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종전선언 입구로 향하는 길목이 당사국들의 시각차로 순탄치 않은 모습이다. 정부가 최근 한미 협의를 이어가며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이 당장 호응할 뜻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다. 적대시 정책 철회만 외치는 북한도 종전선언에 대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문재인 정부에서 종전선언 논의가 실질적인 진전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6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종전선언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할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우리(한미)는 각각의 조치를 위한 정확한 순서, 시기, 조건에 관해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핵심 전략 이니셔티브와 오직 외교를 통해서만 진전을 이룰 수 있고, 외교는 억지력과 함께 가야 한다는 믿음에서 일치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한미가 종전선언 협의를 진행해온 상황에서 미국의 안보사령탑이 공식 석상에서 온도차를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설리번 보좌관은 12일 미국을 방문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면담에서도 정부의 종전선언 구상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구체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종전선언에 대해 "신뢰구축을 위한 상징적이고 정치적 선언"이라는 입장이다. 정전체제의 법적·구조적 변화를 의미하지 않을뿐더러 '비핵화협상의 입구'라며 미국을 설득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종전선언에 법적·정치적 구속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유엔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의 파급효과가 나타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법률적 검토에 착수한 상황이다.
미국의 신중한 태도는 대북접근에 있어 '조건 없는 대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종전선언과 대북 인도적 지원 등 대북대화 재개 방안을 위한 논의에는 적극적이지만, 대화만을 위한 인센티브는 주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최근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는 여전히 시행 중이고, 모든 유엔 회원국에는 의무가 있다"며 북한이 요구하는 '선(先) 제재 해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27일 설리번 보좌관의 언급에 대해 "한미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과의 외교와 대화를 우선시한다는 입장이며 이를 위해 긴밀한 협의를 이어왔다"며 "진지하고 심도 있는 협의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간 시각차가 여전한 가운데 북한이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원칙에 호응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 내 종전선언 추진을 위한 동력 확보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북한은 무력 도발을 계속하고 있고 북미 간에도 인권문제가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26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등에 "북한에 대한 전반적인 접근방식에서 인권을 계속 우선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내정간섭'이라며 민감해하는 인권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종전선언의 핵심 주체인 북미의 입장차가 극명해질수록 종전선언 추진에는 제동이 걸린다"며 "북미가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미측의 종전선언에 대한 거부감도 커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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