운 시장 개척의 가능성을 예감한 한국의 연예 산업이 일본의 소비자층을 의식한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고, 일본의 매스미디어도 이를 반겼다. 당시에는 일본의 TV 프로그램에서 유창한 일본어로 농담을 주고받는 한국 연예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중 문화 콘텐츠에 대한 호감이 급속히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발맞추어 극우 세력의 ‘반한’ ‘혐한’ 분위기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방송국이 한국의 콘텐츠에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극우 세력의 타깃이 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이후 한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한류도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일본의 매스미디어가 한국의 대중 문화를 소개하는 데에 소극적이 되었고, 때마침 한국의 연예 산업은 더 넓은 글로벌 시장에 힘을 쏟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뜻하지 않게 ‘제3차 한류’가 시작되었다. 2017년을 전후해서 일본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 음식, 한국식 화장이나 패션, 한국어 등에 대한 호감이 급속히 올라갔고, ‘한국 문화 마니아’를 자처하는 10대들도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매스 미디어나 연예기획사 등이 적극적으로 기획한 것이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하 SNS) 등에서 은근하게 시작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트렌드로 부상했다. 케이팝이 꾸준히 젊은 팬을 확보한 것도 사실이지만, SNS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한국 대중 문화 콘텐츠를 공유하고 즐기는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 큰 동력이었다. 한국에서는 의외로 ‘제3차 한류’가 큰 화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스미디어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젊은이들의 자발적인 정보 공유를 통해 흐름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한국식 화장과 패션을 찾아다니고 떡볶이와 치즈 닭갈비를 즐기는 광경이 꽤 이색적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한일 관계가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에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플랫폼 속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은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꾸준히 키워왔던 것이다.

일본의 기성세대를 ‘포섭’한 ‘제4차 한류’

그 뒤에 찾아온 것이 지금의 ‘제4차 한류’다. 한국 대중 문화에 대한 젊은이들의 호감은 ‘제3차 한류’ 이후 계속되고 있지만, 역시 코로나 19 사태 이후 새로운 움직임이 생겼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일본에서도 외출이나 모임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인터넷 기반의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커졌다. 그리고 이들 플랫폼 속에서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오징어 게임>도 이런 흐름에 편승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4차 한류’에서는 폭넓은 연령층과 세대가 한국의 대중 문화 콘텐츠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한류 팬덤을 이끌어 온 것은 여성들이었다. 한류에 ‘포섭’된 적이 없는 남성의 시각에서 ‘한류는 여성 혹은 젊은이의 취향일 뿐’이라는 박한 평가가 내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일본의 기성세대 남성들도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겨울 연가>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한물간 케케묵은 멜로”라는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았는데, <오징어 게임>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이런 드라마를 왜 못 만드느냐”는 질타가 곧바로 튀어나오는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국은 한 수 가르쳐 주어야 하는 존재’라는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시각이 변하고 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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