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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갈등의 함정은 정치화와 진영논리

입력
2021.10.27 00:00
수정
2021.10.27 14:4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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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바라보는 두 가지 걱정
진영논리 가세, 노골적 젠더갈등 비화
합리적 의사소통으로 문제 해결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청년 세대의 아들과 딸을 가진 한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아들의 경우, 스치기만 해도 뒤집어쓰지 않을까, 불순한 마음먹은 사람한테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이 늘 있고, 딸의 경우 일단 남성이 물리적 힘에서 우위에 있으니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늘 있거든요." 매일같이 들려오는 성폭력 뉴스, 특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 데이트폭력 보도를 보면서 이 엄마의 걱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약간의 방탕함, 심지어 연인과 헤어짐의 결과 성범죄자로 낙인찍혀 인생을 망쳤다는 남성들의 스토리가 빚어내는 피해의식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임을 엄마의 말이 보여준다.

여기에서 보이는 양면의 현실은 노골화되는 젠더갈등의 소재를 이룬다. 그 본질이 일자리와 권위의 불평등한 배분이라는 세대 간 모순이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은 젠더갈등이다. 미투 운동의 전개 속에 명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2018년 4월 대법원은 교수에 의한 성희롱 사건에서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피해자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소위 '피해자다움'을 근거로 피해자의 진술을 탄핵하는 전략이 법정에서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대선 가도를 향해 달려가던 한 유력 정치인도 그렇게 쓰러졌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해준다는 이러한 변화가 또 다른 불공정을 낳는다는 불만이 대두했다. '성인지 감수성'의 위력 앞에 수사기관과 법원이 피해자 진술만을 듣는 안전 위주의 사건 처리를 한다는 지적도 자주 듣는다. 그러한 인식이 남성 역차별에 대한 불만과 결합하여 4·13 재보궐선거에서 이대남의 표심을 움직였다는 해석이 있다.

근래 그와 같은 불만은 성폭력 무고죄의 처벌 강화를 주문하는 요구로 표출되고 있다. 보수정치권이 이에 더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성폭력 고소를 당한 사람이 무고로 피해자를 고소한 사건의 경우 무고 수사를 성폭력 수사 종결 후로 미루라는 대검찰청의 수사 매뉴얼을 폐지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그 수사지침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무고죄 적용을 남용하지 말라고 대한민국에 권고한 201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의 최종 견해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것인데, 이를 다투는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가 심판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한 바 있다. 그 지침을 없애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갈등에 대해 양면을 고려하는 현명한 엄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여성이 피해 입을 확률이 더 높은 게 상식이지만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하고 최소한의 보호에서도 소외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무고죄가 강화되면 진짜 피해자가 신고를 못 할 수도 있고 역으로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단서를 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 가해자로 억울하게 몰리는 사람이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악의적 무고는 엄격히 처벌해야 마땅하다. 그것의 선행 조건은 수사능력의 향상과 법원의 공명정대한 사실 인정이다. 대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선언하고 그 내용을 이루는 성범죄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경험칙으로 당연시하면서도 전문가의 의견과 당사자의 변론을 청취하지 않았음을 아쉬워하는 평가가 있고, 대법원의 법리를 '성인지 감수성 법리'로 일반화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법원 내부의 목소리도 있다. 역시 해답은 합리적 의사소통이다. 젠더갈등의 정치화와 진영논리는 합리적 소통의 가장 큰 장애다. 미투 운동이 진보 분열의 공작이라는 식으로 말한 김어준에 대한 금태섭의 비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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