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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는 왜 비틀거릴까?… 국회의원 직업부터 서구와 큰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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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는 왜 비틀거릴까?… 국회의원 직업부터 서구와 큰 차이

입력
2021.10.28 14:45
수정
2021.10.28 18:1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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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은 어떤 사람일까?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국회의원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들은 국민을 대리해 국가를 운영한다. 인구가 5,000만 명이 넘어가는 국가를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한 제도로만 운영하기란 불가능하다. 문제는 대리인이 주인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순간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때로는 뜻을 알면서도 제멋대로 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대체 왜 그럴까?

한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해온 문우진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달 내놓은 정치 비전공자를 위한 민주주의 설명서 ‘누가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에서 그 이유를 쉽게 풀어낸다. 국회의원들의 사회적 배경과 신상, 그들이 정당을 만들어온 과정을 분석하면서 국민이 정당을 통해서 국가를 통제한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이에 따르면 한국에서 국회의원들은 시민사회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이권을 추구하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고학력 정치 엘리트들의 집단에 가깝다.

한국 국회의원들의 신상을 분석하기에 앞서 문 교수는 한국의 정당이 시민사회와 분리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19세기 말 서구에서는 기득권 세력이 서로에게 특권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엘리트 정당’이 등장했다. 20세기 초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고 비로소 국가와 시민사회를 연계하는 ‘대중정당’이 등장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그러한 기회가 없었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이 노조의 정치활동을 억누르면서 정당들은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 정당들은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집단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저자는 “한국의 정당은 경제적·사회적·지역적·기득권 세력과 이에 맞서는 비기득권 엘리트 세력 간의 권력투쟁 수단이 됐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할리우드에서 열린 권투 경기에 해설자로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환호하는 팬들에게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문우진은 유권자들이 정당이 자신들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정당정치가 인물 중심으로 개인화된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한국에서는 안철수, 반기문, 윤석열 등이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AP 뉴시스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할리우드에서 열린 권투 경기에 해설자로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환호하는 팬들에게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문우진은 유권자들이 정당이 자신들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정당정치가 인물 중심으로 개인화된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한국에서는 안철수, 반기문, 윤석열 등이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AP 뉴시스


그 결과로 한국과 서구의 국회의원 출신성분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1대부터 21대까지 지역구 후보와 당선자의 배경을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는 현직 의원, 정치인, 변호사, 교수 등 ‘정치엘리트’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일차산업 종사자, 상공인, 회사원 등 직능집단 후보 비율은 제헌국회에서는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차츰 낮아졌고 16대 총선부터는 정치인, 현직 의원, 변호사, 교수 출신의 비율이 높아졌다. 민주화 이후 정치 엘리트 후보의 비율은 평균적으로 67% 수준이다. 당선자 역시 대부분 정치 엘리트들이다. 민주화 이후만 따져도 정치 엘리트 출신 의원 비율은 88%에 달한다. 반면 직능기반 출신 비율은 평균 5%에도 못 미친다. 저자는 “민주화 이후 정치 엘리트가 한국의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배하고 있다”고 썼다.

반면 서구에서는 정당과 시민사회가 국회의원을 통해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이탈리아를 대상으로 1950년대 후반 국회의원들의 전직을 분석한 결과, 정치엘리트의 비율은 평균 37.2%에 그쳤다. 직능 집단 출신 비율은 63.3%에 달한다. 1990년대 후반으로 시간대를 옮겨도 연결망은 끊어지지 않았다. 정치 엘리트의 비율은 평균 39%에 머무른 반면, 직능집단 비율은 평균 57.5%를 기록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선거제도나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비율에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모든 국가에서 직능집단 출신이 정치 엘리트 출신보다 많았다. 문 교수는 여기에 학사 출신자 비율이 20%에 그친 노르웨이와 62%에 달하는 이탈리아를 비교하면서 “의원들의 학력과 민주주의 수준은 서로 상관이 없다”고도 꼬집는다.


누가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 문우진 지음ㆍ후마니타스 발행ㆍ320쪽ㆍ1만7,000원

누가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 문우진 지음ㆍ후마니타스 발행ㆍ320쪽ㆍ1만7,000원



어떤 국회가 시민들을 정책적으로 더 잘 대변할까? 문 교수는 “한국에서도 물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의정활동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국회의원들의 공통적 지상 목표는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히나 단순 다수제로 후보를 선발하는 한국의 선거제도에서 지역구 의원들은 정책 대결보다는 상대를 공략할 프레임 개발과 정치 공세에 집중한다는 이야기다. 정치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게시물 역시 지루한 정책 설명보다는 자극적 내용에 편중된다. 정당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서 정치인과 그들을 따르는 팬들이 극한의 감정싸움을 벌인다. 한국 대선이 정책 대결보다 인물 대결에 가까운 이유다.

‘누가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에서 한국과 서구의 국회의원 배경을 비교한 부분은 40절로 나누어진 내용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문 교수는 긴 호흡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그 과정에서 보수정권이 경제와 안보에 강하고 진보 정권은 소득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통념, 지역정당이 집권하면 지역주민들이 혜택을 입는다는 상식을 허물기도 한다. 책의 말미에서는 정당이 시민들을 정책적으로 잘 대변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안을 제시한다. 결론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비전공자에게는 기술적이고 난해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완주할 가치는 있다. 문 교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는 지배 집단이 아닌 보통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할 때 진보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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