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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사찰인가 사당인가... 만어사, 돌 보러 절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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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사찰인가 사당인가... 만어사, 돌 보러 절에 간다

입력
2021.10.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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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대표하는 두 개의 이색 사찰

밀양 표충사 전각 뒤로 대숲이 울창하다. 창건 당시 이름은 죽림사였다.

밀양 표충사 전각 뒤로 대숲이 울창하다. 창건 당시 이름은 죽림사였다.

밀양 남쪽과 북쪽에 지역을 대표하는 두 개의 사찰이 있다. 고즈넉한 절간의 정취야 여느 사찰과 다를 바 없지만, 다른 사찰에는 없는 독특한 구조와 풍경을 담고 있다.

표충사는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재약산(1,189m)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 주변으로 우람한 바위봉우리가 능선을 이루며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표충사는 사찰이자 사당이다. 절 안에 유생들의 교육 공간인 표충서원과 제사 시설인 표충사(表忠祠)가 함께 있다. 유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사연이 흥미롭다. 신라 무열왕 때 원효 대사가 창건했다는 사찰의 처음 이름은 죽림사(竹林寺)였다. 지금도 전각 뒤편으로 대숲이 울창하다. 흥덕왕 때부터는 영정사(靈井寺)라 불렸다. 왕의 아들이 이 절에 있는 약수로 피부병이 나아 영험한 우물이 있는 절이라는 의미로 내린 이름이다.

우람한 재약산 자락에 포근히 안긴 표충사. 유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사찰이다.

우람한 재약산 자락에 포근히 안긴 표충사. 유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사찰이다.


표충사 정문. 일반 사찰 건물과 달리 2층 누각 형식이다.

표충사 정문. 일반 사찰 건물과 달리 2층 누각 형식이다.


표충사 앞 부분은 절이 아니라 사당이다. 사명·서산·기허 대사 세 고승을 기리는 표충사(表忠祠)가 먼저 보인다.

표충사 앞 부분은 절이 아니라 사당이다. 사명·서산·기허 대사 세 고승을 기리는 표충사(表忠祠)가 먼저 보인다.

1,000년 이상 사용해 온 영정사라는 명칭은 1839년 지금의 표충사로 바뀐다. 숭유억불 정책이 지속되는 시절이라 이 사찰도 재정 위기에 봉착해 산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였는데, 당시 주지인 천우 선사가 묘안을 냈다.

이곳에서 37㎞ 떨어진 밀양 무안면에 있던 표충사당을 절 안으로 옮겨 온 것이다. 제사 밑천인 부속 토지까지 이전해 절간 살림이 단번에 펴졌다. 표충사당은 사명 대사로 잘 알려진 유정(1544~1610)의 공덕을 기리는 시설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워 공을 세웠고, 1604년 사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3,000여 명의 조선인 포로를 구해서 돌아온 전설적 인물이다. 일명 ‘땀 흘리는 비석’으로 알려진 표충비는 유림의 반대로 끝내 이전하지 못했지만, 사명 대사의 명성을 고스란히 이었으니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사찰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절 입구에 다시 표충사(表忠寺)라 쓴 이층 누각이 세워져 있다. 보통 절에는 사천왕문이 있을 자리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왼편에 표충서당이 있고, 그 옆에 재약산 산줄기를 배경으로 표충사(表忠祠)가 보인다. 사명 대사와 함께 승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서산·기허 대사를 모신 사당이다. 지금도 표충사 봄가을 제향에는 스님과 유림이 함께 참례한다.

표충사 우화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재약산 기슭에 가을 색이 물들고 있다.

표충사 우화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재약산 기슭에 가을 색이 물들고 있다.


표충사 아래 시전마을에서 사찰까지 울창한 솔숲 길이 이어진다.

표충사 아래 시전마을에서 사찰까지 울창한 솔숲 길이 이어진다.

넓은 마당에서 계단을 오르면 그제야 진짜 사찰이 나타난다. 삼층석탑 뒤로 자리 잡은 전각이 재약산 너른 품에 포근히 안긴 모습이다. 대광전 맞은편 우화루 마루는 천혜의 계곡 전망대다. 툭 트인 기둥 사이로 보이는 산자락에 가을 색이 오르고 있다. 차로 사찰 바로 앞까지 갈 수 있지만, 운치를 제대로 즐기려면 약 1㎞ 앞 시전마을에 차를 대고 걷는 것이 좋다. 마을에서 사찰 주차장까지 노송이 멋들어지게 도열한 휘어진 숲길이다.

밀양 남쪽 삼랑진에 위치한 만어사는 한마디로 돌 보러 가는 절이다. 고려 명종 때인 1180년 창건한 고찰이라 자랑하지만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은 아담하고 소박한 편이다. 대신 만어산(670m) 8부 능선에 자리 잡은 사찰 마당에서 보는 전망이 시원하다. 운해가 특히 아름다워 밀양 8경에 올라 있다.

만어사 앞 산비탈을 크고 작은 바위가 빼곡하게 덮고 있다.

만어사 앞 산비탈을 크고 작은 바위가 빼곡하게 덮고 있다.


만어사 마당에 서면 멀리 산 능선이 부드럽게 연결된다. 만어사 운해는 밀양8경에 올라 있다.

만어사 마당에 서면 멀리 산 능선이 부드럽게 연결된다. 만어사 운해는 밀양8경에 올라 있다.

만어사의 가장 큰 자랑은 사찰 앞마당에서부터 산비탈을 뒤덮고 있는 너덜겅 지대다. 만어사(萬漁寺)는 바로 이 바위를 1만 마리 물고기에 비유한 명칭이다. 한여름 소나기가 뿌린 후 뜨거워진 바위를 식히며 수증기가 얇게 퍼지면, 수많은 물고기가 주둥이를 물위로 내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 모습을 설법을 경청하는 것에 비유하는데, 실제 미륵전 내부에는 불상 대신 돌고래처럼 날렵한 커다란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지질학적 가치도 높아 ‘밀양 만어산 암괴류’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땅속 화강암이 위로 올라오며 팽창하는 과정에서 풍화와 침식이 진행되고, 빙하기가 끝나며 계곡 아래로 진행되던 흐름이 멈춘 후, 오랜 세월 모래와 흙은 씻겨 내려가고 지금처럼 바위만 남게 됐다는 게 지질학적 설명이다. 바위를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가 나서 ‘만어산 경석(磬石)’이라고도 부르는데, 화강암의 성분에 따라 소리가 조금씩 다르다.

만어사 경석 위로 지나다닌 자국이 그대로 탐방로가 됐다.

만어사 경석 위로 지나다닌 자국이 그대로 탐방로가 됐다.


절에서는 수많은 경석을 미륵의 설법을 듣는 물고기에 비유한다.

절에서는 수많은 경석을 미륵의 설법을 듣는 물고기에 비유한다.


만어사 미륵전에도 불상 대신 거대한 바위가 들어앉아 있다.

만어사 미륵전에도 불상 대신 거대한 바위가 들어앉아 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바위 위로 자연스럽게 길이 나 있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걷는다. 주변 바위마다 작은 돌로 두드린 흔적이 남아 있다. 각자의 종소리를 마음에 담아 올 수 있는 곳이다.

밀양=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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