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콩쿠르 폴란드 참가자가 마주르카에 강한 이유
편집자주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근무 중인 그는 공연계 최전선에서 심층 클래식 뉴스를 전할 예정입니다. 오페라에서 가수가 대사를 노래하듯 풀어내는 '레치타티보'처럼, 율동감 넘치는 기사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큰 축제이자 경쟁의 장인 쇼팽 콩쿠르가 21일 끝난다. 최종 우승자는 피아니스트라면 모두가 꿈꾸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쇼팽 콩쿠르는 쇼팽이 작곡한 작품만으로 실력을 겨루는 유일무이한 대회다. 그렇다면 쇼팽의 작품 중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 곡은 무엇일까? 바로 쇼팽의 폴로네이즈와 마주르카다. 쇼팽 콩쿠르에 도전하는 연주자들이 절대 피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폴로네이즈와 마주르카는 모두 폴란드의 춤곡이다. 특히 마주르카는 쇼팽이 생전에 가장 애착을 보였던 장르다. 세 박자로 구성된 폴란드 전통 무곡으로, 16세기부터 유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란드 출신의 콩쿠르 참가자들이 유독 고득점을 하는 과제곡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살아오고 또 배워온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인 모두가 도전할 수 있는 국제 콩쿠르지만 분명 폴란드 연주자에게 유리한 장르다. 실제로 이번 콩쿠르에서도 폴란드 출신의 연주자들은 마주르카에서 특히 강점을 보였다. 유튜브 중계를 보던 온라인 관객들은 폴란드인들의 마주르카에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감탄하며, 어떻게 그런 리듬을 구사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연주자들은 마주르카를 제대로 연주할 수 없을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다. 이번 대회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훌륭하게 자신만의 마주르카를 연주해냈다. 마주르카도 결국 음표로 구성된 하나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마주르카를 수준 높게 해석해 대서사시로 만든 연주자도 있었다. 무덤에 있는 쇼팽도 흥미로워할 만한 해석이었다.
마주르카는 태생적으로 춤곡이다.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이그나츠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했다. "쇼팽의 마주르카를 제대로 연주하려면,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르카를 춰봐야 한다." 마주르카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마주르카 리듬에 대한 DNA를 가지고 있지 않은 연주자는 춤추듯 미묘하게 밀고 당기는 리듬을 구현하기 어렵다. 한국인들이 판소리와 전통 장단을 익숙하게 여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장단의 흐름과 호흡을 쉽게 이해하는 DNA를 가지고 있다.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듣고 또 배우기 때문이다. 찹쌀떡 장수가 외치는 "찹쌀~떡" "메밀~묵"마저 익숙한 장단이고 리듬이다.
또 다른 세 박자의 춤곡으로는 왈츠가 있다. 왈츠는 오스트리아의 전통 민속춤인 '렌들러'라는 3박자 춤에서 유래했다. 누구나 잘 아는 '쿵짝짝'의 3박자다. 하지만 왈츠 역시 단순히 3박자로 인수분해되지 않는다. 왈츠는 3박자 안에서 순간적으로 박자를 밀고 당기는 찰나의 미학이 담겨 있는 춤곡이다. 지구에서 이 왈츠를 가장 잘하는 오케스트라는 바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자라온 환경에서 터득했던 왈츠 리듬은 이들에게 DNA로 자리 잡았다. 어떤 악단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다.
다음 달,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리카르도 무티와 함께 한국에 상륙한다. 꼭 2년 만이다. 2019년 가을 한국에 왔던 빈 필하모닉은 모든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로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천체의 음악 왈츠'를 들려줬다. 왈츠를 단순히 '쿵짝짝'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편견을 깨부술 만한 연주였다. 오케스트라는 춤추듯 리듬을 섬세하게 밀고 당겼다. 모든 단원이 왈츠 리듬에 대한 DNA가 없다면 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단원들은 자리에 앉아 연주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왈츠를 추고 있었다. 이들은 올해도 앙코르로 빈의 왈츠를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무티는 2021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이끌었던 지휘자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리카르도 무티와 함께 왈츠를 추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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