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프로그램 만들고 현장 지원에 단원 관리까지…?만능 일꾼, 공연기획팀
공연기획팀은 공연계에서 일하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다. 대학 졸업 후 지난 3월부터 KBS교향악단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주희씨도 마찬가지였다. 기획팀 근무를 자청했다는 그는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하는 일이 참 멋있어 보였다"고 했다. 실제로 기획자는 공연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맞다. 다만 기획자가 챙겨야 할 업무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세세하다. 김씨는 "연주자가 탈 차량 예약이나 식사 준비까지 '이런 것도 신경써야 하는구나'하는 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기획자에게는 세심함뿐만 아니라 순발력도 요구된다. 리허설 과정과 공연 당일 현장 상황이 꼭 주최 측의 예상대로만 흘러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김씨는 "공연과 예술을 좋아하고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면 기획일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그보다는 위기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냉철하게 임기응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정기연주회를 이틀 앞둔 27일에도 예상치 못한 일들 생겼다. 리허설에 참여하기로 했던 일부 단원에게 건강상 문제가 생겨 갑작스러운 인원 조정이 필요했다. 사전에 전달받지 못했던 지휘자의 요청에 따라 부랴부랴 금관연주자 2명을 충원하는 일도 있었다.
내년이면 KBS교향악단에서 근무한지 10년 차를 맞는 손유리 공연기획팀장에게도 이런 상황은 당혹스럽다. 공연일이 다가올수록 손 팀장의 전화기는 불이 난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따라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손 팀장은 "공연 일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전과 오후가 또 다르다"며 "좋게 말하면 지루할 틈이 없다"고 했다.
오케스트라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교향악단의 스태프들이 소속된 사무국은 크게 세 팀으로 구분된다. ▲재무와 회계, 인사 등 교향악단 살림을 책임지는 경영지원팀 ▲공연을 홍보하고 마케팅 사업을 구상하는 홍보ㆍ마케팅팀 ▲공연에 관한 실무를 총괄하는 기획팀이다. KBS교향악단의 경우 차례대로 경영관리팀, 공연사업팀, 공연기획팀으로 명명돼 있다.
이중 기획팀의 업무는 3개로 구분된다. ▲공연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연주자를 섭외하는 '아티스틱 플래닝(Artistic Planning)' ▲리허설 진행 등 무대 현장을 지원하는 '오퍼레이션(Operation)' ▲단원들의 근태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퍼스널 매니징(Personal Managing)'이다. 손 팀장은 "해외 대형 오케스트라의 경우 기획팀도 역할에 따라 조직이 세분화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KBS교향악단을 비롯해 국내 악단은 대체로 공연팀 직원들이 모든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즉 국내 기획자는 '제네럴리스트(Generalist)'의 역할을 요구받을 때가 많다.
공연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직무이긴 하지만 기획자라고 해서 자유롭게 공연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손 팀장은 "가끔 기획팀에 입문하는 신입들 중에서는 기획자가 굉장히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며 "철저히 예산이라는 현실 속에서 보수적으로 접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는 전적으로 음악감독(상임지휘자)에게 래퍼토리를 선정할 권한이 부여된다. 하지만 국내 현실에 맡게 조정이 필요한 경우 조언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공연기획자의 임무다. 새로운 래퍼토리 개척 등 예술적 도전이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객이 공연을 즐길 수 있을 만한 최소한의 대중성을 간과할 수도 없기 때문에 중심을 잡아야 한다.
손 팀장은 "지휘자가 하고 싶은 공연이 예산 범위를 지나치게 초과하거나 공연 당시 국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곡을 선택한다면 'NO(노)' 라고 얘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 기획자 중에서도 공연기획팀장은 특히 음악감독과 '애증의 관계'다. 지휘자와 누구보다 가깝게 소통하지만, 현실적 제약으로 요구사항을 제지하는 악역도 맡기 때문이다.
공연 업무 특성상 기획자는 야근이 많고 주말도 반납해야 하는 때가 부지기수다. 공연이 주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손 팀장은 "전문성을 쌓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상당한데 희생에 비해 월급은 많지 않다"면서 "정말로 공연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지속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보람은 어디서 찾을까. 손 팀장은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공연장을 나갈 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면 모든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공연이 끝난 뒤 곧바로 다음 공연을 생각하며 설렐 수 있다는 점도 기획자의 큰 매력"이라고 했다.
한편 KBS교향악단은 벌써 내년도 공연 프로그램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2019년 요엘 레비 음악감독의 퇴임 이후 KBS는 최근까지 상임지휘자 자리가 공석이었다. 내년에는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이 부임한다. 정년 등을 이유로 결원이 생긴 단원 자리도 대거 채용 예정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도 임박한 만큼 내년 공연 계획은 지난해나 올해와는 달리 큰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달 취임한 김덕재 KBS교향악단 사장이 개편에 앞장서고 있다.
27일 KBS교향악단 사무국에서 만난 김 사장은 "우선 매달 한 번 꼴로 열리는 정기연주회 말고도 자체 기획 프로그램을 확충할 생각"이라며 "대관 문제가 숙제이긴 하지만 가능하다면 10회 정도 되는 시리즈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동시에 해외에서는 연주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젊은 음악인들을 무대에 세우는 일에도 박차를 가한다.
KBS 공채 17기 PD 출신으로서 30년간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 온 김 사장은 자신의 경력을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공연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에도 앞장 설 계획이다. 영상과 공연의 융합이 대표적이다. 김 사장은 "KBS에는 현장감과 영상미가 뛰어난 다큐멘터리 프로가 많은데, 공연장에서 이런 영상들과 함께 음악이 연주된다면 클래식이 낯선 관객들이 보다 편안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국내 최고의 오케스트라로서 고전 음악의 품격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지만, 대중을 향해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노력도 꾸준히 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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