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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에 대한 배려, 춤으로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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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에 대한 배려, 춤으로 만들었어요"

입력
2021.10.20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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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만든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단장

최근 한국일보와 만난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무용수와 안무가에게 중요한 가치로 '즉흥성'을 꼽고 싶다"며 "일정한 안무 구조를 정하더라도 실제 공연에서는 본능적인 결정을 해야할 때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최근 한국일보와 만난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무용수와 안무가에게 중요한 가치로 '즉흥성'을 꼽고 싶다"며 "일정한 안무 구조를 정하더라도 실제 공연에서는 본능적인 결정을 해야할 때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22일부터 사흘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남정호 단장 겸 예술감독이 지난해 취임 후 안무가로서 처음 공개한 작품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경쟁과 생존을 게임(유희)의 관점에서 다룬 현대무용인데, 공교롭게도 최근 세계적인 유행을 일으킨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설정이 비슷하다. 다만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오징어 게임'에 앞서 지난해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됐다. 최근 한국일보와 만난 남 감독은 "'오징어 게임'과 이번 작품은 장르는 달라도 둘 다 코로나19로 멈춰버린 세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보게 되는 주제 의식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남 감독은 1980년대 프랑스 장-고당 무용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한 뒤 귀국해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다 지난해 2월 국립예술단체 수장이 됐다. 무용수, 안무가, 경영자로서 무용계에서는 남 부러울 것 없는 경력이다. 남 감독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경쟁을 했고 이겼지만, 어느 순간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성취감을 만끽하고 미래지향적인 계획에 집중하다 보니 아쉽게 탈락한 동료에게 위로 한마디 건넬 여유를 챙기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의 안무를 만든 남정호 예술감독은 "작품을 만드는 동안 사는 방식도 변했다"며 "연락이 뜸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기도 하고, 후배 무용수들을 대할 때도 그들의 이야기에 더 경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의 안무를 만든 남정호 예술감독은 "작품을 만드는 동안 사는 방식도 변했다"며 "연락이 뜸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기도 하고, 후배 무용수들을 대할 때도 그들의 이야기에 더 경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이 때문에 성찰적 의미를 담아 만든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에는 경쟁에서 실패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들어가 있다. 작품에는 무용수 12명이 등장하는데 게임 단계를 거치는 동안 하나둘 사라진다. 남 감독은 "매우 직접적인 이야기"라며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초연 때는 승자들이 돋보인 반면 올해 공연에서는 무대에서 비껴난 이들도 주목한다.

남 감독은 "인생이란 한바탕 놀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작품 제목에 유희가 들어간 이유인데, 비판의식도 담겨 있다. 남 감독은 "게임의 전제는 페어플레이인데, 지나고 보니 과거 경쟁들이 ‘과연 공정한 방식으로 이뤄졌었나?’ 하는 반문을 하게 됐다"고 했다. 즉, 개인이 아무리 '노오력'해도 뒤바꿀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꼬집고 싶었다는 취지다. 삶이 유희가 아닌 것은 그래서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의 리허설 현장에서 남정호(오른쪽) 예술감독이 안무를 지도하고 있다. 그는 "발레가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특화돼 있다면, 현대무용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예술"이라고 설명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의 리허설 현장에서 남정호(오른쪽) 예술감독이 안무를 지도하고 있다. 그는 "발레가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특화돼 있다면, 현대무용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예술"이라고 설명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이번 공연에는 오랜만에 남 감독도 무대에 오른다. 그는 "역시 춤 출 때가 가장 행복하다"면서도 "후배들도 있는데 주역을 맡을 수는 없고, 앨프리드 히치콕 영화에 등장하는 카메오(단역) 감독처럼, 조그마한 부속품 역할을 해볼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을 무사히 마치면 팬데믹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자신만의 철학이 뚜렷하고 실험적인 안무가의 작품 개발을 지원하는 일이다. 남 감독은 "지금은 대중예술에 대한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데 당장 가볍게 즐기기 편한 엔터테인먼트도 필요하지만, 격이 있고 관객을 생각하게 만드는 공연 예술도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대중성을 버리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현대예술이 난해하다는 생각이 많은데, 대중과 예술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춤추는 강의실' 등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에서 추는 춤을 장려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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