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으로 만든 명함과 청첩장, 누구 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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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으로 만든 명함과 청첩장, 누구 똥일까

입력
2021.10.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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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코끼리똥 종이 르포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보고르의 타만 사파리 직원 제이드씨가 코끼리똥으로 만든 종이를 보여주고 있다. 보고르=고찬유 특파원

명함을 한 장 받았다. 윤기가 흐르는 백색 종이가 아니었다. 갈색에 섬유질이 우둘투둘 박힌 질이 낮은 종이였다.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을 알아챈 듯 "똥으로 만든 겁니다"라고 명함을 건넨 이가 말했다. "드디어 만들었네요"라고 답했다. 반사적으로 명함을 코에 댔다. "킁킁."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상대가 웃으며 말했다. "코끼리똥으로 만든 명함입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람풍주 와이캄바스 국립공원에 있는 수마트라코끼리들. 람풍=고찬유 특파원

수마트라코끼리를 취재하기 위해 2019년 12월 수마트라섬 람풍주(州)를 찾아갔을 때 코끼리똥으로 종이를 만든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다. 정작 우리나라 아이들은 이미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코끼리똥으로 종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동화책에서 읽었고,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도 배운다는 것이다. 코끼리똥으로 종이 만드는 삽화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현장을 수소문했다.

람풍 지역 동물보호단체 회장 줄 파르디씨가 타만 사파리 안에 있는 코끼리똥 종이 제조장 입구를 가리키고 있다. 보고르=고찬유 특파원

약 2년 만에 기회가 왔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 허가를 얻어 코끼리똥 종이(elephant poo paper) 제작 과정을 직접 살펴봤다. 오랜만에 만난 람풍 지역 동물보호단체 회원들도 동행했다. 동남아시아 최대 사파리라 불리는 서부자바주(州) 보고르의 타만 사파리(사파리 공원)에 있다. 동물 구경 겸 취재차 세 차례나 방문했지만 출구 옆에 있어 존재도 모른 채 지나쳤던 곳이다.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보고르 타만 사파리의 코끼리똥 종이 제조장 내부. 보고르=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에서 코끼리똥 종이 제작은 아무나 할 수 없고, 그 과정 역시 쉽게 볼 수 없다. 자카르타에서 현장까지 차를 탄 왕복 8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수마트라코끼리의 입을 빌려 똥 종이를 소개한다. 타만 사파리의 똥 종이 담당 직원 노프리잘(39)씨와 제이드(26)씨, 동물보호단체 회장 줄 파르디(52)씨 등의 설명도 참고했다.

타만 사파리, 와이캄바스 국립공원 위치. 그래픽=송정근 기자


코끼리똥 톤당 종이 생산량은?

인도네시아 람풍주 와이캄바스 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아기 수마트라코끼리 타우판. 람풍=고찬유 특파원

한국 친구들, 안녕하세요. 두 살배기 수마트라코끼리 타우판(폭풍)입니다. 한국에선 간단히 설명하고 있지만 코끼리똥이 종이가 될 때까지 32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크게 똥 섬유질 추출, 폐지 재료 준비, 섞어서 종이 만들기로 나눕니다. 간단히 설명해 볼게요.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주 보고르의 타만 사파리에 사는 수마트라코끼리가 방금 싼 똥. 보고르=고찬유 특파원

먼저 코끼리똥은 하루가 안 지난 신선한 걸로 골라야 해요. 똥을 물통에 넣고 불려서 섬유질이 분리되고 깨끗해질 때까지 씻습니다. 물기를 뺀 섬유질을 새로운 물통에 넣고 믹서기로 분해한 뒤 10분간 기다립니다. 물을 채운 냄비에 섬유질을 넣고 2시간 끓입니다. 세균과 냄새를 없애야 하거든요. 참, 끓이는 연료인 가스는 소똥에서 나왔답니다. 10분간 둔 뒤 체에 밭쳐 물기를 뺍니다. 말린 섬유질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30분간 분쇄기에 갈아준 뒤 꺼내서 물통에 넣습니다.

물로 씻은 수마트라코끼리똥. 보고르=고찬유 특파원

이번엔 폐지 차례입니다. 양질의 똥 종이를 만들고 색깔을 내기 위해 폐지는 꼭 필요합니다. 한국 교과서는 코끼리똥 종이의 색깔을 내기 위해 색소를 넣는다고 소개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사파리 사무실에서 수거한 색이 많지 않은 각종 폐지를 찢어서 무게를 잰 뒤 1시간 끓입니다. 물을 충분히 채운 제분기 통에 끓인 종이를 넣고 죽처럼 될 때까지 15분간 갈아 줍니다. 이걸 다시 새로운 물통에 넣으면 준비가 됐습니다.

소똥에서 나온 바이오가스로 끓인 코끼리똥 섬유질. 보고르=고찬유 특파원

폐지 죽이 들어간 물통에 믹서기를 켭니다. 거기에 똥 섬유질을 섞습니다. 똥 섬유질과 폐지를 6대 4 비율로 섞어야 색깔이 곱습니다. 잘 섞은 뒤 물로 채운 싱크대에 넣습니다. 네모난 틀을 싱크대에 넣고 재료가 고르게 퍼지도록 조심스럽게 살살 뜹니다. 경사진 나무 판에 틀을 올려놓고 고무 롤러로 부드럽게 문지르면서 물기를 뺍니다. 나무 판이 젖은 종이 틀로 꽉 차면 하루 이상 말리고, 다 마르면 종이를 떼어 냅니다. 참 쉽죠…

물에 끓인 뒤 말린 코끼리똥 섬유질을 30분간 갈아 준다. 보고르=고찬유 특파원

타만 사파리엔 수마트라코끼리 45마리가 살고 있어요. 마리당 20㎏씩 매일 약 1톤의 똥이 생산(?)되죠. 그렇다고 모두 종이로 만들 수는 없어요. 섬유질이 많고 분비물 조각이 작은 똥이 제격이죠. 활용할 수 있는 깨끗하고 건강한 똥은 50㎏ 정도랍니다. 이걸로 매일 폭 40㎝, 길이 50㎝ 규격의 종이 210장을 만들어요. 톤당 200여 장이 생산되는 셈이죠. 장당 5,000루피아(약 400원)랍니다. 나머지 똥은 퇴비로 쓴다고 해요.

코끼리똥 섬유질과 폐지를 6대 4 비율로 섞은 재료를 싱크대에 넣고 고르게 퍼지도록 네모 틀로 조심스럽게 뜬다. 보고르=고찬유 특파원

코끼리똥 종이는 폭 32㎝, 길이 35㎝ 정도로 자른 뒤 타만 사파리에서 기념품(3장에 1만 루피아)으로 팔고 있어요. 결혼식 청첩장, 생일잔치 초대장, 엽서, 공책, 포장지, 도화지 등 쓰임새가 다양합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초식 동물의 똥은 재활용 종이로 바꿀 수 있답니다.

경사진 나무 판에 틀을 올려놓고 고무 롤러로 부드럽게 문지르면서 물기를 뺀다. 보고르=고찬유 특파원

코끼리똥 종이 생산은 2012년 정부 승인에 따라 이뤄졌어요. 그 전에 보고르농대와 함께 조사하고 연구했죠. 현재 코끼리똥을 생산하는 곳은 인도네시아 전역에 보고르와 동부자바주 프리겐, 발리 세 군데밖에 없답니다. ‘심각한 멸종 위기종’인 수마트라코끼리의 유전자 정보 보호 차원에서 코끼리똥의 외부 반출은 엄격히 금지돼 있어요. 그만큼 인도네시아에서도 코끼리똥 종이는 귀한 존재죠.

네모 틀을 떼어 낸 코끼리똥 종이를 나무판 채로 말린다. 보고르=고찬유 특파원

이번에 견학 온 람풍 동물보호단체 회원들도 코끼리똥 종이를 만들고 싶어하죠. 그 지역의 와이캄바스(way kambas) 국립공원에서 보호받는 수마트라코끼리 60여 마리가 매일 2톤의 똥을 생산한다니 여건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동물 배설물을 재활용하는 친환경 사업인 만큼 정부 허가를 받길 바랍니다. 이상 수마트라코끼리 타우판이었습니다. 트리마 카시(terima kasihㆍ감사합니다)!

코끼리똥 종이에 그린 그림. 보고르=고찬유 특파원


말똥, 소똥, 곰팡이, 깃털… 착한 동물 폐기물

인도네시아 농민이 소똥으로 종이를 만들고 있다. 브라위자야대 제공

인도네시아는 소똥으로 친환경 종이를 만드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아직 대량 생산 단계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동부자바주 말랑의 브라위자야대 학생들은 소똥 종이(moo paper) 제조 방법을 주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인도네시아 고등학생들이 말똥으로 만든 종이를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캡처

말똥도 종이로 만든다. 소똥의 섬유질 함량은 18%인 반면 말똥의 섬유질 함량은 22.89%이므로 종이 생산에 더 적합하다. 말의 소화 작용이 소보다 덜하기 때문에 똥에 섬유질이 더 많다. 말똥 200g으로 1㎜ 두께의 A4보다 조금 긴 용지(폭 210㎜, 길이 330㎜) 5장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기념품으로 판매되는 코끼리똥 종이. 보고르=고찬유 특파원

발효된 소똥으로 바이오가스를 생산하기도 한다. 소똥 바이오가스는 앞서 언급했듯 코끼리똥 종이를 생산하는 과정에 중요한 연료로 쓰인다. 방치하면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소똥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연구는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전부터 진행됐고 축산 농가에서 주방용, 조명용, 난방용 연료 등으로 실제 활용하고 있다.

버섯 곰팡이 가죽으로 만든 신발과 지갑. 인도네시아 국립혁신연구원 제공

곰팡이 균사체로 만든 친환경 가죽도 있다. 톱밥, 사탕수수 등 섬유질 농업 폐기물에서 자란 곰팡이 균사체가 재료다. 버섯 재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곰팡이로 만든 가죽은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도 송아지 가죽의 질감과 비슷하다. 가죽을 얻기 위해 소를 기르려면 3~4년이 걸리는 반면, 버섯 재배는 60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곰팡이 가죽은 신발, 지갑, 시계 테 등으로 거듭난다.

닭 깃털 플라스틱으로 만든 먼지떨이. 레푸블리카 캡처

닭 깃털로 만든 친환경 플라스틱도 있다. 깃털의 주성분인 경질 단백질을 가리키는 케라틴을 가소제와 섞어 만드는 식이다. 현재 국립혁신연구원과 보고르농대에서 연구하고 있다. 7,000여 가지 동물(곤충 제외)이 서식하는 인도네시아가 인간과 동물의 갈등을 넘어 공존을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코끼리똥 종이로 포장한 수마트라섬 람풍 커피 '코피끼리'.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사실 코끼리똥 종이 명함 제작은 기자가 먼저 제안했다. 사회공헌활동으로 몇 년 전부터 람풍의 커피조합을 지원하는 한국중부발전 인도네시아 법인이 농가에서 생산한 커피 제품을 최근 코끼리똥 종이로 포장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다. 제품명은 코피끼리(커피+코끼리)다. 기자도 코끼리똥 종이 명함을 주문했다. “처음 만나면 드리겠습니다.”


보고르·람풍= 고찬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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