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사진' 메시지는 '비사과성 사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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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사진' 메시지는 '비사과성 사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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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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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반려견 토리 사진을 주로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오른 사진.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에 대해 윤 전 총장이 사과를 표명한 후에 게시된 사진인데, 거센 비판에 휩싸이자 현재 삭제된 상태다. 윤석열 인스타그램 캡처

‘Non-Apology Apology’라는 영어 관용구가 있다. 직역하면 ‘비(非)사과성 사과’로, 약간 의역하자면 ‘면피용 사과’에 가깝다고 한다. “내가 정말 잘못했어. 미안해”가 아니라, “그렇게 생각했다면 유감이야” 정도로 말하는 걸 가리킨다고도 한다. 진정성 없는 ‘겉치레 사과’라는 얘기다.

실제 제대로 된 사과를 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미안하다’는 말은 도처에서 쏟아지지만, 진심은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대다수는 사과에 인색하다. 잘못을 시인하면 굴욕감이 드니까, 자기정당화 기제가 무너지니까,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으니까, 이유는 다양하다. 어쩌면 그냥 ‘지는 게 싫은’ 본능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과에는 반성뿐 아니라, 용기도 필요하다. ‘Non-Apology Apology’라는 말이 생긴 건 아마도 ‘진짜 사과’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사례가 딱 그렇다. 한국에서야 ‘오징어 게임’ 대성공 뉴스가 대부분인 데 반해, 미국에서는 ‘비사과성 사과’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모양이다. 발단은 인기 코미디언 데이브 샤펠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 ‘더 클로저’다. 샤펠은 이달 5일 공개된 프로그램에서 “나는 터프(TERF·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 페미니스트)”라고 말했다. “성별은 절대 바꿀 수 없는 진실”이라고도 했다. 트랜스젠더를 조롱하는 발언이었다. 미국 성소수자들은 즉각 반발했고, ‘트랜스젠더 혐오 콘텐츠 방영’을 규탄하는 시위도 잇따랐다. 심지어 넷플릭스 직원들까지 가세했다.

결국 최고경영자(CEO)가 진화에 나섰다. 테드 서랜도스 공동 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많은 분이 화내고, 실망하고, 상처받았다는 걸 안다”며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우리는 화면 속 콘텐츠가 실제 세계에 직접적 피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이 있다”고 부연했다. “‘더 클로저’가 증오 조장의 선을 넘지 않는다고 믿는다”고도 했다. 명시적 사과는 없었다. 비판 여론은 더 불붙었고, 서랜도스는 19일 “내가 실수했다”며 한발 더 물러섰다.

하지만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서랜도스는 실질적 개선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더 클로저’ 방영을 합리화하는 태도도 고수했다. 컨설팅업체 대표인 다비아 테민은 포브스 기고문에서 “전형적인 비사과성 사과”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과 표명의 6개 원칙을 제시했는데, 특히 1, 2번이 와 닿는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지, 어떤 일이 생길지 미리 예상하라’ ‘잘못을 정당화하지 말고, 신속한 개선 조치를 취하라.’

이런 충고를 들을 사람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인 것 같다. ‘1일 1실언 제조기’인 그의 ‘전두환 옹호’ 망언은 놀랍지 않았다. 거센 비판에도 버티다 이틀 후 ‘유감→송구’로 이어진 ‘마지못해 사과’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돌잡이 사과’ ‘개 사과’ 사진은 경악스러웠다. “실무진의 실수”라는 건 가당찮은 변명이다. 대선 후보 캠프 실무진이 어떻게 후보 뜻과 무관하게, 독단적으로 이런 짓을 벌인다는 건가. 그보다는 윤석열 캠프의 지배적 기류에서 비롯된 행위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어쩌면 자신의 사과를 못마땅하게 여긴 지지 세력을 달래고자 후보 본인이 ‘승인한’, 정치적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건 억측일까.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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