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은 그루밍 성범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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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은 그루밍 성범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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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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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랑
박미랑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게티이미지뱅크


"네가 (선수 생활 지속이) 절실하다면 나와 (성관계) 하자"

"절실함이 없네 역시. 넌 너 자신을 버릴 준비가 안 되어 있네… 쌤은 버릴 수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운동이 인생의 전부였고, 가족과 친구가 아닌 운동을 선택했던 그 운동선수는 그렇게 쌤의 성적 학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쌤은, 나에게 혹독하게 실력을 키워주는 존재였고, 승리의 기쁨을 같이 나눴던 존재였다. 쌤은 성폭행 범죄자였지만, 선생님의 탈을 쓰고 있었기에 운동선수 본인도, 가족도, 운동공동체도 알아채기 힘들었다. 그렇게 단절된 생활 속에서 그것이 쌤이 범죄자라는 확신을 갖는 데는 일반인보다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세상에 알리는 용기를 내는 데에는 더욱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범죄자는 스스로를 쌤이라 칭했다. 3년 동안 29차례 미성년자 강간, 강제추행, 협박, 그리고 폭행의 범죄를 저질렀다.

조재범 사건이다. 조재범의 범죄에는 징역 10년 6월의 처벌이 내려졌다. 그는 범죄행위를 부인하다가,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하였고, 나중엔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를육성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성범죄자들의 사후 변명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를 육성하고 싶었다"는 말은 보통의 성범죄자들의 말과는 조금 다르다. 그가 생각하는 사제지간의 삐뚤어진 생각 그리고 범죄에 대한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쌤의 폭력과 성폭력이 국가 대표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견뎌야 하는 훈련 조건이었는가?

조재범의 성범죄는 낯선 이에 의한 범죄 혹은 알고 지낸 이에 의한 단발성 성범죄가 아니다. 상습·지속적인 그루밍 성범죄의 전형을 보여준다. 통상 그루밍은 몸을 치장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로, 화장이나 손질 등을 통해 몸을 관리하는 것을 뜻하고 동물들이 스스로 털을 정리하는 행위도 의미한다. 이러한 그루밍이 범죄와 연관되어 등장한 것은 애나 솔터(Anna Salter) 학자의 '외상의 변형(Transforming Trauma)'이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그녀는 그루밍을 '학대자가 아이를 쉽게 성적으로 학대할 수 있되 범죄 정황이 외부로 노출되는 위험성은 낮아지도록 교묘하게 조정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아동 성착취 및 학대방지를 위한 유럽 조약회에서는 그루밍을 '아동을 성적 만족으로 삼으려는 욕구에 의해 동기화된 성적 학대의 준비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그루밍 성범죄의 핵심은 신뢰와 조정이다. 조재범의 행동이 정확히 그러하다. 그는 철저하게 고립된 환경에서 운동 성적이라는 절실한 목표를 두고 전진하는 그녀를 성적 만족의 도구로 삼은 성적 학대자였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그루밍 성범죄는 자세히 봐야 보인다. 둘만의 신뢰뿐만 아니라 어느 외부인이 봐도 가해자의 모습은 믿고 의지할 만한 특성을 갖는다. 그루밍의 특징이자 범죄 발생의 블랙홀 요소이다. 보이지 않고 빠져들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는 종교 지도자, 선생님(학교, 학원, 과외 등), 의사와 같이 누군가의 의지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가해자가 된다. 그리고 학교 성적 스트레스, 가족관계, 성적 호기심 등을 갖고 있는 고립되고 소외된 자들이 피해자가 된다. 심석희가 그러했듯 조력자에 의해 성장해나가는 예체능계 청소년은 더욱 이러한 그루밍에 취약하다. 일단 가해자 입장에서는 접근성과 기회가 확보되면 이후 통제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때문이다. 사회·계층적 취약성과 달리 정서적 취약성만으로도 피해 조건이 만들어지고 피해자들은 삶을 지지해주고 수용해주는 누구와의 관계형성 욕구가 강하고 관계 유지도 쉽기에 오랫동안 지속된다. 더욱이 그루밍 가해자는 경계심을 늦추고 피해자의 유혹을 위해 비폭력 방법을 사용하기에 모두가 기만당한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나에게 묻는다. "나라면 피해갈 수 있었을까?" 나는 자신없다. 그렇다고 해서 조재범이 그렇게 지능적인 범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우리의 무지하고 순진한 믿음을 기다리는 쌤의 가면을 쓴 포식자일 뿐이다. 성범죄에 대한 무지와 청소년에 대한 무관심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인임을 기억해야 한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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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랑의 범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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