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 선수 이모씨는 지난 7월 경기 화성의 한 도로에서 동료들과 훈련을 하다 자전거가 넘어져 온몸에 찰과상을 입었다. 함께 쓰러진 후배도 쇄골이 부러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병원비의 20~30%와 재활 치료 비용을 모두 자비로 내야 했다. 경륜선수들은 모두 국민체육진흥공단 소속임에도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있어서다. 이씨는 "훈련을 도로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산재보험 적용이 가장 필요한 직군임에도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1994년 경륜사업을 시작한 이래 산재보험 적용은 경륜 선수들에게 '꿈'과 같은 숙원 사업이었다. 540명 안팎의 경륜 선수들은 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차가 덜 다니는 도로만 골라다니며 훈련을 해도 돌뿌리에 걸리거나 페달에서 발이 빠져 크게 다치는 사고가 흔히 발생한다.
실제로 2009년과 2019년에 도로 훈련 중 교통사고로 선수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2004년에는 도로 훈련을 하다 트럭에 깔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2019년 사망한 선수는 단체 상해보험으로 1억8,000만 원을 보상받았다. 산재보험이 적용됐다면 최소 7억 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었을 것이란 추정도 나왔다. 국민체육공단 소속인 200명의 경정 선수들이나 한국마사회 소속 경마 선수들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경륜노조 '법적 인정'... 특고 산재 가입 길 열려
경륜 선수들이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개인사업자 형태로 100% 보험료를 부담하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정부와 공단은 이런 방식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것을 권장하며 가입 시 보험료 일부를 지원한다는 방침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비용 부담이 큰 데다 경기에 참가하고 소득을 얻는 '특수고용노동자'(특고)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작년 10월 경륜 선수들이 스포츠 선수 노동조합으로 첫 '법적 인정'을 받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경륜선수노조는 작년 3월 고용노동부 안양지청에 노조 설립을 신청했고, 고용부는 특수고용형태 근로성을 인정해 작년 10월 노조설립필증을 교부했다. 특고로 인정돼 산재보험에 적용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마지막 관문 '시행령 개정'... 노동계 "정부 의지에 달려"
다만 마지막 관문이 하나가 남아 있다. 산재보험 적용이 가능한 특고직을 지정해둔 산재보상보험법 시행령 125조에 경륜·경정 선수가 포함되도록 개정해야 해서다. 2008년 특고 노동자도 산재보험에 적용되도록 법이 바뀐 후 적용 대상이 단계적으로 확대돼 현재는 보험설계사와 학습지 강사,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등 14개 직업군이 포함돼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올해는 화물차주 등 다른 특고직의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것을 추진 중이며 실태조사를 거친 후 내년도에 경륜·경정 선수들도 추가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과 노동계에서는 경륜·경정선수들은 700여 명에 불과한 만큼 시행령 개정이 어렵지 않은 데도 정부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진 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다른 직종들은 10만 명이 넘는 경우들도 있어서 정부가 신중히 검토를 할 수도 있지만 경륜·경정 선수들은 1,000명도 안 되고 사업주가 명확해 시간을 끌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경륜 선수들이 특고 산재보험 적용을 주장하며 파업까지 하고 있다"며 "21일 고용노동부 종합국감까지 명확한 정부 입장을 공개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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